국립창극단의 김성녀 예술감독 고선웅 극본 연출 한승석 작창 작곡의 변강쇠 점찍고 옹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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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가의 원제는 <가루지기타령>이다. 가루지기타령은 판소리 중 하나로 변강쇠타령, 변강쇠가, 횡부가(橫負歌)라고도 한다.

이 소리는 <관우희> 중에 들어 있고 판소리 원로의 한 사람이며, 8명창의 한 사람인 송흥록(宋興祿)이 〈변강쇠가〉를 잘하였다는 서술이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에 보이는 것으로 보아, 1810년 이전부터 불려온 창 본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음탕한 변강쇠와 음녀인 옹녀의 난음한 생활을 묘사한 것인데, 표면적으로는 성(性)과 육체를 부정한 듯한 내용이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그것을 긍정하려는 것같이 보이며, 실학사상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엿보인다.

창 본으로는 신재효본이 유일하다. <변강쇠가>는 신재효가 실전(失傳) 판소리 〈변강쇠가〉를 사설로 정리한 것이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판소리로 전승되고 있었던 듯하나 20세기 들어서는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되었고, 고소설 형태로도 전환되지 못하고 거의 사라졌다. 유일하게 신재효의 사설만이 전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창극이나 마당극으로는 종종 공연되며 만화나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여타의 판소리계 소설과는 차별화된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제시된다.

<변강쇠가>는 괴상망칙하고 음란한 내용의 작품이다.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주인공인 '변강쇠'와 '옹녀'는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이 정력가와 색골의 대명사로 널리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양반이나 부녀자가 감상하기에는 부적절하게 여겨져 판소리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도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다시 재창조되는 것은 단지 노골적인 주인공 성격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작품은 조선 후기 사회에서 발생한 유랑민이 유랑에도 실패하고 정착에도 실패하여 패배하고 죽어갔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변강쇠의 무지와 심술 이전에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회적 현실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또 <변강쇠가>에서 주목되는 점은 예술 작품에서 금기로 여기는 '성(性)'과 '죽음'을 노골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의 시작부터 옹녀의 남편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고, 동네에서 쫓겨난 옹녀가 유랑하다 만난 변강쇠와의 성 관계 장면이 노골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변강쇠가 장승에게 징벌을 받을 때, 온갖 징그러운 병이 나열되고,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송장의 모습도 계속 묘사된다.

<변강쇠가>는 매우 괴이하고 끔찍하여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작품이라 자칫 작품의 본질을 보지 못할 수 있으며, 당시 사회상과 인물의 처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표면적인 내용 아래 감춰진 조선시대 서민들의 어려운 생활, 예를 들어 장작 대신 장승이라도 뽑아다 땔 수밖에 없었던 생활과, 당시 양반이나 관료들은 처첩을 수없이 거느리고 여봐라 듯 떡 벌어지게 살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서민들 대부분은 빈한한 생활 속에서의 본능추구의 정념을 간직한 채 살았던 점을 돌이켜 보게 되는 작품이다.

무대는 "ㅜ"자 형의 한 자 높이의 단으로 되어있고, "ㅜ"자 의 좌우 낮은 부분인 오케스트라 박스에는 국악연주단이 자리를 잡았다.

직사각의 입체 조형물을 장승으로 설정을 해 출연자가 끌고 들어오거나, 기계조작으로 무대로 이동시키기도 한다. 여러 개의 관 형태의 조형물을 하나하나 떼어놓거나, 붙여놓고 사용을 하고, 배경 막과 중간 막을 좌우로 열고 닫거나, 또는 수직으로 상승 하강시켜 장면변화에 대응한다. 창극단원들이 직접 팔도와 청석 골의 장승 역을 하는 것으로 연출된다. 프로시니엄 아치 양쪽에 자막 판을 만들어 영어와 한글자막을 영상으로 투사한다.

주인공인 옹녀는 팔자에 상부살이 겹겹이 낀 여인으로, 결혼한 남자는 병, 사고, 범죄를 저질러 처형되는 등 온갖 사유로 죽고 심지어 잠시 스쳐간 남자마저 죽는 바람에 인근 열 동네에서 남자의 씨를 말리게 되고, 이에 열 동네의 여인들이 작당하여 옹녀를 쫓아낸다. 보따리 하나 들고 남쪽으로 내려오던 옹녀는 또한 삼남에서 온갖 여자를 농락하며 북쪽으로 올라오던 변강쇠와 남도와 북도의 경계점인 청석 골에서 만난다. 둘은 천생연분임을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결혼을 하여 청석 골 깊은 산으로 들어가 사는데, 옹녀는 나름대로 정착하려고 나물장사까지 하며 살아보려 애쓰지만, 게으름뱅이 변강쇠는 주는 밥을 먹고 밤일에만 힘쓴다. 그리고 하는 일이 노름판에 나가 잃기만 한다. 게다가 옹녀가 벌어오는 푼돈마저 주는 족족 잃고 노름패와 싸움을 벌인다. 견디다 못한 옹녀가 나무라도 해 오라고 변강쇠에게 재촉하자 변강쇠는 길가의 장승을 뽑아 오고, 놀란 옹녀가 도로 갖다 놓으라고 설득하는데도 듣지 않고 그 장승을 패어 땔감으로 삼는다. 횡액을 당한 장승은 모든 장승의 우두머리인 대방장승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대방장승은 전국의 장승들을 불러 모아 변강쇠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갖가지 병으로 도배하게 한다. 그리하여 변강쇠는 온갖 병을 한 몸에 앓다가 끝내 죽게 되는데, 옹녀에게 "내가 죽은 후 개가를 했다가는 그 서방을 죽이고 말겠다."라고 저주를 내린 후 벌떡 일어서서 눈을 부릅뜨고 죽는다.

향후 변강쇠의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옹녀의 애쓰는 모습이 펼쳐지고, "집 안의 시체를 처리해 주면 같이 살겠다."며 지나가던 걸승부터 시작하여 온갖 남자들을 자신의 미모로 유혹하지만 이끌려든 사람들은 방 안에 서 있는 변강쇠 시체의 흉악한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모두 죽는다. 저승사자가 등장을 하고 옹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등장을 해 옹녀에게 바른 마음을 갖도록 타이른다. 결국 초라니 한 사람이 등장해 옹녀에게 정을 주지 않고 변강쇠의 시체를 치운 후 떠나가 버린다. 대단원에서 옹녀가 변강쇠의 아이를 밴 것으로 설정이 되고 옹녀의 기뻐하는 희망찬 모습에서 창극은 끝이 난다.

김지숙·이소연이 옹녀, 김학용·최호성이 변강쇠, 윤충일이 각설이, 김차경이 용녀모, 허종열이 대방장승, 우지용, 이영태, 나윤영, 유수정, 김형철, 윤석안, 이광원, 남해웅, 박성환, 김유경, 서정금, 김미진, 민은경, 이광복, 김준수, 최용석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열창은 국립창극단의 경륜과 각고의 노력, 그리고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조용수, 이성도, 이원왕, 이동훈, 박희정, 최영훈, 강민수, 전계열, 김민영, 조성재, 김태영, 정광윤 등 타악과 국악연주자들의 연주가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무대 김충신, 의상 이승무, 조명 류백희, 음향 김호성, 영상 이원호, 분장 김종한, 안무 박호빈, 조연출 정종임, 조연출보 서정완, 조명프로그래머 이수진, 분장스텝 박효정·박희경·조은혜 등 스텝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국립창극단 김성녀 예술감독, 고선웅 극본·연출, 한승석 작창·작곡의 <변강쇠 점찍고 옹녀>를 기억에 남을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글] 문화뉴스 공연칼럼니스트 박정기(朴精機) artieto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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