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장건재 감독, 김새벽, 임형국이 하트 포즈를 짓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제목이 말해주듯, 작은 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한여름 어느 날을 그리고 있습니다. 각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기억, 장소가 간직한 추억은 물리적인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이는 이웃 국가인 한국과 일본이 과거, 현재, 미래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힌트를 준다고 봅니다." - 공동 프로듀서 가와세 나오미

일본의 지방 소도시인 나라현 고조시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여자와 일본 남자. 그들의 신비로운 인연과 한여름의 불꽃놀이처럼 번지는 마음의 파동을 담은 작품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일반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오는 11일 개봉을 앞둔 가운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등 영화제 상영 후 처음이다.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은 장건재 감독은 2009년 데뷔작 '회오리바람'으로 밴쿠버영화제 용호상, 페사로영화제 뉴시네마 대상을 받으며 세계 영화계에 주목을 받았다. 그 후 2013년 '잠 못 드는 밤'으로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어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그의 세 번째 장편 영화다. 특히 이번 작품은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바 있는 감독 가와세 나오미가 공동 프로듀싱한 작품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한국의 영화감독 '김태훈'(임형국)이 새 영화를 찍기 위해, 조감독 '박미정'(김새벽)과 함께 일본의 지방 소도시인 나라현 고조시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쇠락해가는 마을 곳곳을 누비며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아낸다. 하지만 대부분 이들은 고조시가 특별할 것이 없는 마을이라고 말한다. 그 중 시청 직원인 '유스케'(이와세 료)와 '겐지'라는 중년 남성의 사연에 감명을 받는다. 여기까지가 1부이며, 그 사연에서 영감을 받아 펼쳐진 허구의 이야기인 2부가 시작된다.

2부에선 한국에서 혼자 여행 온 '혜정'(김새벽)이 역전 안내소에서 아버지의 고향, 고조시에 정착해 감을 재배하며 사는 청년 '유스케'를 만난다. '유스케'는 가이드를 자청하며, '혜정'은 그와 함께 걸으며 길 위에서 많은 대화를 나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유스케'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주요 장면이 1부는 흑백으로, 2부는 컬러로 보여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2일 오후 CGV 왕십리에서 '한여름의 판타지아'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렸다. 시사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엔 장건재 감독을 비롯해 김새벽, 임형국이 참석했다. 이와세 료는 영화 촬영 스케쥴로 다음 주에 홍보 활동차 한국에 방문할 예정이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이들이 전하는 '한여름의 판타지아' 이야기를 지금부터 확인해보자.

   
▲ (왼쪽부터) 장건재 감독, 김새벽, 임형국이 '한여름의 판타지아' 언론/배급 시사회에 참석했다.

왜 고조시를 선택했는지?
ㄴ 장건재 감독 : 고조시에서 찍어야 한다는 것은 '나라국제영화제'에서 운영한 프로젝트의 조건이었다. 로케이션, 일본 스태프와 배우가 참여해야 했다. 일정한 예산 아래에 해야 하는 조건도 있다. 가와세 나오미 씨가 공동으로 프로듀싱을 했다. 8월에 이 지역 지자체 행사가 불꽃놀이 축제가 유일하다. 고조시에서 일정 부분 지원을 했기 때문에, 꼭 찍으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감독으로 불꽃놀이 장면을 어디에 넣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1부와 2부의 브리지처럼 쓰기도 했다. 흑백과 컬러를 전환할 때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고민을 하다 불꽃이 주는 형형색색을 넣었다. 섬광처럼 '유레카'하는 느낌으로 불꽃놀이를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배치하게 됐다.

이와세 료를 만난 계기는 무엇인지?
ㄴ 장건재 감독 : 일본 친구인 감독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서 그 인연으로 오랫동안 만났다. 이번 작품에서 이와세 료는 도시에서 시골로 온 청년 역할이다. 부탁을 했고, 같이 하게 됐다.

고조시라는 곳이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다. 방문한 소감이 어떤지?
ㄴ 장건재 감독 : 한적한 지방 도시다. 경제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곳이 풍경을 통해 드러난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김태훈' 감독처럼 고민했다. 2부에서 '혜정'도 이와 관계된 말을 한다.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이기 때문에, 영화를 찍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김새벽 : 촬영할 때 고조시가 매일 36도를 기록해서 치열하게 찍었다. 밤에는 반대로 서늘한 것이 있어서 그런 차이를 느끼면서 지낼 수 있었다. 영화 찍기엔 매우 좋은데, 사람이 안 다녀서 통제가 크게 필요 없었다. 그래서 촬영이 무난했다. 20일 정도 머문 느낌이 영화에 다 담겨있는 것 같다.

임형국 : 2부 첫 장면에서 보면 큰 광고판에 QR 코드도 있는데, 현대적인 느낌도 들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무언가도 있다. 하지만 여관방의 선풍기를 보면 과거와 현재를 공존하는 느낌이 많았다. 한국말을 쓰는 사람은 스태프 포함해서 4~5명밖에 없어서 고조시에 갇힌 느낌도 있었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갇혀서 좋은 점이 많았다. 영화를 보며 "내가 저길 걸었구나"하는 새로운 느낌도 있었다.

   
▲ (왼쪽부터) 장건재 감독, 김새벽, 임형국이 포토타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조의 느낌이 슬펐다고 말했다. 어떤 부분인지?
ㄴ 임형국 :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작업하면 내가 무언가를 생각해야 할 때, 내 귀에 들리는 음악과 말이 있다. 하지만 너무 조용한 곳이었다. 일본 할머니께서 꺌꺌 웃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감독님께 잘못 보이면 귀국을 못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지그시 누르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슬펐다고 표현했는데, 아무튼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에서 동화라고 표현했지만, 동화보단 창백한 느낌이 있었다.

일본어 대사가 많은데, 공부했는지?
ㄴ 김새벽 : 일본어는 한 10년 전에 공부했던 실력이다. 그것도 제대로 한 것이 아니고 글로 배운 일본어였다. 감독님이 저를 믿고 데려간 것에 감사하다. (웃음) 말은 계속 써야 나오는데, 처음엔 힘들었다. 촬영 전에 4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일본 스태프분들이 말을 걸어주시고, 틀리면 잡아주시고, 도와주셔서 일이 잘 풀려 촬영한 것 같다.

1부의 흑백 부분이 길어서 관객들이 불편해할지도 모르겠다.
ㄴ 장건재 감독 : 1부는 제 이야기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에게 프로젝트 제안을 받고, 조사하는 과정이 있었다. 여러 사람의 인터뷰를 하고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서울로 돌아와서 조사한 것을 쭉 한 번 정리했다. 1부에 전부 다 반영된 것은 아니다. 불편하실 수도 있는 것이 1부엔 통역 부분에 자막 처리를 하지 않은 점도 있다. 제 의도는 공간과 사람의 이야기를 선입견 없이 시간을 들여서 보고, 그 공간을 느끼며 낯선 언어를 정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느끼도록 관객들이 보기를 원했다. 영화는 영화이다 보니 어떤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와 흥미가 있어야 하겠지만, 감독인 저한텐 큰 관건이었다. 감독의 여정과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씩 만나가면서 쌓아가는 것이 공간의 이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낯선 곳을 여행할 수 있을 때의 감정과 감각이 1부에 있다고 본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과의 작업 소감을 말해달라.
ㄴ 장건재 감독 : 먼저 영화 앞에 보면 '나라티브'라는 로고가 있다. 나라현에서 영화제를 직접 주관을 한다. 이 영화는 그 영화제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디지털 삼인삼색을 하듯이 제가 '잠 못 드는 밤'으로 참석한 인연으로 시작하게 됐다. 여러 조건이 붙여진 저예산 영화다. 2억 원 정도로 제작됐고, 11회차로 1년 정도 후반 작업을 해서 완성한 영화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이 영화의 프로듀서로 참석했다. 제가 후배여서인지 잔소리도 많이 하고 도움도 많이 줘서 알콩달콩 찍었다. (웃음) 후반 작업까지 신경 써주셨는데, 그 점에 공부도 많이 됐다. 항상 협의하고 넘어가는 과정이 있어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 있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도 자기 영화 개봉해서 바쁘신 와중에 다음 주에 오신다. 보시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포스터에 '비포 선라이즈'에 대한 소개가 있는데, 내용이 살짝 다른 것 같다.
ㄴ 장건재 감독 : 2부를 작업하기 위해 회의를 진행하다가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나왔다. 그 영화를 안 본 스태프가 많아서 답답해하기도 했다. 그래서 동네 로드무비로 찍겠다고 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평생 찍었던 곳이고, 그의 모든 작품을 봤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 장면이 살아났다. '비포 시리즈'의 염두라기보단, 남의 세트에서 다른 영상을 찍을지에 대해 고민을 했다.

   
▲ 김새벽은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1인 2역으로 출연한다.

1부의 '미정'과 2부의 '혜정'은 다른 캐릭터다. 1인 2역의 준비 과정은 어땠나?
ㄴ 김새벽 : 촬영하러 일본에 출발하기까지만 하더라도 1부만 찍고 가는 걸로 됐었다. 1부의 일본어 대사를 외우고 감독님께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듣고 가게 됐다. 가서 2부까지 찍는 것이 결정되어서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설정이 실제 저와 비슷하게 해주셔서, 그나마 좀 표현할 수 있었다.

감독 역할이기 때문에, 장건재 감독을 많이 살펴봤을 것 같다.
ㄴ 임형국 : 연출이 배우의 일상을 다 스케치 해야 하듯이, 배우도 마찬가지로 감독을 지켜볼 이유가 있다. 이 영화를 하면서 장건재 감독을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다. 출국 2~3일 전에 캐스팅되어서, 제한된 환경 안에 촬영을 해야 하다 보니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고조를 1년 전에 처음 갔을 때 아무 밑그림 없이 갔을 거라는 생각도 해봤다. 거기 나오는 대사들을 준 상황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제가 조금 좋아하는 대사가 있었는데, 가차 없이 7분여 동안 잘린 것이 있다. (웃음)

장건재 감독 : 저를 관찰하셨다고 선배가 종종 말씀하셔서, 완성된 영화를 보며 '내가 저래?'하는 느낌도 받은 적이 있다. 멋있는 감독으로 나왔다고 생각한다.

2부에서 '혜정'의 로맨스가 나온다. 설정은 어땠나?
ㄴ 장건재 감독 : 2부는 시나리오 설정 없이 시작했다. 새벽 씨가 1부만 촬영하는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일 동안 쉬면서 배우들에게 간단한 설정을 줄 시간이 있었다. '유스케'와 '혜정'의 감정을 순서대로 찍으면서, 감정선을 미세하게나마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오늘 찍고 나면, 오늘 감정으로 내일 무엇이 가능하다는 느낌으로 했다. 그것이 너무 인위적이거나 여행 영화가 가진 관습을 피할 것은 피하고, 가져올 것은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 스태프들이 현지에서 참여했다.
ㄴ 장건재 감독 : 제작팀과 프로덕션 매니저가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팀이기도 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영화제도 하다 보니 영화제 스태프도 같이 있었고, 사무실에 같이 사는 분도 있다. 촬영 감독님께 메일을 먼저 보내면서 필터를 적극적으로 썼으면 좋겠다는 준비과정도 했었다. 조감독도 한국, 일본 조감독이 함께했다. 기본적으로 스태프들은 가와세 나오미 감독과 스튜디오 작업을 번갈아 하다보니 이해도가 높으셔서 제가 버벅거릴 땐 기다려주셨던 분들이 많다. 일본 스태프들이 민첩하고 빠른 편인데, 저는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었다. 여기에 촬영 기간도 짧았는데, 호흡은 좋았다고 본다. 또한, 스케쥴링을 잘해줬다. 그래서 11회차 만에 찍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볼 때 심심한 면이 있어서, 우리 영화보단 일본 영화라는 느낌도 있다. 우리 관객이 봤을 때, 어떤 부분에 포인트를 보면 덜 지루하고 재밌게 볼 수 있나?
ㄴ 장건재 감독 : 그렇게 보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모르고 만든 것은 아니다. 이 영화를 볼 땐 좋은 컨디션으로 봐야 한다. (웃음) 1부의 감독과 2부의 여행자처럼 유명한 도시도 아니고, 한국의 지방 소도시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낯선 공간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 무언가 창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고 본다. 그런 점이 공감됐으면 좋겠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ㄴ 장건재 감독 : 세 번째로 만드는 장편 영화다. 첫 번째, 두 번째 영화를 찍을 때보다 오늘은 더 긴장되는 것 같다. 극장에서 어떻게 이 영화가 전사할지도 궁금하다. 극장 환경이 독립 영화나 작은 영화에 어려운 편인데, 감독과 프로듀서로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이다. 전투력을 키운 그런 기분으로 이 자리에 있다.

김새벽 : 오늘 시사회를 시작으로 영화가 관객들을 만난다. 오늘 시사회를 하니까 뭔가 영화가 떠나가는 것 같아 약간 기분이 이상하다. 재밌고 좋은 시간이었으면 한다.

임형국 : 영화에 내 손을 잡는 할머니가 등장하신다. 영화 촬영 1년 후 나라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들어보니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지금도 소름이 쫙 돋는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의 지루함을 상큼하게 받아주실 수 있는 분이 있다고 본다. 저 역시 지루하다. (웃음) 하지만 그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분들이 힘을 모으셔서 좋은 말씀 해주셨으면 한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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