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달밤'으로 엿본 '조선의 모파상' 이태준
  • 양미르
  • 승인 2017.06.0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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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달밤', '가마귀', '오몽녀', '문장강화' 등 일제강점기 '조선의 모파상'으로 불리며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도를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가 이태준의 이야기가 8일부터 18일까지 대학로 미마지아트센터 물빛극장에서 연극으로 올려진다.

연극 '달밤'은 이태준 작가의 대표적인 단편 소설 '달밤'을 각색해 무대화한 공연으로 정식 신문배달부가 되고자 하는 반편이 '황수건'을 서술자인 '이 선생'의 회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해방 전 대한민국의 모습을 작은 여관방에서 모여 사는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로 풀어낸 지난 공연은 민중에 대한 연민과 옛 서울 성북구에 대한 정취를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원작자 이태준의 일대기를 극화해 그가 처음 성북동으로 이사 온 시점에서부터 월북 후 숙청당하기 까지의 일화들을 무대화했다. 현실과 자신이 쓴 이야기 속 세계를 배회하며 연민과 동정어린 눈빛으로 소외된 민초를 바라보는 한편, 혼탁한 정국 속 지성인이 가진 고뇌에 초점을 잡는다. 광복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30년 역사를 뚜렷한 색감 대비로 시각화하고, 밀물처럼 몰려오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자신의 창작 세계가 오염 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주인공의 심리를 영상과 노래, 기괴한 장면 구성 등으로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낸다.

 

한편,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달밤 같이 향기로운 글"이라는 평가를 받은 상허 이태준의 작품은 현재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익숙해 졌지만, 1988년 정부에서 시행한 '월북 작가의 해방 전 문학 작품 해금 정책' 이전만 하더라도 불온물에 속했다.

1904년 강원도 철원 출생의 이태준은 일본 조치대학에 재학하는 동안 첫 작품인 '오몽녀'를 탈고했고, 조선 귀국 후 '구인회'를 결성, 자신의 문학색채를 뚜렷이 하면서 왕성히 창작 활동을 이어간다. 광복 이전의 그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을 띠기보다는 구인회의 성격에 맞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 지상적 색채를 농후하게 나타낸다.

인간 세정의 섬세한 묘사나 동정적 시선으로 대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자세 때문에 단편소설의 서정성을 높여 예술적 완성도와 깊이를 세워나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1946년 7~8월경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월북 후 종군 기자로 전선에 참여하면서 쓴 '고향길'(1950년)이나 '첫 전투'(1949년) 등은 생경한 이데올로기를 여과 없이 드러냄으로써 일제하의 작품보다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떨어졌다는 평도 받고 있다. 1952년부터는 사상검토를 당하고 과거를 추궁받았으며, 1956년 숙청당했다.

한국전쟁 이후 숙청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그가 철저한 사회주의적 작가가 아니었으며 그의 열정은 오히려 인간적 서정성에 기초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이후 1992년 상허 학회가 설립되면서 이태준의 문학 세계가 활발히 재조명을 받고 있다. 이어 2016년 여름, 제1회 미아리 인문극장 '이태준 전'이 서울 성북구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에서 열렸다. 그 중 '달밤'은 옛 성북동 마을의 서정적 정취와 더불어,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식민체제가 공고해지고 독립가능성은 희미해지던 시기의 젊은 지성 이태준 작가가 바라본 조선과 조선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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