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허수아비 창단공연 김경주 작 이승희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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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1976~)는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2003년 대한매일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며 극작가다.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야설작가, 대필 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면서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냈고, 이 시집으로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다'라는 평과 함께 문단과 대중에게 큰 바람을 일으켰다. 서강대 철학과 재학시절 친구들과 만든 독립영화사 '청춘'을 확장 개편한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츄리닝 바람'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인디문화를 제작하고 개발하며 공연기획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극단 바람 풀의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를 쓰고 박정석 연출로 공연한 앞날이 기대되는 작가다.

<블랙박스>는 비행기록장치(FDR), 비행영상저장장치(AVR, Airborn Video Recoder), 조종석 음성 기록 장치(CVR, Cockpit Voice Recorder)의 또 다른 이름이다. 블랙이란 이름과는 반대로 실물은 발견하기 쉽게 적색이나 오렌지색으로 도장되어 있다. 비행기가 추락하여 승무원과 승객이 전원 사망하는 경우 원인 규명의 단서를 얻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비행 중의 상황을 재현할 수 있도록 비행 상태, 조종석 안의 목소리나 교신을 기록하기 위해서 여객기 등에 탑재되고 있다. 장치는 추락할 때 상당한 중력가속도, 화재, 해수 압력 등에 견딜 수 있도록 높은 내충격, 내열성, 내수성을 갖는다. 또한 회수할 때의 위치 통보용으로 발신기도 내장하고 있다. 블랙박스는 수심 약 100m의 압력에서도 견딜 수 있고. 섭씨 1,300도의 높은 온도에서도 견딜 수 있다.

연극 <블랙박스>는 항공기의 운항 중 생긴 기상변화에 대비한 조종사, 여승무원, 그리고 탑승객인 겪는 이야기다.

무대는 항공기의 내부를 상징적으로 꾸몄다. 무대 좌우벽면에 원형의 창을 네 개씩 만들어 반원형의 투명한 플라스틱 막을 씌웠다. 중앙과 무대 좌우에 플라스틱 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고, 중앙에는 기둥의 중간부분을 연결해, 출연자가 철봉을 하듯 거꾸로 매달릴 수 있게 해 놓았다. 중앙기둥 앞에는 항공기의 조정석일 수도 있고, 탑승객의 좌석일 수도 있는 EGG PLANT라고 적힌 원형의 의자를 나란히 배치해, 출연자가 앉도록 했고, 뒤에는 커다란 박스를 놓아, 그 속에서 구명정이나, 목에 감는 안전장비, 그리고 총기를 넣어두고 출연자들이 극 진전에 맞춰 착용하거나 사용한다. 위장막으로 가린 배경 너머로 변기와 세면기가 보이고, 출연자가 자주 출입을 한다. 배경 좌우로 등퇴장 로가 있고, 객석 출입구로도 여승무원이 등퇴장을 한다.

연극은 마치 로봇 같은 의상차림의 미녀 승무원의 탑승객을 향한 안내에서 시작된다. 관객은 승무원의 안내와 함께 비행기의 탑승객이 된다. 곧이어 나이든 남성과 젊은 남성이 등장해 중앙의 좌석에 나란히 앉는다. 노소 두 남성은 처음 대면하는지 서로 서먹서먹한 표정이다. 나이든 남성은 붉은 털실을 꺼내 무릎에 놓고 뜨개질을 시작한다. 여승무원이 손수레에 음식물을 싣고 들어와서 음료와 와인을 두 사람에게 제공한다. 두 사람은 각자 가져온 음식물을 들기도 하고, 대화를 나눈다. 한동안 그런 장면이 계속되다가, 돌연 기체가 흔들리면서 항공기가 난기류 속에 들어가 있음을 여승무원이 알린다. 향후, 기상이변과 기체의 요동, 그리고 탑승객의 불안과 공포의 모습이 연출된다. 탑승객은 구토를 일으키고 배경 막 뒤쪽 변기로 달려가 얼굴을 대고 토하는 모습이 반복되기도 한다. 잠시 항공기가 정상궤도를 달리면, 승객도 평안함을 되찾고, 각자의 생각과 심정을 상대에게 전한다. 그러나 그 생각이 전달되는 것 같지는 않다. 젊은 측은 의자 뒤쪽 플라스틱 봉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 나이 든 축은 뒤쪽 사물함에서 각종 기구를 꺼내 몸에 두르거나 목에 두르다가 다시 집어넣는다. 또 다시 기상이변과 기체의 흔들림이 지속되고, 자주 일어나는 변화에 두 남성이 기진해 정신적 혼란상태가 온듯 두 사람은 장총을 꺼내들고, 서로 겨누거나,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기도 한다. 미녀 승무원은 권총을 꺼내 휘두르기도 한다. 잠시 난기류에서 벗어나 항공기가 정상궤도에서 운행되면, 평온을 되찾은 탑승객 앞에 미녀 승무원이 한 마리의 백조가 된 듯 백조의상을 걸치고 음악에 맞춰 등장하면 관객은 환상의 세계로 진입한다. 잠시 후 격렬한 뇌성벽력과 함께 기체가 요동을 치고, 탑승객을 견디다 못해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고 발사한 후 무대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에서 암전된다. 대단원에서 조명이 밝아지면, 2인은 위장막으로 설정된 한 공간에 나란히 앉아 음식물을 드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창직, 곽정화, 곽현석이 출연해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을 도입부터 연극에 몰입시키고, 갈채를 이끌어 낸다.

심채선 무대디자인, 고재경 움직임지도, 이용헌 조연출, 박성근 조명오퍼, 고혜진 음향오퍼 등 스태프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허수아비(대표 이승희)의 창단공연 김경주 작, 이승희 연출의 <블랙박스>를 새로운 형태의 표현주의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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