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영화도 다시보자 '명화참고서'…'샤인'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지난달 개봉해 300만 명 관객몰이했던 '잭 스패로우'의 다섯 번째 이야기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조니 뎁의 '잭 스패로우' 만큼, 다섯 편이 나오는 동안 '캐리비안의 해적'을 이끌었던 또 다른 주역이자 '잭 스패로우'의 라이벌, '헥터 바르보사'의 제프리 러쉬를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캐리비안의 해적'을 통해 제프리 러쉬를 알게 된 관객들은 '제프리 러쉬 = 헥터 바르보사'로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캐리비안 해적' 시리즈 이외에도 제프리 러쉬는 수많은 다른 작품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킹스 스피치'에서는 말 더듬는 '조지 6세'를 돕는 괴짜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베스트 오퍼'에선 한 여인으로부터 고뇌에 빠진 세기의 경매사 '버질 올드먼'을 맡아 대중들에게 크게 각인시켜주었다. 하지만 제프리 러쉬를 소개하기 전에,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줬던 '샤인'을 빼놓을 수 없다.

제프리 러쉬의 인생 최고작 중 하나로 불리는 '샤인'은 실존하는 호주 출신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음악을 좋아하는 스콧 힉스 감독은 한때 천재 피아니스트로 유명했다가 사라졌던 데이빗 헬프갓에 매료되었던 상태였다. 우연히 그의 재기 연주회 공연 소식을 접한 힉스는 부인 생일파티를 뒤로 한 채, 데이빗 헬프갓의 공연장으로 달려갔다고 알려져 있다.

 

주인공 '데이빗'은 천재성을 지닌 피아니스트지만, 이 주인공보다 더 강한 인상을 심어줬던 건 그의 아버지 '피터 헬프갓'의 과도하고 왜곡된 사랑이었다. '피터'는 '데이빗'에 대한 잘못된 사랑으로 그를 자신의 울타리에 가두어두려고 했으며, 어린 '피터'는 아버지의 결정에 순순히 따랐다. 사랑하고 있다는 그의 말 때문에.

그러던 와중 '데이빗'은 한 여류작가와 친해지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류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데이빗'은 자신을 때리고 협박하는 등 잘못된 사랑을 표현해왔던 '피터'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충격을 받고, 집을 떠나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왕실학교에서 연주회를 가졌던 '데이빗'은 '피터'가 집착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까지 마쳤다. 하지만 '데이빗'은 쓰러졌고, 그는 10년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비를 쫄딱 맞은 '데이빗'은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레스토랑 직원들과 손님들 앞에서 그동안 손대지 못했던 피아노 연주를 완벽히 선사했다. 그리고 '데이빗 샤인'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과거 화려했던 무대와는 차이가 나지만, '데이빗'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고 즐거워했다. 무언가 얽매이고 쫓긴 채 피아노 앞에 앉아있던 과거와 달리, '데이빗'은 아이처럼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고 있던 것이었다.

 

'데이빗 샤인'의 평소 모습은 기이했다. 단지 트렌치코트 하나만 걸친 채 트램펄린을 뛰는가 하면, 모든 수도꼭지를 다 틀어놓거나, 담배 물고 조깅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 어떤 때보다 밝았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밝게 만들고 있을까? '피터'의 묘지를 찾아간 '데이빗'에게서 우리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피터'의 무덤 앞에서 '데이빗'의 아내 '길리언'이 "무덤을 보니 어때?"라고 물었다. '데이빗'은 "잘 모르겠어. 너무 충격을 받아서 아무 생각도 안 나"라며 "아무렴 어때. 우린 이렇게 살고 있잖아. 영원하진 않아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지. 아 세상은 너무 신기해"라고 대답했다. '데이빗'은 비로소 '피터'의 족쇄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그때부터 '데이빗'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은, 신기함으로 가득차보였다.

 

'샤인'을 보고 나서, 어렸을 적 피아노에 빠져 살았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초기에는 피아노를 배운다는 재미로 매일 나가고, 입상까지 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를 잃기 시작해 결국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데이빗'이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가 떠올랐고, 그때 느꼈던 행복이 아마 '데이빗'이 느꼈던 그 감정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피아노를 치면서 '샤인'처럼 반짝 빛나는 '데이빗'처럼, 우리 또한 어느 무언가에 행복을 느끼고 몰두한다면 빛나지 않을까? 그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오늘도 찾고 있다.

샤인(Shine), 1996, 15세 관람가, 드라마 , 
1시간 45분, 평점 : 3.9 / 5.0(왓챠 기준)

syrano@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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