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는 '호랑이'와 '미녀' 중 어느 문을 선택할까?

[문화뉴스] 스무 살쯤이었나, 어느 나라의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한 남자를 사랑했고, 가난하고 가진 것 없어 자신의 딸을 줄 수 없다고 여긴 왕은 그를 심판대 앞에 세웠다. 그리고 자신의 딸에게 선택하도록 한다. 네가 사랑한다는 남자의 앞에 두 개의 문이 있다. 한 곳에는 호랑이가, 한 곳에는 이 나라 최고의 미녀가 있고, 어느 문으로 나갈지는 네가 선택할 수 있다. 호랑이가 있는 문을 선택한다면 그는 죽게 될 것이고, 그 반대의 문을 선택한다면 그는 살겠지만, 그 여자와 결혼해 평생 살아야 한다. 어떤 쪽이든 너와는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이다. 자, 너는 어느 쪽을 선택하겠니? 이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고, 당신의 곁에 있는 그 사람에 대입해 생각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사비타'라는 줄임말로도 한번쯤 들어본 적 있음 직할 정도로 오래 전통을 이어온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가 새롭게 각색된 이야기로 돌아왔다. 1995년 초연 후 큰 인기를 끌어왔던 창작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의 제작진이 새로이 스토리를 다듬어 선보이는 무대이지만, 제목 이외의 캐릭터와 스토리, 음악 등 모든 부분이 다른, 한마디로 새로운 창작 뮤지컬이다. 1952년도에 나왔던 같은 제목의 영화와도 전혀 다르다.

일단 영화에 대한 첫 감상은, 억지스럽지 않은 전개와 감성적인 어쿠스틱한 노래들로 지루할 새 없는 90여 분의 시간 동안 배우들과 함께 즐기고,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사이 사이 웃음을 주는 소소한 장치들에 많이 웃기도, 또 예상치 못했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만큼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하는 공연이었다는 생각이다. 소극장이라는 장소가 가질 수 있는, 배우들이 관객 가까이서 호흡한다는 장점을 살리면서, 작은 무대여서 좋았지만 기대 이상의 호연으로 앞으로 더 큰 무대에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배우들의 매력으로 충만했고, 특히 '학생과 골든리트리버 샘, 경비, 기상 캐스터, 기획사 사장' 등을 모두 아우르며 깨알 같은 유머를 제공하는 조연배우의 활약도 눈여겨볼 만했다. 주인공들의 사랑을 다루며 일면 현실의 장애에 부딪혀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고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학생 커플의 이야기나, 개와 주인의 사랑 이야기 등 다양한 유형의 사랑을 함께 이야기하며, 더 단조롭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해가기도 한다.

   
 

새로이 돌아온 2014년의 '사랑은 비를 타고(이하 사비타)'는 '신(新) 사랑과 영혼' 정도의 부제를 붙인다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버린 애인을 그리며 하루 하루 힘들게 버티고 있는 그녀의 곁을 죽은 그가 떠나지 못하고 맴돌고, 자신을 볼 수 있는 '영매'를 통해 그녀에게 못 다한 사랑을 전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이 두 작품은 유사한 스토리 설정을 가진다. 하지만 '사비타'가 '사랑과 영혼'과 다른 점은, 그 둘을 매개해주는 '영매'가 우피 골드버그가 분했던 중년의 여성이 아니라, 사랑했던 그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 젊은 남자이고, 우연적이지만 필연적으로 등장한 그가 둘의 사랑을 이어주는 수동적인 존재만이 아닌, 더 적극적인 존재로 활약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더 흥미로운 스토리가 전개된다.

   
 

죽어서도 쉽게 끊어지지 못하는 둘의 오롯한 사랑이야기만이 아닌 삼각관계가 형성되는데, 그 삼각관계에서 그녀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현실의 두 남자가 아닌, '과거의 사랑과 환영', 그리고 '현재와 새로운 인연'이라는 점에서 흔한 삼각관계와도 차이를 지닌다. 그들이 진정한 하나의 사랑이었다면, 그가 죽어서 이제는 함께할 수 없음에도 그 사랑을 지켜야 하는가, 아니 어쩌면 함께하지 못하는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니 함께 죽는 편이 낫겠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이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일까? 죽은 연인이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도 궁금해진다. 자신 없이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그녀가 안쓰러워, 이제는 내가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산 사람은 제대로 살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녀가 새로운 인연에 마음을 열려고 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그랬듯 그의 연인 역시 죽을 때까지 나만을 사랑하고 기억했으면 하는 욕심을 낸다.

이와 비슷한 줄기를 가지는 몇 개의 작품들이 있다. '사랑했던 죽은 연인과의 소통'을 소재로 다룬 다양한 이야기들 중 앞에서 언급했던 '사랑과 영혼'이나 '사비타'는 '영매'라는 또 다른 살아 있는 사람을 통해 연인에게 접근하고 간접적으로 소통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반면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드라마 '카무플라쥬'는 판타지적인 설정을 통해서든 상상의 공간을 사용해서든 사랑했던 두 사람이 죽음 이후에 직접 다시 만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그리고 이 둘의 인연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에 있어서는, 어쩌면 서로 완전히 다른 결말을 보인다고 할 수도 있겠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두고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비의 계절이 되어 다시 돌아온 '미오'는 다시 이 계절이 끝나 그들을 떠나야 하는 때가 오자, 자신이 없는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남편의 직장동료 '나가세'를 만난다. 그리고 자신의 남편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남편 '타쿠미'와 아들 '유우지'를 부탁할 수 없을지 간절히 묻는다. 자신은 곧 돌아가야 하고, 그래서 모든 것에 서툰 타쿠미와 유우지가 걱정된다고, 두 사람을 부탁하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던 그녀는 결국 눈물을 터트리며 스스로 내뱉은 그 말을 다시 거두고 만다. “미안해요. 난 그렇게 멋진 사람이 못 되어요. 두 사람이 걱정되지만, 타쿠미가 다른 여자와 사는 건 싫어.. 다른 누구를.. 다른 누구와 사랑에 빠지는 건 싫어요. 미안해요.. 그냥 잊어 주세요.”라고 말하며. 결국, 남편과 아들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걱정하지만 그들에게 자신을 대체할 아내이자 엄마인 누군가가 생긴다는 것이 괴로운 그녀는, 그들을 부탁하지도, 그냥 떠나지도 못한다. '나가세'에게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는 당신 이외에 누군가를 여자로 좋아할 리도, 사랑할 수도 없을 거에요.”라는 말을 듣고서야 겨우 안심한다. 그녀가 떠난 후에도, 타쿠미와 유우지는 유일한 여자이자 엄마인 '미오'를 기억하고 사랑하며, 꿋꿋이 살아간다. 다른 누구로 그 자리를 대체하려 하지 않고, 그래도 부족함 없이 서로를 의지하면서.

 

   
 

[카무플라쥬]에서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떠나버린 애인 '타카노'는 '치카'가 잠이 들면 나타나 함께 생활한다. 그녀는 결국 그가 없는 세상에 홀로 있는 것보다, 그와 함께 하고 싶고, 그 세상이 더 현실 같아, 더 이상 깨고 싶지 않아한다. 일어나 수면제를 먹으며 계속 잠을 청하고, "나 계속 꿈 꿀거야. 더 이상 깨지 않아도 돼. 타카노군이 있는 세계가 좋아"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는 타이르듯 이야기한다. "우리 언제라도 만날 수 있어. 앞으로도 꿈 속에서, 그렇지만 치카는 꿈에서 깨서 진짜 밥 먹고, 진짜 전철 타고, 진짜 목욕하고, 진짜 침대에 눕지 않으면 안 돼. 나는 죽었고, 치카는 살아있어. 그렇지?"라고 말하며, 그녀를 현실의 세계로 돌려보낸다. "왜 그런 말 하는지 모르겠어. 알지만 모르겠어"라며 그녀는 오열하지만, 아마도 결국 현실로 돌아와 현재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비의 계절을 거치며, 과연 '사비타'의 주인공 그녀는 과거의 사랑, 그 기억을 지킬까? 아니면 새롭게 다가온 인연에 닫힌 마음을 열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될까? 영혼만이 남아 있는 그녀의 연인은 그녀의 행복을 바라며 그냥 순순히 사라질까?

다가오는 여름, 비의 계절에 보면 더 좋을 공연 '사비타'는 이런 질문에 답을 하며, 왜 늦게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지금 죽는다면, 당신은 어디에 남아, 무엇을 할 것 같은가요?라는 질문과 함께.

 [글] 아띠에떠 미오 artietor@mhns.co.kr

미오(迷悟):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심리학,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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