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리디아>'Self-Drama in 生' 문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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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trum Mundi (연극은 인생이다)"

테아트럼 문디! 인류역사상 가장 풍요한 은유를 담고 있는 명제에서 시작해보자. 이 말은 원래 "세계는 무대이다"라는 피타고라스의 드라마적 은유가 16세기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 시대에 와서 일반상식화되었던 것이다. 20세기에 오면서 이제 이 말은 흔하디 흔한 표현이고 닳고 닳은 은유라 싫증나서라도 안 쓰고 싶을 만큼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아직도 인생을 두고 이 말을 대체할 만한 은유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물린 담론을 화두에 올려보는 이유는 나 자신이 배우이기에 던지는 근시적 사고에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일상들을 경험하며 각자가 마치 그 명제의 산증인들이 되어 타당성을 매순간 증언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절감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내가 쓰고, 내가 출연하고, 내가 만들어가는 'Self-Drama 연속극'임을 자인하는 취지에서의 발로이다…[편집자주] 

   
 

얼마 전 연극계 전설적인 선배님을 대학로 어느 커피전문점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한눈에 봐서도 많이 여의신 것 같아 건강을 여쭈었더니, 심장 혈관 수술을 받으시고 지금 막 병원에서 퇴원하는 길이라 하셨다. 통상 이럴 경우엔 곧장 집으로 가게 될 텐데, 어떻게 커피전문점으로 바로 오셨는지 의아해 했더니, 커피 잔을 높게 드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병상에 누워 있을 때, "내가 퇴원만 해봐라. 바로 이 친구 만나러 갈 테다"라 하셨단다.

'아. 선생님께는 커피가 가장 만나고 싶은 친구였구나.'

왠지 씁쓸한 기분이 스치던 잠시, 마침 테이블위에 놓여있던 대본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 인생 얘기야. 어쩌면 이게 마지막 공연일 될지도 모르지."

하시면서 그토록 천진난만하게 웃으셨다. 애잔함을 뒤로하고 바라본 대본 표지에 큰 글씨로 쓰인 '인생; 활착(活着)'이라는 제목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배우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 저마다 습관들이 있다. 누구는 관객석에 한참을 앉아있다 오기도 하고, 끊임없이 대사를 웅얼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입을 꾹 닫고 혼자 구석에서 침묵으로 집중하기도 한다. 나의 습관은 불 꺼진 무대에 한참을 맨발로 걸어다닌다.

그러면서 첫 등장부터 퇴장까지의 동선을 쭉 되짚어 본다. 우선은 바닥의 기운과 밀착되어 균형감과 안정감을 느끼기 위함이고 더 중요한 목적은 장면들과 행위들의 정서의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 보면서 정리해보기 위해서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극적 상황에 맞게 자신을 조율하는 작업이다. 방법이야 어떻든 이런 행위들의 공통점은 무대 위에서의 균형감과 안정감을 준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어디에 갈지, 무엇을 할지, 누구를 만나고 어떤 얘기들을 나눌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에 맞는 옷을 고르고, 헤어스타일을 결정하고, 기분 소위 컨디션 조절을 한다. 마치 배우가 무대로 나갈 준비를 하 듯, 나에게 주어지는 상황들로 인해 '오늘'이라는 세상의 무대로 나갈 준비를 하는 과정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작곡가가 총 악보를 그리고 톤(Tone)을 적어내는 것과 같다. 연기예술학에도 같은 비유의 용어가 있는데 이 때의 총 악보와 톤은 음악적 의미의 그것들보다 인물의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숨 한번 크게 쉬고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드라마가 시작된다.

하루 동안 우리는 시간과 정신적 흐름 '과정의 연속성' 안에 살고 있다. 이 흐름 속에 나와 너의 '희. 노. 애. 락' 으로 만들어지는 일상들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엮어지고, 다시 엉겨가며 그 나름대로 스펙터클한 드라마를 만들어 간다. 개개인의 욕구충족을 목표로 눈으로 보이지 않는 내면심리의 음극과 양극들이 그야말로 치열하게 부딪치면서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있는 모습이 나무의 활착성(活着性)과 참 많이도 닮았다.

집에 돌아와 하루를 지배하고 흘러갔던 정신적 흐름의 세계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보며, 또다시 내일로 가는 액팅 플랜(Acting Plan)을 짜보자. 스스로 정신적 회로가 될 악보를 그려 주고 정신적 톤과 정서 상태의 핵심 '알맹이'를 찾아내려 애써보자. 그러다 보면 삶의 균형감과 안정감이 생길 것이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제대로 걷는 데만 10년 이상의 경험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신출내기 배우들의 연기력이 제아무리 재기발랄해도 노배우의 밀착됨에는 어림없듯이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겁낼 것도 없다. 어차피 연극에서의 정신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은 어쩌면 이데올로기 밖에 존재기 하기에 그려내는 어떤 장르의 드라마에도 사용될 수 있으니 말이다.

작은 손가락만 한 크기의 귀퉁이를 잘라 접목하거나 옮겨 심은 나무나 식물이 강인한 자생력으로 다시 붙거나 제대로 뿌리를 내려 소생한다는 의미의 '활착(活着).'

쓰러질 듯 다시 일어나 각자 나름대로 그 어딘가에 삶에 뿌리내리기를 희망하는 우리에게 이 얼마나 치열하다 못해 숭고함마저 느껴지게 하는 말인가?

[글] 문화뉴스 박리디아 (Lydia Park)_본지 부사장) golydia@mhns.co.kr

   
▲ 90년대 광고계 퀸, 박리디아는 대한항공, 삼성전자, LG 화학의 전속모델이었으며, "여자는 한 달의 한 번씩 마술에 걸린다"는 유명한 카피문구의 광고모델 주인공이다. 러시아와 뉴욕에서 연기전공을 하고 돌아와 모델 배우 방송인으로 매체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이고 국내 모델출신 연극영화과 교수 1호이기도하다. 또한 현재 주)문화뉴스의 부사장, 사)아시아 청년예술가협회 이사장직을 겸하며 명실공히 문화예술계 영향력 있는 인물로 급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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