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빈센트 반 고흐의 꿈, 들어본 적 있나요?

빈센트 반 고흐 서거 125주기.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를 비롯해 그를 기리는 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이 시기적절하게 공연 중이다.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그 주인공이다.

사람마다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떠올리는 것은 다양하겠지만, 결과는 한 곳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란 물감을 많이 사용한, 화가로서 재능은 뛰어났을지 몰라도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른 미치광이. 살아생전 자신의 그림을 하나도 팔지 못했을 정도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신경 쇠약에 시달리는 등 불우한 삶을 살았다는 것 또한 이 결론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알려고 하지 않았던 한 사람에 대해 말해준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빈센트 반 고흐가 들려주는 별과 달의 하모니를 듣다 보면 비로소 당신은 오롯이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 이 작품에서 특히 당신이 주목해야 할 세 가지를 꼽아봤다.

 
▶ 빈센트 반 고흐 & 테오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는 학교 미술 수업 시간에 한 번쯤은 다뤘을 법한 인물이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덕분에 그의 그림 특징이나 노란색 물감이 그의 상징으로 쓰인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학습을 위한 교육에는 철저히 '화가' 빈센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빈센트의 알려진 모습에만 치중하다 보니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른 미치광이로 평가 절하되곤 했다.

작품은 인간으로서의 빈센트에 집중했다. 목사 집안의 장남인 빈센트가 받았던 압박, 시엔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현실. 모르는 남자의 아이를 가진 창녀로 손가락질받는 시엔을 진심으로 사랑한 빈센트에게 돌아온 건 가문을 먹칠한다는 비판뿐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 그림이라도 마음껏 그리고자 했으나 작품이 팔리지 않아 경제적 상황도 악화하면서 빈센트는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한편 빈센트의 삶은 동생 테오와 함께한 일들로 가득하다.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에서뿐만 아니라 빈센트의 흔적을 좇다 보면 당연하다는 듯 테오의 흔적 또한 발견된다. 테오는 빈센트에게 단순한 동생이 아니라 경제적 지원자이자 보호자였고 형의 꿈을 응원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작품은 이러한 관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빈센트와 테오가 실제로 주고받은 700여 통의 편지를 바탕으로 극을 만들었다. 주고받는 편지 형식이다 보니 빈센트와 테오가 실제로 마주치는 장면은 몇 안 되지만 형제애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더구나 초연과 비교하면 테오가 작품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왔다. 초연의 테오가 빈센트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해설자였다면, 이번 공연에선 빈센트와 극을 함께 이끌어가는 구성원이 됐다. 마비성 치매로 몸이 굳고 앞이 안 보이게 되는 상황에서도 형의 유작전을 볼 수 없는 것에 가장 좌절하는 동생 테오. 형을 위하는 동생의 마음이, 동생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해하는 형의 마음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 시절, 밀이 흔들리는 소리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영상이 그 첫 번째다. 극장에 처음 들어선 관객이라면 무대를 보고 의아함을 느낄 수도 있다. 무대라곤 작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하얀 벽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박해도 너무 소박한 무대에 놀랐다면 극이 시작함과 동시에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하얀 벽에 영상이 입혀지면서 고흐가 지나다녔던 거리와 그의 방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며 나도 모르게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작품은 100여 년 전에 그려진 그림과 3D 프로젝션 맵핑 등의 최첨단 영상기술을 접목해 살아 움직이는 반 고흐의 명작으로 무대를 꾸민다. 2D로 그려진 빈센트의 그림은 첨단 영상을 덕분에 하얀 벽을 '고흐의 방'으로 만들어주고 '꽃 핀 아몬드 나무'가 눈앞에서 흩날리게 해준다. '별이 빛나는 밤', '카페 테라스' 등이 펼쳐지는 무대를 보며 관객은 배우와 무대, 어느 곳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다. 특히 배우의 손짓에 따라 완성되는 그림은 정말 빈센트가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생생함을 전달해준다.

뮤지컬에서 음악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더욱이 '빈센트 반 고흐'처럼 인물 간의 극한 대립이나 긴장 요소가 두드러지지 않는 극에선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음악만큼 적절한 요소가 없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빈센트가 밀밭에 서 있을 때 들려오는 바람 소리였다. 관객 모두가 밀밭에 서 있는 것처럼 조용한 극장에 퍼지는 밀이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 고민을 한 아름 안고 그곳을 거니는 빈센트와 함께 관객들도 덩달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빈센트를 보고 있자면 극장이 아닌 무대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실제로 그를 마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 빈센트의 꿈은 정말로 빚을 진 것일까?

그림이 팔리지 않는 빈센트가 동생에게 생활비를 부탁하면서 그의 비참함이 최고조로 이르는 순간, 그는 자신의 무능함으로 다른 사람에게 신세 지는 것을 "내 꿈이 진 빚"이라며 울부짖는다.

빈센트의 절규가 현실과 전혀 상관없진 않아 씁쓸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주변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공만을 요구하는 세상은 꿈을 좇는 건 현실을 모른 채 이상적인 소리를 하는 것이라며 손가락질하기 일쑤다.

빈센트는 절규한다.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을 뿐인데 왜 세상은 자신에게 이리 혹독한 것이냐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더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할 때도 돌아온 건 예술가들의 고질병인 신경쇠약을 가진 미치광이란 비판뿐이었다. 함께 생활했던 고갱조차 빈센트를 하나에 집중하면 그것밖에 모른다며 비판했고, 결국 그의 곁을 떠났다. 이러한 과정에 빈센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나는 과연 무엇인가?"

결국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름으로써 무언가를 확인하려 한다. 자신도 이 세상의 구성원임을, 분명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경제가 어려워지고 취업난이 가속화되면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게 된다는 '삼포 세대'란 말이 등장했었다. 당시 우스갯소리로 넘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삼포를 넘어 오포 세대란 말까지 생겼고 더는 우스운 소리로 치부되지 않는다. 자신의 꿈이 진 빚, 즉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가해지는 많은 압박에 짓눌리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르기 전에 부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길이 생기길 바란다.

물론 위에서 꼽은 세 가지 말고도 극을 완성하는 요소는 많다. 에어컨이 가동되며 다소 쌀쌀한 극장 내부였음에도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열연을 펼치는 배우들, 중간중간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 등 관객이 꼽는 재미 요소는 다양할 것이다. 오는 8월 2일까지 공연하는 '빈센트 반 고흐'를 보며 당신만의 재미를 찾는 것도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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