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도씨, 극단 페로자, 일요일의 사람들, 창작집단 3355, 프로젝트XXY

[문화뉴스 MHN 서울프린지]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4일간 진행되는 다양한 예술인들의 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로 20회를 맞은 프린지 페스티벌은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52팀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다채로운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많은 팀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프린지(FRINGE)의 알파벳 철자가 지닌 키워드를 쫓아 공연을 보는 것은 어떨까?

다섯 번째 'G' Gender

한국 사회에서 기존의 젠더 담론은 오랜 기간 특정 성 정체성 및 성 지향성이 화두가 되어왔다. 젠더에 대한 논의 자체가 아직은 사회 보편적으로 타당성을 얻지 못하고 있는 현실임에도, 그 안에서도 또 다시 주류와 비주류가 엄연히 존재한다. 주변부로 밀려난 주체들은 지워져 가는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고 성원권을 존립시키기 위해 젠더와 계급으로 스스로를 분류해 라벨링해왔다. 하나의 구분에 속했던 주체들은 그 속에서 차이와 갈등을 겪고 동류를 찾아 연대하고 새로운 집단정체성을 찾는다. 하나의 문화가 주류의 반열에 오르면 그 끝자락에서 또 다른 서브컬쳐(하위문화)가 생성되듯, 젠더 스펙트럼의 다양화와 가시화는 '경계'와 '구분짓기'의 순기능이라 할 만하다.

 

구분짓기와 수난 : 프로젝트 XXY의 '젠더 트래지션' & 일요일의 사람들의 '이반의 쉐도우 복싱'

 

연구적 성과와 별개로, 이러한 과정에서 젠더는 이제 그 본질보다는 하위 개념의 재생산에 좀 더 주목되어지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를 '젠더의 수난'이라 표현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니, 이제 젠더에 대한 논의는 그러한 '구분짓기'를 거치지 않고는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없게 된 것일까.

이와 비슷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작품이 '프로젝트 XXY'의 '젠더 트랜지션'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은 어디로부터 출발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모인 사람들이라고 전한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 출발 지점을 '젠더'로 설정한 것은 그만큼 내적으로 많은 층위를 가지는 요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성원권을 주장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스스로를 특정 단위 집단에 배정한다. 가령 스스로의 성 지향성이나 성 정체성에 대해 아직 규정하지 않은 이들을 '퀘스쳐네어'라고 굳이 명명하는 것에서 이미 우리는 구획화와 개념화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젠더 트랜지션'은 이를 2개의 축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4분면 위에 존재하는 좌표로 해체함으로써 기존의 개념적 분류를 거부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스펙트럼 위에 놓인 하나의 완전한 개체로 접근한다. 국적(문화권), 인종, 장애, 연령, 소득분위 등 단위를 차치하고서 젠더 자체만으로 이미 내재적 교차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전환'은 어떻게 발생하는지 관객들로 하여금 직접 체험하게 해줄 것이다.

일요일의 사람들 ⓒ 프린지페스티벌

'일요일의 사람들' 역시 '이반의 쉐도우 복싱'을 통해 역시 기존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선보일 예정이다. 가상의 인물을 내세우고 있으나, 배우가 보여줄 모든 말과 행동은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경계를 허무는 주제의식은 공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형식적 실험과 맞닿아있기도 하다.

매주 일요일마다 모여 즉흥으로 영화를 촬영하는 것이 '일요일의 사람들'이 해오고 있는 예술활동의 주축이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 그리고 '프레임'이라는 제2의 공간 외에 달리 짜인 것이 없는 이들의 영상 프로덕션은 하나의 놀이에 가깝다. 그리고 매체가 영상에서 공연으로 옮겨오면서 그들은 무대 공간에 스크린을 옮겨옴으로써 가상의 이야기에 실제적 이미지를 중첩한다.

모든 경계가 모호해지는 베뉴 안에서 일상의 성격을 띤 도큐멘트(기록물)가 일상을 본뜬 가상의 이야기와 플롯을 어떻게 지배해나갈 것인지가 공연 관람의 주된 포인트일 것이다. 경계가 없어진 공간에서 허공에 날리는 잽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지금도, 여전히, 소수자 : 창작집단 3355의 '이방연애' & 20도씨의 '마이그래비티'

창작집단 3355 ⓒ 프린지페스티벌

우리가 의식적 구분짓기를 하기 전부터 존재해온 프레임이 있다. 남성↔여성/이성애자↔동성애자의 젠더 이분법이 그것이다. 논의를 젠더 즉 이분법적 성 정체성(시스젠더를 전제로 한)과 성 지향성으로만 놓고 보았을 때, 남성-이성애자, 여성-이성애자, 남성-동성애자, 여성-동성애자 간의 계급 구도가 존재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계급을 결정하는 조건이나 요소는 젠더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속된 집단의 성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보편 사회는 이성애자 남성을 중심부로 나머지는 주변부로 밀려나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 중 특히 동성애자 여성은 흔히 말하는 우라 사회의 '동성애 논란'에서도 아예 그 존재 지워지기도 한다. (퀴어 담론 안에서는 다른 관점도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젠더 이분법을 전제로 했을 때의 얘기다.)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이 찬반 논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나 어디까지나 가시적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는 것이 중요하다. 많이 떠들고 많이 싸우는 만큼 얻어지는 것이다.

'창작집단 3355'의 '이방연애'는 10대부터 40대까지 비교적 다양한 연령대 퀴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성'인 동시에 '퀴어'는 이 사회에서 변방 중 변방에 속해있는 이방인이다. 작품 소개에 '동성애자'가 아닌 '퀴어'나 '소수자'라는 워딩을 택한 것에서 이들이 다룰 '여성' 역시 'Woman'이 아닌 'Female Body'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태어나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한 '이방연애'는 소수자(퀴어)가 조금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소수자(어성)에게 자신들의 위치와 존재를 증언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다양한 실험 영상과 미디어 퍼포먼스를 하는 집단으로 이번 작품 역시 다소 저널리즘적 성격을 띤 다큐멘터리 연극으로 불 수 있겠다. 자신의 삶을 증언하는 퀴어 여성 한 명 한 명의 신체가 독립된 매체이자 아카이브가 되어 대안적이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 무언가가 부디 그들의 창작 의도에 부합하길 소망하는 바이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여성들이 있다면 끊임없이 물음을 이어나가며 표류하는 여성들도 있다. '20도씨'의 '마이 그래비티'는 평범하고 찌질한 여성들의 여정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들 모두가 여성이라는 것 외에는 각자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물음을 던지고 종국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짧은 시놉시스만으로 그들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는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공감, 용기 그리고 연대다. 자기 안의 나약함을 함께 공감하고 또 용기 내어 줄 누군가를, 다이빙대에서 만나 함께 손을 잡고 물속에 뛰어들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것으로 나아가는 방식이 '표류'와 '물음'이 아닐까 한다. '표류'라는 단어를 쓰고는 있으나, 그들에게 이 여정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길 것이기에 결국 어디에 닿을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일 뿐 목적이나 방향을 완전히 상실하고 방황하고 배회하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된다.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위는 결국 답을 그들 자신 안에서 찾아낼 것이라는 반증이기에, 표류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중력은 지구의 중심부를 향해 그들의 몸을 단단히 잡아주고 있기에.

 

관계의 작용으로 녹아드는 젠더 이슈 : 극단 페로자 '오해'

극단 페로자 ⓒ 프린지페스티벌

존재를 증명하고 성원권을 주장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우리는 많은 드라마를 잃게 될 것이다. 젠더 이슈는 현실에서 특수한 상황보다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훨씬 더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극단 페로자'의 '오해'는 개인의 욕망과 도덕적 신념 사이의 선택과 이로 인한 가족구성원들의 갈등을 주제로 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무너뜨려 관객에게 '자본'과 '가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는 이 작품은 갈등 구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을 젠더 이슈를 기대하게 한다. '자본'과 '가족'이라는 키워드 자체만으로도 젠더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들이지만 무엇보다도 가족구성원 안에서 서로 다른 젠더 계급에 속한 아들, 아들의 부인, 어머니, 그 딸, 이 4명의 주체가 어떤 갈등 양상을 보여줄지 그리고 '극단 페로자'는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상으로 살펴본 올해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작들을 통해 프린지를 찾는 관객들이 젠더 이슈에 대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국내 최대의 독립예술축제인 만큼 다양한 주제와 작품들 속에서 이렇게나 다양한 젠더 담론을 읽어내게 되리라는 점도 흥미롭다. 그 어느 때보다 기다려지는 여름이다.

문화뉴스MHN x 프린지페스티벌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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