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배우 임요셉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낭만을 꿈꾸는 자유로운 방랑자'라 말하고 싶다.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자연을 좋아해 한 달에 한번은 꼭 여행을 간다고 말하는 임요셉의 모습에서 현대인의 조급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천진한 매력이 배우 임요셉을 더 빛나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 포토그래퍼 우윤구

올해로 스물아홉의 젊은 청년은 보기보다 많은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뮤지컬 '모차르트!'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연극 '거꾸로 가는 시계'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경력을 쌓았다. 곧 있을 영화촬영과 연극으로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그의 매력을 함께 빠져보자.

배우 임요셉은 어떤 사람인가?
ㄴ 한마디로 말하자면, 실전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했다. 다른 분들을 보면 유학파가 많은데, 나는 그냥 청주사람이다. 뮤지컬을 늦게 시작한 편인데,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한 달 앞두고 진로를 바꿨다. 원래는 국어선생님이 꿈이었다.

대학교 수업에서 박칼린 학과장님을 만나 뮤지컬의 정수를 배웠다. 그 때 뮤지컬에 흠뻑 젖었다. 지금 생각하면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 뮤지컬에 관심도 없던 내게 뮤지컬에 빠질 수 있는 자양분을 주셨다.

첫 작품은 무엇인가?
ㄴ 공식적으로는 '더 락'이다. 스물 여섯에 첫 주연을 맡은 작품이었다. 베드로와 예수에 관한 이야기로, 작품에서 예수를 연기했다.

작품들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ㄴ '더 락' 공연 하는 도중에 대형사고가 있었다. 아직도 잊지 못 한다. 음향 오퍼가 나가서 새로운 음악 오퍼가 들어왔는데 실수를 너무 많이 했다. 한번은 공연중에 음악을 잘못 틀었다. 클라이막스에 예수가 못이 박히는 장면이 있었다. 노래와 함께 불이 꺼지면 '쾅, 쾅, 쾅'하고 못 박는 소리가 나야하는데, 다음 트랙인 갈매기 소리가 '끼룩, 끼룩, 끼룩'하고 들렸다. 그 순간 힘이 풀리더라. 원래는 사람들이 그 장면에서 많이 우는데, 아무도 없는 듯이 조용했다. 그 전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이 한 순간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풍산개 500마리 앞에서도 노래한 적이 있다. 배우를 위해서 물 불 가리지 않고 풍산개축제, 문경 찻사발축제, 영덕대게축제 등 행사장을 돌아다녔다. 그 중에서도 풍산개축제가 제일 인상깊다. 사람은 서너명에 풍산개만 4~5백마리가 있는 트럭 위에서 '노트르담의 파리'의 '벨'을 불러야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다.

풍산개축제가 가장 힘들었나.
ㄴ 창작뮤지컬 '블루블랙'을 했을 때가 제일 힘들었다. 3달동안 연습했는데 성대 결절이 와서 무대에 서지 못했다. 결국 공연에 올라가는 친구들을 준비시키는 스태프일만 했다. 너무 힘들었다. 공연 계약도 잘못해서 5달 동안 100만원을 받았다. 생활고와 여러 상황에 슬럼프가 왔었다.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 유학을 가려고 했다. 그래서 영어학원에도 3달동안 다녔다. 그러던 도중에 성대결절도 낫고, 다시 노래할 기회가 생기더라. 주어진 기회를 계속 잡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취미생활이 궁금하다.
ㄴ 캠핑,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즉흥 여행. 터키, 태국, 베트남이 좋았다. 최근엔 라오스를 갔다 왔는데,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면서 곳곳을 돌아다녔다. 국내여행도 좋아한다. 가장 동쪽인 독도부터 서쪽 끝에 있는 홍도, 최남단인 제주도랑 우도 등 안가본 곳이 없다. 최북단은 군대로 다녀왔다. (웃음)

롤 모델이 있나?
ㄴ 류승룡 배우가 롤 모델이다. 시작을 방송이나 영화가 아닌 공연 무대에서 하신 것도 좋고, 탄탄한 무대경험으로 늦은 나이에 방송쪽으로 진출했지만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이 존경스럽다. 나도 연기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나중에 류승룡 선배님처럼 배우 일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

영화를 준비한다고 들었다.
ㄴ '우리들의 천국을 위하여'라는 뮤지컬 영화로 '장선'이란 역할을 맡았다. '장선'은 악의 정점에 있는 '안타고니스트'다. (안타고니스트는 연극에서 주인공과 가장 대립하는 인물을 지칭한다.) 독립영화로 영화제에 출품예정이다. 뮤지컬 영화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많은 경쟁률을 뚫고 주연을 맡았다. 뮤지컬 영화는 처음인데, 같이 호흡을 맞추는 감독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라고 들었다.

   
 

현재 연기학원에서 성인연기반을 맡고 있다. 가르치는 데 있어서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ㄴ 내가 배울 때 답답했던 건 배우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뮤지컬을 공부했을 때는 성악 레슨만 받았다. 그런데 뮤지컬을 하다 보니 뮤지컬이랑 맞지않은 점이 많았다. 락 뮤지컬에선 락 발성이 필요했고, 클래식 뮤지컬에는 클래식적인 발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만의 노하우는 현재 뛰고 있는 현직자의 입장에서 좀 더 실제적인 것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더 알려주는 것이다. 실제 공연에서, 축제에서 얻은 경험들이 많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
ㄴ 작년에 만난 첫 번째 학생이 특별하다. 처음 만났을 땐 뮤지컬과에 들어가기에 조금 부족한 실력이었다. 그런데 두 달 만에 서울예대 뮤지컬과를 보냈다. 소리를 잘못 쓰고 있어서 그 부분을 짚어줬더니, 확 살더라. 물론 그 친구가 쌓아왔던 실력도 있었고. 나중에 알고보니 그 친구말고도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이 동기로 들어갔다더라. 정시로 4명을 뽑았다고 들었는데, 그 중 2명이 내 제자였다.

   
 

앞으로의 목표를 들려달라.
ㄴ 인생에 있어서 최종 목표는 두가지다. 하나는 현장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경험과 이론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일단 배우로 성공하게 되면, 두 번째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문화뉴스 김관수 기자 gs@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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