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이 제삿날 밤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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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연극보러 대학로에 왔어요 :) 

"효. 안타까움. 미안함. 죄책감. 자비. 자유. 이 모든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다."

귀덕이가 심청이의 이야기를 토대로 지은 '심청전'이 성황당 제사상 위에 놓인 채 막이 내린다. 연극 '심청전을 짓다'는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졌던 그 시절 '심청전'을 지어내고, 전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의 '여성'과 우리 고유의 정서인 '효'와 '한'을 담아낸 작품이다.

연극 '심청전을 짓다'에서 느낀 사랑은 크게 심청이를 중심으로 한 '효'에 관한 사랑과 '아씨' 중심으로 보이는 '한'과 관련된 사랑이다. 그리고 마지막,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효'가 '한'을 덮어 하나의 '사랑'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 '심청전을 짓다'무대. <성황당>

비 내리는 어느 날, 이 연극의 부제목처럼 심청이의 제사를 지내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이다. 심청이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남경상인'과 '귀덕이', 그리고 '귀덕이의 어머니'가 함께 심청이가 살아생전 기도하던 성황당으로 들어온다.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치며 비가 내리던 중 비를 피하려고 그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심청이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곳에 우연히 모이게 된 사람들. 열녀가 되라는 압박 속에서 마음의 병을 얻은 양반댁 '아씨', 그런 그녀의 자유를 위해 '아씨'를 모시고 도망쳐 온 그녀의 몸종 '만홍' 그리고 그들을 쫓아온 '양반 나으리'와 '선달'.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시체를 업고 들어온 천한 노비인 '개동'이다.

이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 속에서 느낀 사랑은 참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다.

물론 가장 으뜸인 사랑은 아버지를 향한 심청이의 효심일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이 흔한 말을 한 큐에 뒤집는 심청이의 사랑을 보며 과연 나는 부모님께 잘하고 있는가.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귀덕'이가 극중에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들기 전 미안하다는 말을 세 번 외친 것에 대한 해석을 해주는 장면이 있다.

첫 번째 미안함은 아버지를 혼자 두고 먼저 떠나는 것에 대한 미안함. 두 번째 미안함은 아버지가 눈을 뜨는 것보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음에 대한 마음. 마지막 미안함은 막상 뛰어들려니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커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미안함이다.

   
▲ 극장 입구

그리고 심청이를 중심으로 한 극중 인물들에게서 발견한 사랑은 다양한 모습의 사랑이었다.

젖동냥하며 자란 심청이에게 젖을 먹여주던 귀덕이 어머니는 심청이를 자식같이 생각했고, 귀덕이 역시 심청이와 함께 가족처럼 자랐다. 극중 '아씨'의 말을 빌리자면 심청을 팔아넘겼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귀덕이네' 그리고 인당수에 빠지려는 심청을 제대로 말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미안해하는 '귀덕이'. 이런 두 모녀에게 심청을 향한 사랑은 안타까움과 미안함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심청이를 배에 태워 인당수에 데리고 가 마지막에 심청이의 손을 놓아버린 '남경상인'의 사랑 역시 심청이를 빠뜨려 죽였다는 죄책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금까지 심청이를 중심으로 한 '효'에 관한 사랑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아씨'를 중심으로 보이는 '한'과 관련된 사랑 이야기다.

혼인을 올리기도 전에 저승으로 가버린 서방님과 혼인을 하고, '열녀'가 되라며 목숨을 요구하는 시댁의 압박에 못 이겨 정신을 놓아버린 '아씨'. 먼저 혼신을 담은 그녀의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간의 고통을 꾹꾹 눌러 담은 눈빛과 몸짓에서 한 시대를 살았던 '한' 많은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유를 향한 갈망이었을까. 아직도 내 머릿속을 깜깜하게 만드는 것. 과연 '아씨'는 정말 마음의 병을 얻은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자신을 놓아버린 것일까.

극의 마지막 '양반'에게 감사의 절을 하고 떠나는 '아씨'의 너무나도 멀쩡하고 참한 모습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리고 그런 '아씨'를 마치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만홍'의 모습은 내 마음을 울렸다. 그저 눈빛만으로, 작은 몸짓과 소리만으로도 '아씨'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만홍'.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보살펴야 가능한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효'와 '한'을 모두 품고 있는 이 모든 것의 집합체라 느껴졌던 '개동'의 이야기. 평생 노비로 살다가 힘없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체를 짊어지고 자신의 뺨을 내리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게 아팠을까. '개동이 어머니'의 시체를 '아씨'로 둔갑시켜 어머니 장례를 치름으로써 그간 노비로서 숨죽여 살아야만 했던 어머니의 '한'을 풀고 이를 통해 '아씨' 또한 그 시대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었다.

이들은 '아씨'와 '만홍'을 잡으려 쫓아왔던 '양반'의 자비로 각자가 원하는 길을 가게 된다. "그럼 나는 이 자리에 없었던 것으로 하세". 무책임하고 무미건조한 말 같지만 이 말 속에서 나는 넘치는 사랑을 느꼈다. 자비. 바로 이것이 극중에서 보인 양반의 사랑이다. 그리고 모든 등장인물 중 가장 거칠고 사랑이 없어 보였던 '선달' 역시 극의 마지막에서 '양반'에 의견에 동의하며 모든 일을 눈감아주기로 한다.

이 모든 것이 싸우던 개도 웃게 하였던 심청이의 지극한 효심, 바로 사랑의 힘이 아니었을까.

   
▲ 연극 <심청전을 짓다> 기대기대!!

조금은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는 연극. '심청전을 짓다'

하지만, 배우들의 숨소리와 눈빛, 그들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고 집중한다면 그 안에서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랑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김미혜 mihye0330@mhns.co.kr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리라'. 보기와는 다른 엉뚱하고 발랄한 매력으로 모든 이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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