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케리 케네디 원작 아리엘 도르프만 작 문현아 번역 하일호 연출 김형용 협력연출의 권력에 맞서 진실을 외쳐라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MHN 박정기 아띠에터] 이 연극은 인권운동가 케리 케네디(Kerry Kennedy)가 전 세계 51명의 인권운동가를 인터뷰한 동명서적을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이 희곡으로 만든 작품이다.

케리 케네디(Kerry Kennedy,1959~))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조카이자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의 딸이다. 현재 인권운동가로 활약하고 있는 작가다.

이 연극은 케리 케네디(Kerry Kennedy)가 세계 각지의 인권운동가 51명의 삶을 2년에 걸쳐 5개 대륙 4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기록한 책 '진실을 외쳐라(Speak Truth to Power)'가 원작이다. 1988년에 케리 케네디가 방한했을 당시 자신의 책을 소개하며, "한국 사람들이 내 책을 읽고 인권운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권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 알게 되기를 바란다.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내 책이 주고 싶은 메시지는 '소수의 개인이 세상 전체를 바꿀 필요는 없다. 조금의 노력이라도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간다'는 것이다."

케리 케네디(Kerry Kennedy)의 <진실을 외쳐라(Speak Truth to Power)>를 읽으면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인권운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여성인권운동가들이 당하는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뉴멕시코 태생으로 우르술라회 수녀인 다이애너 오르티스는 과테말라 선교활동 중 89년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돼 윤간과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시체 구덩이에 버려졌다가 탈출에 성공했다.

1981년부터 인권운동을 시작한 케리 케네디는 "당시 세계적으로 '여성인권'이라는 것이 따로 구분되지 않고 있었다."며 "그래서 여성인권이란 것을 찾고자 노력했고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성인권회의'를 172개국이 가입한 상태이며 미국은 아직도 회원국으로 가입하지 않았다"며 "따라서 미국의 갈 길은 아직도 멀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20년 전만 해도 여성 인신매매, 여성 할례, 남녀 임금 차이 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동안 인식의 변화와 함께 상당한 성과를 거두게 됐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여성 스스로의 노력과 여성들을 위해 싸운 아버지, 오빠 등 다른 가족의 인식 변화 덕분이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로선 다소 껄끄러울 수 있는 일이지만, 그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 반대란 의사를 명확히 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인권을 특정 정부를 몰아세우는 도구로 악용해서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며 "인권을 무기로 마치 중세시대에 성문을 부수듯 정권을 몰아붙이는 것은 쉬우나, 그것이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진정 개선하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전제주의 국가이기에 다른 전제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인권의 개선 가능성이 보이고 있지 않다"며 "이 같은 상황들을 문서화하고 세세히 알려 북한 정부의 인권침해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다.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센터를 설립해 아동노동, 실종, 토착민의 권리, 표현의 자유, 인종폭력, 여성의 권리 등 다방면에 걸쳐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온 케리 케네디는 현재 30여 개국에 파견된 30여 명의 인권대표단을 이끌고 있다.

이 같은 그의 활동 뒤엔 암살당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뒤를 이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왔다가 역시 피살당한 아버지 로버트 케네디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아버지는 전 세계를 다니며 마틴 루터 킹 같은 인권운동가들이 독재와 인권 유린에 맞서 싸우도록 도우셨다. 이때 아버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덕목은 바로 용기였다. 이 용기는 바로 도덕적 정의감에 근거한 용기다."라고 강조했다.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 1942~)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칠레에 정착하여 싼띠아고의 칠레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삐노체뜨의 쿠데타가 일어나자 미국으로 망명했고 현재는 듀크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창작활동과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아리엘 도르프만은 칠레의 척박한 현실을 독특한 수법으로 명쾌하게 그려낸 작품들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세계 문화시장에서 친자본주의적인 주류문화와 다른 '대안적인 문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주요작품으로 장편소설 『과부들』, 『콘피덴쯔』, 『체 게바라의 빙산』, 희곡 『죽음과 소녀』, 『독자』, 『가면』, 시집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소설집 『우리 집에 불났어』, 문화비평집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제국의 낡은 옷』, 평론집 『미래를 향해 쓰는 작가들』, 『공포 몰아내기: 삐노체뜨에 대한 놀라운 심판』, 회고록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 등이 있다.

 

연극은 출연자들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 세계 인권운동가 51인의 숭고하고도 감동적인 명대사를 나누어 읊조리며 독백극의 연속처럼 연극을 이끌어 간다. 배경에는 각 인물과 연관된 영상을 투사해 극적 효과를 높인다.

수단의 독재정권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반정부인사 및 남부의 기독교인에게 저지르는 방화와 약탈, 폭행, 투옥, 고문, 학살에 맞서 싸우는 '익명의 인권운동가' 또한 멕시코의 수녀이자 인권 변호사 디그나 오초아는 2001년 10월 19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여러 발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세상은 아직도 인간으로서 누려야 마땅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곳이다.

전 세계 인권운동가 51인의 감동적인 삶이 극에서 소개가 되고, '불의한 권력에 맞서 진실을 외쳐' 자신의 공동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헌신과 용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그리고 그들이 어떤 대의를 위해서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를 소개한다. 그들이 헌신하는 대의는 표현의 자유, 법치주의, 여성의 인권, 종교의 자유, 환경보호, 노예제 폐지, 자본에 대한 접근권, 그리고 적법절차의 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배경에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에디 애덤스가 촬영한 감동적인 인권운동가의 모습이 영상으로 투사가 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데스먼드 투투(남아공의 대주교, 1984년), 엘리 비젤(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루마니아 작가, 1986년),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코스타리카 전 대통령, 1987년), 달라이라마(1989년), 리고베르타 멘추 툼(과테말라의 원주민 인권 운동가, 1992년), 호세 라모스 오르타(동티모르의 독립 및 평화운동, 1996년), 바비 멀러(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국제 지뢰금지운동가, 1997년), 왕가리 마타이(케냐의 환경운동가, 2004년), 바츨라프 하벨(체코의 작가, 전 대통령), 발타사르 가르손(피노체트를 기소한 스페인의 판사), 헬렌 프리진(미국의 수녀이자 사형제도 폐지운동가, 영화 <데드맨 워킹>의 원작자), 무함마드 유누스(방글라데시의 '빈민을 위한 은행' 그라민은행 창립자), 매리언 라이트 에델먼(미국, '아동보호기금'의 설립자)과 같은 국제적인 명사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활동가들은 자신의 나라 밖에서 칭송받기는커녕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성노예였다가 현재는 노예제 폐지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가나의 줄리아나 도그바드지, 가정폭력에 맞서 싸우고 있는 러시아의 마리나 피스클라코바, 정신장애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있는 헝가리의 가보르 곰보스를 비롯한 30여 개국의 활동가들이 소개가 된다.

이 인권운동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묻게 된다. 성공과 승리의 가능성도 거의 없는데 투옥과 고문, 죽음까지 무릅쓰며 그 길에 뛰어들고 그 길을 계속 걷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와 같은 용기는 특별한 사람들이 타고나는 것인가? 이들이 처했던 상황과 조건, 개인적 경험은 다양하고 표현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천직'과 '소명', '하늘의 뜻'이라는 굳은 믿음이든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할 것인가!' 하는 의로운 결단이든, 이들을 움직인 한결같은 힘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 그리고 불의에 대한 분노다. 그들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냉정하고 현실적인 태도로 낙관의 길을 찾는다. 그리고 그들이 걷는 길은, 모잠비크의 소년 병사들을 구하는 일에 여러 차례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아부바카르 술탄의 말처럼 "언젠가는 아이들이 아이로 대우받으며 인간으로서 누려야 마땅한 모든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세상"으로 이어져 갈 것으로 확신한다.

대단원에서는 작은 목소리 하나하나가 모여 큰 소리가 되고 그것이 올바를 변혁을 이루는 길이라고 전한다.

김보경, 박경은, 손인수, 고윤희, 서기청란, 주선옥, 김영표, 안지은, 김범린, 김진희 등 출연자 전원의 절제된 연기와 명확한 대사전달은 관객을 깊은 상념의 세계로 인도를 하고 연극의 주제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조연출 박희연, 피디 쭈야, 양상 사진 루피, 디자인 농담, 오퍼레이터 이건희, 진행 김선미, 홍보 모슈컴퍼니 이지은, 한국에이전시 박준규, 아리엘 도르프만 에이전시 마틴 네일러, 인권연극제 스텝 좌동엽 누리에 루피 쭈야, 후원 로버트 케네디 인권재단 등 스텝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케리 케네디 원작, 아리엘 도르프만 작, 문현아 번역, 김나연 윤색, 하일호 연출, 김형용 협력연출의 <권력에 맞서 진실을 외쳐라>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 본 칼럼은 아띠에터의 기고로 이뤄져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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