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이 감동을 어떻게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지난 24일 오후 대학로 TOM 2관에선 한 달여 만에 다시 만난 연극 '보도지침' 팀과의 만남이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집들이 콘서트 24번째 시간으로 '집들이 지침' 편이 공연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뮤지컬 '오디션' 공연장으로 변했지만, 처음부터 법정인듯, 극장인듯, 광장인듯 했던 장소였기에 이번 콘서트에서도 그저 반갑기만 한 TOM 2관에는 익숙한 MC 김용철(호박고구마)과 함께 박정표, 김대곤, 최연동, 고상호, 이형훈, 박정원, 기세중, 오세혁 연출까지 8명이 모였다.

▲ 좌측부터 MC 김용철(호박고구마), 박정표, 고상호, 김대곤, 이형훈 배우, 김주언 기자, 오세혁 연출, 최연동, 박정원, 기세중 배우.

"생각해 보니 관객과의 대화가 없었더라. 그래서 이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좋은 제의가 들어왔다"며 콘서트를 열게된 계기를 밝힌 '보도지침' 팀은 2시간 30분 가까운 시간 동안 가슴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집들이 콘서트는 마치 연극 '보도지침' 그 자체같은 시간이었다. 김주혁과 김정배가 벌인 기자회견 장면으로 그대로 재현한 오프닝에 이어 빠른 관계 설정과 리드미컬한 웃음 포인트를 거쳐 진중함과 감동이 어린 엔딩까지. TOM 2관을 가득 메운 관객에게 한 편의 공연을 본 것 같은 시간을 선사했다.

평소 혼자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김용철 MC도 이날만은 달랐다. 마이크를 손에서 내려놓지 않던 박정표 배우, 김대곤 배우의 입담에 가장 어려움을 겪던 '에피소드' 이야기도 쭉쭉 뽑혔다. 이형훈 배우가 노래방에서 남윤호 배우가 팝송을 부를 때 습관적으로 1절 이후 노래를 끄자 옆방을 잡아 따로 팝송을 불렀다는 웃지 못할 사건부터 이형훈 배우의 노래방 사랑, 배우들의 춤 실력을 확인할 수 있던 90년대 가요 댄스 등 이야깃거리가 샘솟았다.

기세중 배우가 노래를 부를 차례가 되자 팬텀싱어에 이은 센텀싱어(센터+팬텀싱어) 발언이 터져나오는 등 노래 사이에도 재치 있는 멘트가 쉬지 않고 오갈 정도로 팀웍이 좋은 것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오세혁 연출 역시 "잘 모르는 배우들을 뽑을 때 가만히 얼굴 사진을 보며 관상으로 추측했다"는 의외의 입담을 뽐내는가 하면 작품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도우며 훌륭히 출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도 토크 외의 구성 역시 풍부했다.

진지한 노래를 부르기 힘든 웃음기 넘치는 분위기에 당황하면서도 기세중 배우는 지금은 작품에서 사라진 노래라며 듣기 힘든 'I Need to Know'를, 고상호 배우는 '사의 찬미'에 나오는 '저 바다에 쓴다'를, 박정원 배우는 '헤드윅'의 'The Origin of Love'를 선보이며 본인들이 배우임을 어필했다.

김대곤 배우는 '나의 사랑 수정'을, 최연동 배우는 '임파서블 드림'을, 박정표 배우는 금지곡을 골랐다며 '고래사냥'과 '아침이슬'을 기타 연주와 함께 선보였고, 마지막으로 '맥컬리 컬킨을 닮은' 이형훈 배우가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선보이며 극장을 말 그대로 초토화시켰다.

▲ 깨끗하게 잘 나온 사진들도 있지만, 어쩐지 이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또 연극이니만큼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을 선보이는 시간도 있었다. 햄릿의 독백을 읊는 잔디밭 씬을 즉석에서 선보인 것. 배우들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애드립을 넣어가며 능숙하게 선보였다. 기세중 배우가 너무 찰지게 맞아 화를 냈었다는 멜빵 장면도 공연 의상과 비슷하게 입고 온 기세중 배우를 통해 다시 한 번 재현됐다.

이외에도 배우들은 관객이 보낸 여러 질문에 대답했고 사전 이벤트로 준비된 '관객의 독백' 시간에는 총 3편이 응모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고상호 배우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독백을 읽으며 멋진 목소리로 이를 만회했다.

또 이미 스페셜 게스트로 공지된 김주언 기자와의 만남도 이어졌다. 김주언 기자는 "검사와 변호사 등의 관계는 허구지만, 그로 인해 실화보다 더 재밌게 아주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며 연극 '보도지침'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고 관객들에게도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다"며 우리의 감시가 건강한 언론을 만들 수 있음을 당부했다.

다음으로 극 중 김주혁의 독백을 이형훈 배우와 김주언 기자가 함께 읽는 시간이 있었다. "30년 전에 내 이야기를 다시 읽으니 신기하다"고 밝힌 김주언 기자였지만, 주머니 속에 고이 접은 종이를 펴내 이형훈 배우와 함께 독백을 읽어 내려갔다.

마치 실제의 김주혁 같은 이형훈 배우의 매끄러운 독백과 자기의 말이지만 종이를 보며 더듬더듬 읽어가는 김주언 기자의 독백이 교차되며 공연장은 단숨에 감동에 젖어들었다. 말의 힘을 이야기하는 작품답게 이런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말에서 오는 힘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어느덧 김주언 기자와의 토크가 끝나고 마지막 코너인 나에게 쓰는 편지 시간이 다가왔다. 감정에 북받친 기세중 배우가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박정표 배우부터 차례대로 나에게 쓰는 편지를 조심스럽게 말했다.

독백의 연극인 '보도지침' 팀의 나에게 쓰는 편지는 특별했다. 극중에서는 독백에 대해 연극과 달리 현실에서는 이런 긴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지 않는다고 했지만, 출연진과 관객들은 모두 하나가 돼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감정이 올라온 탓일까. 배우들은 저마다 조금은 힘든듯 보였다. 최연동 배우가 '연동아!'하고 외친 뒤 가진 잠시의 정적은 무척 특별했고, 박정원 배우의 '남의 인생을 살다 보니 내 인생이 엉망이 됐더라'는 말도 그랬다. 그들은 아마도 각자의 편지를 새로운 지침 삼으며 TOM 2관을 홀연히 떠나갔다.

오늘 있었던 이 명확한 두 시간이 그들의, 우리들의 새로운 스물두 시간을 버티는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분명히 그래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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