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연극제 극단 백수광부의 이강백 작 이성열 연출의 <봄날>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MHN 박정기 아띠에터] 이강백(李康白 : 1947 ~ )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다섯'이 당선되어 극작가로 활동을 시작하고,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장막희곡에 입선해 극단 '가교(架橋)'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현대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희곡과 70년대 군사정부의 상황 하에서 민중의 억눌린 삶을 우화적(寓話的)으로 표현하는 희곡을 써서 서울극평가그룹상, 동아연극상, 대한민국 문학상, 서울연극제 희곡상,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대산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심청> <황색여관> <내마>,<쥬라기의 사람들>,<호모세파라투스>,<봄날>,<칠산리>,<동지섣달 꽃 본 듯이>,<북어대가리>,<불 지른 남자>, <물고기 남자>, <느낌, 극락 같은> 등 다수가 있고, 평론집 <교회와 축제>가 있다.

이성열은 연세대 사학과에 입학해 연희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가며 연극을 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극단 목화(대표 오태석)에서 연기와 연출을 배우고, 제대를 해서는 극단 산울림(대표 임영웅)에서 연출을 익히며 산울림 소극장의 극장장을 맡기도 했다.

연극으로는 <아버지와 아들> <햄릿아비> <벚꽃동산> <과부들> <봄날> <여행> <그린 벤치> <자객열전> <미친극> <키스> <야메의사> <굿모닝? 체홉> <햄버거에 대한 명상>과 무용극은 <비천사신무> <두 도시 이야기> <유랑> <운수좋은 날>, 음악으로는 <톨스토이 IN Music> <드라마가 있는 음악회> <파가니니&리스트> ',죠르쥬>, 오페라는 <손탁호텔>(협력연출) 등을 연출했다.

1998 한국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 <굿모닝? 체홉>, 2005 서울연극제 "연출상" <Green Bench>, 2007 김상열 연극상 <물고기의 축제>, 2009 서울연극제 "연출상" <봄날>, 작품상으로는 1997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키스>·

2004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자객열전>· 2005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최우수작품상" <Green Bench> 서울연극제 "우수상" <Green Bench>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여행>, 2006 서울연극제 "우수상" <여행>, 2009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봄날> 2013 이해랑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봄날>을 극단 성좌의 권오일 연출로 초연된 이래 경향의 각 극단에서 공연을 했고, 인천시립극단의 이종훈 연출, 정 현 주연의 <봄날>이 필자의 기억에 생생하다.

<봄날>은 이 희곡이 집필된 당시(1984년)의 정치적 상황과 민중의 삶이 바탕에 깔려있다. 비민주적인 정치상황하에서 민중의 타오르는 분노를 꺼질 줄 모르는 산불로 묘사하기도 했고, 한번 붙잡으면 종신토록 놓지 않으려 했던 집권 욕을 희곡 속에 은유적(隱喩的)으로 표현하기도 해 주목을 받았다.

2009년부터 공연이 계속되는 극단 백수광부의 <봄날>에서는, 이미 민주주의가 이 땅에 정착되고, 아비세대가 이루어놓은 공과를, 게으르고 입만 가지고 사는 자식들이, 빼앗거나 도적질해 가려는 모습에서, 포퓰리즘이나 국민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정권찬탈의 야욕만 보이고, 애국심이나 미래를 향한 비전은 원거리에 있거나 아예 없어 보이는, 정치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듯하여, 시기적절하고 안성맞춤의 공연이 되었다.

무대에는 초가 한 채를 상수 쪽으로 지어 놓았고, 잎이 없는 나무 한 그루가 뒤에 바짝 붙어있다. 또한 배경 전체를 거대한 반원형의 화폭처럼 만들어 놓고, 초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막길을 만들어 산길로 설정하고, 언덕 입구와 중간에 바위 조형물을 배치했다. 초가는 하수 쪽에 아버지 방, 중앙에 마루와 장남 방, 그리고 상수 쪽에 형제들 방이 있다. 마루 오른쪽에 부엌이 있고, 하수 쪽 집 뒤로 통하는 길은 곡간, 상수 쪽 집 뒤로 통하는 길은 우물이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연극은 도입에 초가 앞에 누리끼리한 옷을 걸치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다섯 아들의 허기진 모습과 초가지붕에 잠시 모습을 드러낸 수탉, 그리고 구렁이운운하며 잡아먹자는 대화로 춘궁기임이 들어나고, 바구니에 쑥을 캐어오는 장남과 심한 기침을 하며 등장하는 막내의 모습에서 7명의 아들이 있는 가족임을 알 수가 있고, 아버지는 홀아비이고 외출 중이라는 것과 봄 가뭄으로 인근 산에 산불이 났다는 것이 객석에 전해진다. 장남은 아우들에게 어미노릇까지 하는 자상함이 들어나고, 아우들을 독려해 농사준비를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아우들은 천성이 게으른데다가 저마다 다른 어미에게서 태어났음이 객석에 소개된다. 산불이 계속 번지니, 부근 산사의 승려들이 불을 피해 떠나면서 동녀(童女)를 맡기고 간다. 백발의 아비가 귀가를 하고, 먹을 것을 사올 것으로 기대하는 아들들에게 아비는 공복에 회충약을 먹이고, 농사일을 하라며 내쫓는다. 아비는 장남에게, 나이 들면 동녀를 품고 자는 것이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라며, 이웃 무녀의 딸을 보리 세말에 사오면 어떨까 하고 묻는다. 그 때 막내가 얼굴이 빨개져 등장하고, 승려들이 맡기고 간 동녀를 목욕을 시키려 하니 동녀는 어린여아가 아니라, 가슴이 봉긋한 처녀임이 밝혀진다. 아비는 처녀를 품고 자기로 결정을 하고, 처녀에게 마음을 둔 막내는 아비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못내 서러워한다. 다음날 늦잠을 자는 아비를 두고 아들들은 기이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까닭이 스님이 두고 간 동녀 때문임을 알아차리고, 아비가 일을 시키지 않으니, 자발적으로는 농사를 지으러 갈 필요가 없다는 의지를 들어내고, 놀이를 시작한다. 아들들의 놀이에서 서정주, 김춘수, 이 상, 김소월, 허영자 시인의 <봄날>과 관련된 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재주를 펴는 장면은, 힘든 일은 뒷전이고 놀이나 집회에는 앞장서는 일부 젊은 세대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공연자체는 문학적으로 한 단계 상승되는 느낌이다. 무녀를 만나려고 아비가 장남과 함께 외출을 한 사이 막내를 제외한 다섯 아들은 아비 방의 구들 밑, 항아리 속에 감춰둔 돈을 탈취해 집에서 달아날 흉계를 꾸미고, 구렁이를 잡아 가마솥에 과놓고, 송진을 끓여서 아비를 기다린다.

귀가 길에 장남은 장성한 아우들에게 땅을 나누어주도록 막무가내 하는 아비를 설득시키고 아비를 업고 흥겨운 마음으로 귀가한다. 그러한 아비나 장남의 의사와는 정반대의 사태가 아우들에 의해 야기된다. 아우들은 돌아온 아비에게 젊어지고 주름이 펴진다는 말로 아비에게 구렁이탕을 마시게 하고 송진을 눈에 바르도록 한다. 송진이 굳어 눈을 못 뜨는 아비 앞에서 아들들은 돈 항아리를 파내 들고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한다.

장면이 바뀌면 아들들은 각자 자신들의 일을 하면서 아비에게 안부를 전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장면은 집을 떠난 아들들에게 바라는 아비의 마음이라는 것이 알려진다.

대단원에서 따사로운 <봄날> 초가 마루에 앉은 아비는 빨래를 너는 동녀에게 막내아들의 행방을 묻는다. 승려들이 맡기고 간 동녀는 이제는 막내의 아낙이 되어있고, 아낙이 신 것이 먹고 싶다고 해, 막내가 복숭아를 따러 갔다는 소리를 들으며, 아비는 며느리의 임신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 승려들이 절로 되돌아가는 길에 동녀에게 함께 가자고 이르지만, 동녀는 이 집 며느리가 되었다며 이 집을 떠날 수가 없노라고 배웅의 합장을 한다. 아비는 손자의 탄생을 상상하며 즐거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집 떠난 아들들을 그리워하고, 울타리 같은 배경에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는 영상투사와 함께 아들 각자가 나름대로의 직업에 종사하며, 신문에 난 집 떠난 자식을 애타게 찾는 부모의 기사를 모두 함께 읽는 장면과 아비에게 다가가는 장남의 모습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오현경 선생이 아비 역을 일생일대의 명연으로 다시 한 번 객석에 감동을 전달해 갈채를 받는다. 장남 역의 이대연의 출중한 기량은 천년을 이어온 이 땅의 효(孝)의 표상으로, 의연하고 의젓한 연기를 펼쳐 극의 대들보 역할을 한다. 차남 역의 유성진은 아우들을 이끄는 선동자로서의 역할을 발군의 기량으로 표현하고, 김효중, 조재원, 양윤혁, 문법준, 하동기, 등 아들들의 독특하고 탁월한 성격창출로 객석으로부터 갈채를 받는다. 처녀 역의 이하늘이 붓꽃 같은 자태로 객석에 꽃 향을 전달시키고, 목탁소리와 함께 음성을 전달한 민병욱, 심재완, 윤상원은 스님다운 음성전달로 객석의 합장(合掌)을 이끌어 내는 듯싶기도 하다.

김효영(생황) 민지선(생황) 김보미(해금) 장연정(해금), 허윤정(가야금), 한덕규(타악) 김동욱(기타, 건반, 베이스) 등의 연주가 극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분위기 상승을 주도한다.

무대 손호성, 조명 김창기, 의상 이수원, 음악 박승원, 분장 이동민, 소품 주미영, 영상 박 준, 조연출 김현중 김경회, 무대감독 김은선, 조명어시스트 이명진, 조명팀 신동선 홍유진 정주영 정하영 유보민, 분장팀 하우연 박혜솔, 의상팀 박인선 최은영 문주은, 소리지도 김율희, 무대감독보 김인수 이도형, 기획 이정은 서동연 등 스텝진의 기량과 열정이 하나가 되어 늘푸른연극제(위원장 정대경) 첫 번째 작품인 극단 백수광의 이강백 작 이성열 연출의 <봄날>을 명작연극으로 창출해 냈다.

※ 본 칼럼은 아띠에터의 기고로 이뤄져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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