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어주는 남자 #005 - 최동훈 감독의 '암살'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대한민국 최고의 감독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엔 임권택, 박찬욱, 봉준호 등 다양한 감독들의 이름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어떨까요.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감독은 누구입니까?' 열한 편의 천만 영화가 있었고 10명의 천만 감독이 있는데, 제게 최고는 여태 단 한 편도 실패하지 않았던 최동훈 감독입니다.

'영화 읽어주는 남자'(영읽남)가 이번에 준비한 영화는 최동훈 감독의 신작 '암살'입니다. 이번 글은 영화 내적으론 짧은 감상과 함께 산업 전반을 살펴보는 칼럼이 될 것 같네요. 글의 형식은 이동진 아저씨의 '부메랑 인터뷰'를 참고하여 최동훈 감독 영화의 명대사로 챕터를 나눠봤습니다. 과연 올여름, 최동훈 감독은 윤제균 감독에 이어 필모그래피에 천만 영화를 두 편이나 소장한 감독이 될 수 있을까요.

쫄리면 뒈지시던가 - '타짜', 고니가 그 유명한 마지막 도박 중 아귀에게

순 제작비 180억, 손익 분기점 600~700만, 이정재·전지현·하정우 등 멀티 캐스팅.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도 가벼워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세 가지 조건 모두가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었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고, 이를 떠맡을 책임자의 부담은 엄청날 것입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통계와 결과물로 이러한 조건들을 맡을 수 있음을 증명해온 감독이 있습니다. 최동훈 감독이죠.

매 영화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자신의 흥행스코어를 영화마다 갱신하고 있는 감독. '범죄의 재구성'으로 데뷔했던 그때부터, 그는 영화산업에서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데뷔작이 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고, 이후 '타짜' 550만, '전우치' 600만, 그리고 '도둑들'이 무려 1,300만을 동원했습니다. 그의 평균 동원 관객 수는 650만 명이 넘네요. 결국, 거대한 프로젝트 '암살'은 그가 평균만 해주면 무난히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습니다. 영화 산업이라는 딜러 앞에서 그는 자신의 영화라는 패를 쥐고서 늘 당당히 말할 수 있겠네요. "쫄리면 뒈지시던가"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사기는 심리전이다. - '범죄의 재구성' 엔딩 중

많은 매체에서는 기대와 함께, 한편으론 우려를 표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했던 영화 중에서 성공했던 사례가 매우 드물었거든요. 그렇다면 최동훈 감독이 '암살'의 성공을 위해 준비해둔 카드는 무엇일까요. 우선 혼자서도 극영화 하나를 이끌 수 있는 주연급 배우들을 다수 캐스팅했습니다. 이정재, 전지현, 하정우, 조진웅, 오달수, 이경영, 그리고 특별출연한 조승우까지 정말 화려한 배우이네요. 멀티캐스팅이 주목받지만, 최동훈 감독만큼 다수의 배우를 캐스팅한 사례는 없었죠. 분명 우려가 있겠지만, 이미 그는 '도둑들'에서 다수의 배우를 재료로 하여 성공한 상업영화를 요리해낸 전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암살'에서 일제 강점기를 구현한 미술, 소품, 세트는 영화의 스펙터클이 왜 매력적인지 요소인지 보여줍니다. 시대적 고증과 볼거리라는 판타지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이번 영화의 미장센은 무척 매혹적이죠. 멀티 캐스팅과 스펙터클. 둘 다 돈이 무척 많이 소요되는 것들이네요. 일단 최동훈 감독은 최고급 재료를 준비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습니다. 결국 '암살' 무척 많은 돈을 끌어와서는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거대한 요리, 프로젝트인거네요. 하지만 일 등급 재료가 일 등급 요리로 꼭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암살'의 흥행 여부는 최동훈 감독이 준비한 레시피에 달려있습니다.

'암살'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에 파묻히지 않는, 단순히 애국이라는 정서로 정리될 수 없는 인물들 개개인의 감정들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갑니다. 그 사이에 관객은 전쟁영화의 한 장면, 서부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볼거리도 체험할 수 있죠. 결국, 이 영화는 자본이 만들어낸 스펙터클이라는 테크닉이 아닌, 최동훈이 창조한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승부를 걸어옵니다.

개인적으론 '암살'이 캐릭터에게 몰입하게 만드는 방식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멀티 캐스팅은 감정의 분산으로 이어졌고, 엄청난 스펙터클은 오히려 인물에 대한 몰입을 방해합니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가 늘 요구해왔던 특정 정서, 애국주의에 묶이지 않고서 다양한 욕망, 원한을 담은 인간상을 보여줬다는 것은 놀라운 성취일 것입니다. 이 영화는 독립군도 다양한 감정과 사연, 목표가 있었던 인간이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그 시대를 더 풍부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하죠. 이것이 역사책이 해줄 수 없는, 역사를 바라보는 영화만의 특별한 관점이자 장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데 – '도둑들', 예니콜이 성형의심을 받을 때 홧김에

이 영화 최고의 성취는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새로운 활용입니다. 그녀는 데뷔 이후 주로 청순가련하면서도 발랄한 여인으로 스크린에 소비되었죠. 그리고 최근 들어 '도둑들'과 '별에서 온 그대' 등의 작품에서도 자신이 쌓아온 이미지와 스타성을 활용하는 역할들을 맡았습니다. 다만, '도둑들'이 좀 특별하다면 와이어를 탄 섹시한 여성의 액션, 그리고 자신이 섹시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캐릭터가 쏟아내는 도발적인 대사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전지현은 연기인생의 2막을 열었죠.

   
 

'암살'에서 전지현이 맡은 안옥윤은 여성임에도 대장의 위치에서 암살 작전을 지휘합니다. '매드맥스'의 퓨리오사가 남성들의 전유물인 차를 타고서 남성들의 세계에 바퀴 자국으로 균열을 일으켰다면, 안옥윤은 또 다른 남성들의 전유물인 장총을 들고서 총알로 자신의 인장을 남기는 여성입니다. 과거 '고지전'에서도 김옥빈이 여성 스나이퍼역을 맡은 적이 있기는 했지만, 비중은 아쉬웠죠. 그에 비해 '암살'에서 전지현은 이 거대한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독립군으로 활약합니다.

'베를린'에서부터 변화해왔던 전지현의 강인한 여성 캐릭터는 '암살'에서 만개했고, 이는 한국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들의 역할이 더 다양해질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가 될 것입니다. 올 초에 김혜수, 김고은이 보여준 여성만의 누아르 '차이나타운'에 이어 '암살'은 섹스어필을 하지 않으면서도 매력적인 여성캐릭터 영화로 기억될 수도 있겠네요.

   
 

아니, 세상에 싸울 게 얼마나 많은데 자기와도 싸우나 해서요 – '도둑들', 예니콜

이번 영화도 최동훈 감독은 한국식 케이퍼 장르를 무난히 연출해냈습니다. 특히 도입부에서 작전을 함께할 인원들을 모으는 시퀀스는 경제적이고, 매우 흥미롭죠. 짧은 시간 각 캐릭터의 전사와 성격, 특징을 보여주고 그들의 역할을 이해시킵니다. 더불어 전지현이라는 배우가 가진 기다란 선을 매력적인 이미지로 전시하면서도 액션에서의 긴장감을 극대화한 것도 보는 재미가 있고요. 특히, 두 명으로 복제된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에선 두 배의 황홀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최동훈 감독은 이번 영화에 불안요소를 몇 개 남겼습니다. 도둑들부터 보여준 멀티 캐스팅은 이야기 흐름의 분절 및 감정의 분산으로 이어져, 그들의 매력을 모두 깎아내는 반시너지 효과를 불러옵니다. 이번 '암살'도 어마어마한 밥상이 차려졌지만, 이를 모두 제대로 음미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최동훈 감독의 영화는 평균 2시간 20분가량으로 길어졌지만, 이야기의 재미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전작 '도둑들'이 이야기의 결점을 와이어 등의 액션으로 채웠지만, 이번 '암살'엔 액션마저도 진부해 뭔가 허전하죠.

영화 외적으로도 독과점 문제와 또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영화는 개봉할 때 1,330개의 스크린을 배정받았죠. 이는 한국에 2184(2014년 기준)의 스크린의 절반이 넘는 것입니다. '도둑들'도 이런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이 문제에서 묻고 싶은 건 이것이겠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얻은 상업적 성공인가.'

끝으로 최동훈 감독은 '암살'의 연출과 함께 제작까지 맡았습니다. 이는 (다른 감독들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 자유가 이야기의 참신함보다는 자본의 자유로 귀결되고 있는 듯해 씁쓸합니다. 최동훈 감독이 거대 자본을 다루는 능력, 스펙터클을 통제하는 더 발전했지만, 과거에 가졌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정체된 것 같아 아쉽죠. 그는 더 거대한 자본과 싸우게 될 것이지만 그전에 자신 속의 이야기꾼과 다시 대결을 해야 할 시점이 찾아온 게 아닐까요.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 '암살', 염석진의 대사 중

'연평해전'은 애국을 코드로 해서 많은 이슈를 만들었던 영화입니다. 그리고 한 달의 시차를 두고 또 한편의 애국과 관련 영화가 도착했고요. 국방을 위해 죽어간 젊은이들과 독립을 위해 싸우며 헌신한 독립투사들의 이야기에서는 모두 나라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암살'에 대한 매체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특히 '애국'이라는 코드를 어떻게 이슈화시킬지가 말이죠. 앞서 연평해전에서 애국심을 강조하고 고취시켰던 매체들이라면 이 영화도 애국이라는 코드로 읽고, 이슈화시킬 수 있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때엔 친일과 관련된 이슈도 명확히 다뤄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종전 70주년 담화를 앞둔 지금, 이 영화는 매체에서 글로 쓰기 참 좋은 소재이지 않나요.

만약, 애국을 강조하며 이슈화시켰던 매체들이 이 영화를 똑같은 관점에서 이슈화시키지 않는다면 저는 세 가지로 이해해보려 합니다. 하나는 한 달 사이에 애국심이 식었다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애국이라는 것을 매우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묻고 싶네요. 필요할 때에, 필요한 관점을 위해 애국을 가져오지 않았느냐는 질문. 좀 위험할까요? 이도 아니라면 '친일'이라는 점을 이슈화시키는 것이 두렵고 부담스럽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글] 아띠에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영화리뷰 웹진 '무빗무빗'의 에디터. (movitmov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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