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어주는 남자 #004 -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의 '쥬라기 월드'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더 크고 화려하게. 이는 관객이 블록버스터 영화 혹은 시리즈 영화의 속편에 기대하는 요소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는 이번 '쥬라기 월드'에서 관람객이 요구하는 공룡에 대한 욕망이기도 했죠. 네, '더 크고 잔인한' 공룡들이 돌아왔습니다.

'쥬라기 월드'라는 롤러코스터 그리고 회고록
'덜그럭덜그럭' 롤러코스터가 투박한 소리와 함께 정상을 향해 올라갑니다. 그리고 정상 직전 스피커에서 이런 방송이 나옵니다. '이 롤러코스터는 무척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초의 롤러코스터가 제게 줬던 그 놀라움을, 여러분은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건 정말 환상적이었죠! 그 느낌이 조금이나마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쥬라기 월드'라는 롤러코스터는 많은 즐거움과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관객은 20년 전보다 더 사실적인 공룡을 더 큰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죠. 일부 관객은 3D, 4DX를 통해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선사하는 즐거움과도 조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걸작, 명작이라고 말하는 데는 주저하게 됩니다.

   
 

영화의 감정 전개는 문제가 많았죠. 인물의 감정은 들쭉날쭉해 서사와 따로 놀고 덕분에 관객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클레어에게 분노해 뛰쳐나온 오웬이 몇 장면 뒤에, 마치 준비했다는 듯 그녀를 위해 위험에 뛰어드는 등의 거친 전개는 많은 감정과 과정이 생략되어 있었죠. 더불어 갑작스레 등장하는 키스신도 고전적인 장치라지만 굉장히 뜬금없습니다. 여러 장면을 막 가져다 붙인 것처럼 뚝뚝 끊기고, 너덜너덜한 이 구성을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롤러코스터는 하강하기 직전까지는 관람객의 애를 태우는 놀이기구죠. 관람객은 곧 경험하게 될 스릴을 기다리며 설렘과 공포 등을 마음에 품습니다. 그리고 하강하는 순간, 이 놀이기구의 진짜 재미가 시작된다. '쥬라기 월드'도 유사합니다. 공룡이라는 볼거리가 등장하기 전은 예열의 시간에 불과하죠. 진짜 재미를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들일 뿐입니다. 이 영화에서 서사의 완성도 및 캐릭터의 감정은 주요 관심사가 아닙니다. '덜그럭덜그럭' 투박한 시간을 거쳐 오른 뒤, 하강하며 시작되는 쇼가 이 영화의 본질입니다. '따지지 말고 쇼를 그냥 즐겨'

'쥬라기' 시리즈는 최초의 영화가 가장 좋았고, 그 이후로는 이 시리즈가 이룬 업적을 조금씩 갉아먹었습니다. 최초의 영화가 보여준 성공이 엄청났기에 후속편의 제작은 필연적이었겠지만,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최초의 위대함과는 점점 멀어져 버렸죠. 아우라의 상실이라고 할까요. 그런데도 스티븐 스필버그는 연출, 기획, 제작을 맡으면서까지 이 시리즈를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쥬라기 공원'이라는 작품에 대한 애착보다 공룡에 대한 매혹과 동경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최초 자신이 연출한 '쥬라기 공원'이 더 명작으로 평가받는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죠.

   
 

이번 '쥬라기 월드'는 노골적으로 최초의 쥬라기 공원에 대해 찬사를 보냅니다. 그때는 진짜 공룡이었고, 엄청났었다는 등의 대사가 등장해 원작의 위대함을 상기시키죠. 그리고 소년들은 유적처럼 보관된 과거의 공간으로 가서 유물들을 쓰다듬으며, 원작에 대한 기억을 소환시키기도 합니다. 끝으로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쥬라기 공원'에서 느꼈던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순간엔 최초의 '쥬라기 공원'에 대한 찬사는 절정에 이릅니다.

덕분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을 맡은 이 영화는 그의 회고록이고, 과거에 대한 동경이자 그리움으로 읽힙니다. 혹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 시절 영화들, 아날로그에서 어떤 물질성을 포기하지 않던 그 시절 영화인들, 그리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즐기던 '진짜' 관객들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일 수도 있죠. 그래서 티라노사우루스와 인도미누스 렉스의 싸움은 자연과 유전학의 대결이기도 했지만, 과거와 현재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쥬라기' 시리즈는 앞으로도 더 제작될 것입니다. 그런 예측을 가능케 하는 장면이 하나 있죠. 이 영화에서 주인공 소년들이 과거 쥬라기 공원이 있던 공간에 가서 멈췄던 차를 수리하고 시동을 건 장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소년들이 과거의 시리즈에 인공호흡을 한 것이며, 잠든 영화를 다시 깨운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소년들은 그 차를 직접 운전하기까지 하죠. 이는 새로운 세대의 소년들(관객들)이 새로운 롤러코스터, 쥬라기 시리즈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제작진의 선언으로 보입니다.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
그냥 즐겨도 될 영화이지만 클레어라는 여자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올 한해 영화에서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불러온 '매드맥스'가 여성에 대해 읽는 폭을 확장해 줬기에 시도해 보고 싶은 면도 있었고요. 이 여주인공에 대해 말하게 된 계기, 기억에 남는 두 개의 컷을 먼저 말하겠습니다. 영화 초반부와 후반부에 한 번씩 등장하는 하이힐을 클로즈업한 컷. 같은 것을 담았지만 두 하이힐의 의미는 전혀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 초반부의 클레어는 오웬에게 의지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외면한 채 일에 몰두하는 비정한 이모였고, 공원의 상황을 대변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이기도 했죠. 그녀는 혼자서는 아이들을 구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입니다. 이런 그녀를 향해 하이힐을 신고서는 밖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며 비꼬는 대사가 등장할 지경이죠. 물론 클레어는 당당히(?) 하이힐을 벗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웬이 클레어의 능력에 의심을 보내는 장면도 있었죠. 그의 의심에 클레어는 겉옷을 벗고 섹시함을 과시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듯한 이 장면 뒤에 이어지는 장면은 좀 특이한데요. 오웬은 그녀를 보고는 별말 않고 자신의 의심을 거두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는 그녀에게 보내는 신뢰가 아닌 그녀의 섹시함에 홀린 남성의 모습일 것입니다.

여기까지 클레어는 기존의 장르영화에서 많이 소모됐던 전형적인 여성을 보여줬습니다. 그녀는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거나, 위험을 자초하고, 남성이 구해야 하는 존재이며 성적매력을 통해 관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도구로서의 여성이었죠. 그리고 여기서 하이힐은 여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상징적 도구로서의 성격이 짙습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클레어는 사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위험에 처한 오웬을 위해 공룡을 때려잡고, 총까지 쏘죠. 아이들과 만난 뒤에는 거대한 차를 직접 운전하면서 위험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강인함도 보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지점, 인도미누스 렉스의 싸움에서 유일한 해결책인 티라노사우루스를 소환하는 것도 그녀였습니다. 그리고 이때,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그녀의 발이 한 번 더 클로즈업됩니다. 그녀는 끝까지 하이힐을 벗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녀가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포기하지 않고서도 문제를 해결할 힘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죠. 그리고 여기서 하이힐은 그녀가 온전히 여성으로서 보여준 의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합니다.

만약 그녀가 보여준 용기를 유사 모성으로 받아들인다면 위의 장면들은 또 다른 성격을 가질 수 있지만, 모성으로까지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영화가 클레어라는 여성을 보여준 방식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비판도 가능하죠. 앞서 언급한 '매드맥스'라는 영화와 이 영화 속의 퓨리오사 앞에 '쥬라기 월드'와 클레어는 비교 대상으로서는 상대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동력을 가지고 다시 뛰는 '쥬라기' 시리즈 안에서 여성에게 새로운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는 여지는 남겨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글] 아띠에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영화리뷰 웹진 '무빗무빗'의 에디터. (movitmov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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