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애 좋은 형제인 것처럼 보이는 카투리안(정원조, 왼쪽)과 마이클(이형훈, 오른쪽). 하지만 그들 사이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는 참혹하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그에겐 지금 해야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형의 안전보다도, 자신의 목숨보다도 자신이 쓴 이야기를 더 소중히 여기는 남자. '특별한' 부모 덕분에 '카투리안 카투리안 카투리안'이란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갖게 된 남자.

카투리안은 400여 편의 이야기를 쓴 어엿한 작가다. 비록 독자는 형 마이클뿐이고 출판된 책은 단 한 편에 불과하지만, 이야기를 쓰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어엿한 작가님이다.

그런 카투리안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곳은 다름 아닌 취조실. 두 어린아이가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세 번째 아이가 실종됐는데, 카투리안이 살인범이란 것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애리얼 형사와 차분한 듯 보이지만 냉정한 투폴스키 형사의 다그침에 카투리안은 어쩔 줄 몰라한다. 자신이 범인이 아닌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하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대로 실제 살인이 일어났다는 형사의 말과 옆방에서 들려오는 형의 비명에 그는 멍하니 "아니다"란 말만 반복한다.

   
▲ 마이클(이형훈, 왼쪽)은 카투리안(정원조, 오른쪽)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마이클에게 카투리안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으레 수사물이 그렇듯 살인 사건의 범인은 카투리안이 아니다. 카투리안의 이야기를 읽은 사람은 카투리안과 마이클뿐. 자연스레 마이클이 범인이란 결론이 나온다. '스포' 당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살인자가 마이클이란 사실이 관객에게 놀라움을 줄 순 있어도 결말을 향해 내달리는 탄탄한 희곡의 힘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세 번째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숨겨진 진실과 인물들의 과거를 마주하기 위해 마이클이 범인이란 전제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이 전제를 바탕으로 극을 풀어나가는 건 카투리안의 이야기들이다. "다섯 살짜리를 꼬치로 만드는 101가지 방법"이란 투폴스키 형사의 말처럼 그의 이야기는 대부분 어린아이가 주인공이며 잔인하게 살해된다.

이야기는 작가의 삶과 윤리관을 반영한다. 작가와 전혀 다른 환경, 조건의 인물이라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작가의 흔적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극 '필로우맨'에서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는 더욱더 중요하다. 얼핏 보면 기분만 나빠지는 잔혹 동화에 불과한 그의 이야기가 극의 흐름을 주도하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인물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도구이자 장치다.

작품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이야기는 7개. '필로우맨'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일곱 개의 이야기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차근차근 알아야만 한다. (이런 이유로 본 기사에는 이야기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가 현실과 어떻게 맞물리게 되는지, 그리고 카투리안은 왜 이렇게 기괴한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인지.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앞뒤 상황이 명확해 지면 관객은 머리털이 쭈뼛 설지도 모르겠다.

   
▲ 무대 뒤편에는 엄청난 서류들이 빽빽하게 정리돼 있다. 여신동 무대디자이너는 취조실의 느낌과 비사실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의도하고자 이런 무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야기만으로 극을 이끌다 보니 연극 '필로우맨'은 대사량이 엄청나다. 단순히 상대 배우와 주고받는 대사뿐 아니라 카투리안 혼자 10분가량 극을 끌어갈 때도 있다. 영상이나 무대 장치 등 아무런 시각적 효과가 없는 무대는 배우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대사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물론 관객에게 마냥 이야기를 쏟아붓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이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게끔, 극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올 수 있게끔 중간중간 개그 포인트도 넣는 등 적절하게 완급 조절한다.

또,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장면들을 배우 정원조가 구연동화를 하듯 이야기 속 인물에 따라 목소리를 바꾸며 능숙하게 이끌어간다. 배우 정원조의 라디오 DJ처럼 나긋나긋한 말솜씨와 소년 같은 이미지와 대조되는 동화의 잔혹함에 관객들은 묘하게 이질적인 분위기 속에서 카투리안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필로우맨'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 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장면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시각적 효과가 전무한 극이기 때문에 뇌리에 강하게 남는 장면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런 시각적 효과 없이도 3시간 남짓한 시간을 빈틈없이 메우는 텍스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이야기를 어느 한 부분만 읽으면 이해하기 어렵듯 연극 '필로우맨'도 어느 한 장면을 따로 떼어 생각하긴 어렵다. 여러 장치에 익숙해 가만히 듣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이야기의 엄청난 힘을 느끼기엔 충분한 작품이다.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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