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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그린라이트 맞나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린라이트란, 신호등의 청신호(green light)에서 비롯된 말로 '어떤 일을 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라는 업무용의 의미로 쓰이다가 그 뜻이 확장되어 남녀 사이에서 관계의 진전을 허락하는 뜻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표현은 JTBC의 '마녀사냥'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사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MC들은 시청자가 보낸 사연을 듣고 사연 속 내용이 이성이 보내는 호감표시인지 아닌지 그린라이트를 통해 본인들의 의견을 나타낸다. 호감일 경우 그린라이트를 켜고 그렇지 않을 경우 그린라이트를 끄는 것이다.

이처럼 시청자들의 연애 상담, 나아가 성(性)을 주제로 한 방송이 등장하고 인기를 끌면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남녀관계 특히 성(性)이란, 공식적인 장소에서 금기시되는 주제로서 주로 사적인 자리에서만 음담패설의 형태로 오고 갔는데, 이제는 연애, 성(性), 야한 얘기가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매체인 TV의 중심 소재가 되어 많은 시청자의 공감과 재미를 얻어내고 있다.

   
 

재미만 유발, 본질은 글쎄
연애와 사랑을 소재로 한 방송이 최근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의 원조 프로그램 격인 MBC<청춘만세>가 있다. 1977년 1월에 첫 방송을 한 <청춘만세>는 남녀가 각각 3명씩 출연하여 데이트 상대를 선택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이는 매주 1200명이 넘는 신청자가 접수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청춘 남녀의 건전한 만남의 장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이와 비슷한 방식의 중매 프로그램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1989년 MBC<청춘데이트>, 1994년 MBC<사랑의 스튜디오>가 있었고 최초로 일반인과 연예인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SBS<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이 1999년에 방송되었다.

중매 프로그램에 뒤이어 등장한 것은 단체 미팅 형식의 프로그램인데, 대표적인 예로 KBS<산장미팅>과 MBC<강호동의 천생연분>이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일반인들 위주의 형식에서 탈피하여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하였는데, 이는 그들의 실제 연애와 사랑을 담기보다는 예능적 성격이 짙은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MBC<우리 결혼했어요>와 JTBC<님과 함께>와 같은 가상 결혼 버라이어티 쇼가 인기를 끌고 있다. 남녀 연예인 한 쌍이 가상부부를 이뤄 실제와 가상을 넘나드는 결혼생활을 하는 형식으로 시청자들에게 연애와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과 그 해답을 전한다.

이처럼 연애와 사랑을 주제로 한 방송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지만, 앞서 설명한 중매 프로그램들은 단순히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으로 끝나 본질적으로 연애나 사랑에 대한 내용을 깊이 다루지 않았다. 미팅 프로그램이나 가상 결혼 프로그램 같은 경우 일반인이 아닌 연예인이 출연하여 화면 속 내용이 실제 그들의 생각과 감정이라 보기 어렵고 대본에 의존한 예능적인 요소가 더 부각되어 진실성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랑과 연애에 관한 실질적인 접근이 아닌 수박 겉 핥기식 보여주기에 그쳤던 것이다.

성(性),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왔나

보여주기 식에 그쳤던 우리나라 방송에서 본격적으로 사랑, 나아가 성(性)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중들의 서구화된 성(性)인식과 가치관의 변화이고, 둘째는 대중매체의 진화이다.

우리나라는 유교 사상을 근본으로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유교에서의 성(性)은 혈통 보존이 목적으로 오직 출산에만 그 의미를 두고 있다. 출산 위주의 성 의식은 성(性)을 폐쇄적이고 금기시된 영역으로 규정하여 이를 밖으로 내보이는 것을 수치스럽고 상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였고 이는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사회까지 고착되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인식은 90년대 이후 고속화된 경제 발전과 함께 한국사회에 서구 사상이 유입되면서 차츰 변화했다. 생식으로서의 성(性)이 쾌락으로서의 성(性)으로 변모하여, 순결을 강조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연인 사이의 성관계에 대한 인식이 더욱 자유로워졌고 사회적으로도 성(性)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감추는 것이 아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한 부분으로써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같은 서구화된 성문화는 젊은 세대를 위주로 형성되어 그 영향력이 기성세대와 청소년들에게도 퍼져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총 7년 동안 대한민국 중·고등학생들의 첫 경험 나이를 분석해 본 결과 2006년 고등학생 때 첫 경험을 한 비율이 25.5%, 중학생 때의 비율이 7%인 반면, 2013년 고등학생이 20.5%로 7년 전에 비해 5% 감소하였고 중학생이 11.5%로 4.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첫 경험의 시기가 빨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서구화된 성문화와 개방적 가치관으로 성(性)은 이제 일상생활에 자연스러운 일부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과거부터 남녀의 사랑은 유행가나 영화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중매체의 단골 주제였다. 하지만, 이때 표현된 사랑의 모습은 다소 제한적이고 단편적인 부분에 불과했다. 가사는 항상 서정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해야 하며 영화 속 결정적인 장면은 매번 물레방앗간에서 달빛으로 시선이 전환되었다. 이처럼 보수적으로 규제되었던 사랑과 성(性)에 대한 묘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직설적이고 개방적으로 변모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소유와 정기고의 '썸'이라는 곡의 한 단락인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너'라는 가사를 보면 사랑을 시작하기 전 남녀의 헷갈리는 마음을 솔직하고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화의 경우, 노랫말보다 더 사실적이고 노골적인 표현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곤 한다. 대중들이 이처럼 직설적인 표현의 가사와 자극적인 소재의 영화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이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면서 성(性)과 사랑에 대한 인식이 전보다 개방적으로 변화했다.

더불어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하여 케이블 방송이 활성화되자 공중파에서는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한 콘텐츠들이 개발되었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성(性)이라는 미지의 영역이 방송 소재의 한 갈래로 발전될 수 있었다. 그리고 공중파보다 수위 제한이 자유롭다는 케이블 방송이 가진 장점으로 인해, 보다 진솔하고 대담한 성격의 연애, 성(性)관련 프로그램 제작이 가능해졌다.

그린라이트를 켜줘

<마녀사냥>
남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여심(女心) 토크 버라이어티 쇼로,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들을 뒤 흔드는 마성의 마녀들에게서 남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남자로만 구성된 4명의 MC가 냉소적인 관점에서 그녀들을 파헤친다. 모든 코너들은 시청자들의 고민 사연을 바탕으로 한 연애 상담 형식으로 진행되며 프로그램은 1, 2부로 나뉜다. 1부는 연애와 성(性)과 관련된 온갖 내용의 고민을 토로하는 '너의 곡소리가 들려'와 이성의 행동이 호감신호인지 판단해주는 '그린라이트를 켜줘', 두 개의 코너로 이루어지며 고민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이원생중계'를 통해 MC들이 직접 거리의 시민들과 소통하여 보다 현실적이고 공감되는 내용을 이끌어 낸다. 이어 2부에서는 이미 사랑을 진행 중인 커플의 고민 사연을 듣고 이들이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지 판가름하는 '그린라이트를 꺼줘'코너가 진행된다. 이 때 1부는 MC들의 시점에서 고민을 해결하며, 2부는 여성 패널들과 남녀 각 20명씩의 방청객이 함께 토론을 하며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김지윤의 달콤한 19>
2만 명의 연애 상담을 한 탄탄한 내공의 연애 전문가인 <좋은 연애 연구소> 소장 김지윤이 연애 코칭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TV를 통해 그녀의 연애 비법과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다. 매주 연애와 성(性)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선정하여 김 소장이 그 현상과 해답을 순위화하여 설명하고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두 명의 패널이 직접 이를 재연하여 시청자들의 흥미를 높이기도 한다. 이 밖에도 SNS를 통해 시청자들의 고민 사연을 직접 듣고 해결해주는 코너도 마련되어있다.

<로맨스가 더 필요해>
10대 첫사랑, 20대 연애, 30대 결혼, 40대 로맨스, 다양한 나이대의 사랑과 성(性)을 다루는 토크쇼다. 취지에 맞게 20대부터 40대까지 여러 연령층으로 구성된 패널들과 연애 전문가가 시청자가 보내온 사연에 대해 각 연령대의 관점에서 얘기한다. 여타 다른 프로그램들과의 차별화가 있다면,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요?' 코너는 결혼을 주제로 하여 결혼을 앞둔 커플들의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룬다. 포괄적인 개념의 연애 상담에서 결혼이라는 키워드를 꺼내 이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며 3, 40대 기혼자들이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 이외에도 SNS를 통해 대화하는 신세대들을 위해 SNS 속 내용에 담긴 의미를 심리적으로 분석하는 '썸톡'이라는 코너도 눈 여겨 볼 만하다.

<오늘 밤 어때>
연애 고수들이 직접 알려주는 연애 비법을 취지로 하여 제작된 이 프로그램은 2, 30대 연예인과 현직 기자가 본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연애를 어려워하는 이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준다. 연애를 하면서 발생하는 남녀 사이에 여러 문제들을 분석하고 이 때 남녀의 심리와 감정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하며, 나아가 은밀한 연애 스킬 혹은 성(性)을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이 밖에도 현직 기자가 세계에서 일어나는 황당한 연애 관련 토픽들을 소개하여 재미를 더한다.

이처럼 최근 방영되고 있는 연애, 성(性)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고민 상담을 위주로 내용이 구성되어 단순히 연애와 성(性)에 대한 표면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닌 실제 누군가가 겪고 있는 사연을 통해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어 시청자들의 많은 공감을 사고 있다. 게다가 시청자가 직접 보낸 사연, 이원생중계, 그리고 SNS상담과 같이 대중들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일반인들도 쉽고 친근하게 해당 주제에 접근할 수 있다.

두 개의 시선

무슨 일이든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부정적인 관점은 항상 공존한다. 연애와 성(性)을 담는 TV 프로그램 역시 이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우선,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은 다음과 같다. 성(性)을 금기시하는 유교적 성격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성(性)을 숨기고 감춰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당당히 밖으로 내보이지 못하고 음지(陰地)에서만 즐기곤 했다. 음지에서의 성(性)은 필요 이상의 극단적인 호기심을 낳는 결과로 이어져 불법매춘이나 유흥업소와 같은 퇴폐적이고 폐쇄적으로 변질한 성문화를 만들어 냈고, 이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야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매체인 TV가 성(性)을 밖으로 꺼낸 것은 음지에 있던 성문화를 양지(陽地)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사람들은 성(性)을 인간이 가지는 지극히 당연한 욕구 중 하나로 인식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더불어 성(性)을 방송의 새로운 소재로 받아들여 시청자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는 환영의 목소리도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방송에서의 과도한 성(性) 이야기가 건전한 성문화의 소통과 공유가 아닌 연애 기술이나 성 관계 방법 등 자극적인 요소로만 채워질까 우려하는 모습도 있다. 자신만의 성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 혹은 성인이 이렇게 여과 없는 내용에 노출될 경우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청연령등급이 제한된다 할지라도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여러 가지 편법을 통해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방송을 시청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탓에 그 위험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방송의 재미와 흥미를 높이기 위해 등장하는 지나친 표현이나 내용 역시 때로는 성인에게조차 거북하거나 불쾌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도 해 아쉬움이 남는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TV에서 다수의 사람이 성(性)을 주제로 얘기하는 모습을 보리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연애 상담을 구하고 여럿이 함께 모여 성(性)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제작될 만큼 성(性)에 대한 사회적인 의식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이는 국민의 개방된 성(性) 의식과 대중문화 전반에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이다.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 속에서 방송국의 역할은 단순히 유행에 따라 비슷한 형식의 아류작을 우후죽순 격으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TV가 대중의 여론을 조성하고 이를 반영하는 매체임을 자각하여 대한민국의 건전한 성문화를 만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성(性) 이야기로 가득 찬 TV 속 내용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지 않고 이를 본인만의 주체성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판단을 통해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방송국과 시청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그 역할을 다 한다면 성(性)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임과 동시에 사랑을 기본으로 한 친밀하고 조화로운 남녀간의 상호작용으로서 건전한 형태로 정착될 것이다. 나아가 올바른 성(性)가치관과 성(性)문화의 형성은 아직까지 사회에 잔류하는 낙태, 그리고 불법 성(性)매매와 같은 변질한 성(性)문제의 해결을 이끌 것이며 성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관심을 가지며 그것에 대해 알아 가고자 하는 청소년들에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존재로서의 성(性)을 건네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화뉴스 남지현 기자 pil_jh@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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