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연극의 거장 다니엘 스타인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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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스타인. 한국에선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배우 시절에 전 세계 25개국 이상을 돌아다니며 순회공연을 펼칠 정도로 그는 유명한 피지컬 씨어터(physical theater·신체 연극)의 거장이다.

세계적인 마임이스트이자 배우인 에티엔 드크루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는 미국과 일본 등 다수의 국가에서 교육활동에 힘썼으며 현재 미국 브라운 대학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쁜 와중에도 그의 제자이자 극단벼랑끝날다의 이용주 대표의 부탁에 흔쾌히 한국으로 날아와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광진구에 있는 나루아트센터에서 다니엘 스타인 교수와 이용주 대표, 벼랑끝날다 단원인 오정민 배우를 만나서 한국에서는 아직까진 생소한 신체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한국은 처음이라고 들었다. 

ㄴ 이용주 : 국내 연극영화과엔 피지컬 씨어터(신체연극) 수업이 없다. 그래서 피지컬 씨어터를 배우기 위해 다니엘 교수님을 어렵게 모셨다. 먼저 '벼랑끝날다'의 배우들이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이를 토대로 한국에도 피지컬 씨어터에 대해 알릴 생각이다.

한국에 대한 느낌은.
ㄴ 다니엘 : 첫 방문이지만 굉장히 편안했다. 첫날 삼겹살과 된장찌개를 먹었는데, 한국 음식과 사랑에 빠질 만큼 잘 맞았다.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인들이 강한 맛을 내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굉장히 놀랐다.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대표적인 요소다. 음식을 통해서 한국인들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과 달리, 잉글랜드의 음식은 강한 맛이 나지 않는다. 중간 정도랄까. 그래서 강력한 의지로 무언가를 결정하지 못한다.

작품 중에서 각기 다른 나라의 창문을 다루는 내용의 공연을 한 적이 있다. 프랑스, 일본, 미국 창문을 보여줬는데, 이 세 가지 창문이 다른 방식으로 열린다. 단순히 창문이 어떻게 열리느냐로도 그 나라와 문화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음식도 똑같다. 한국사람들은 자기주장이 강하다. 이런 성격이 음식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ㄴ 오정민 : 한국 음식을 처음 드시고 나서, 용주를 보시며 이제야 제자를 알겠다고 말씀하셨다.

ㄴ 이용주 : 선생님께선 각국의 여러 제자를 두셨는데, 가끔 음식으로 표현하시곤 한다.

이용주 배우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ㄴ 이용주 : 선생님을 2003년 9월에 처음 뵀다. 당시엔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셨는데, 직접 트럭을 몰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셨다. 공항에서 저를 태워 앞으로 지내게 될 아파트에 데려다주고, 식료품점에서 입맛에 맞을만한 음식들을 몇 가지 알려주셨다. 그때 처음 땅콩 잼에 셀러리를 찍어 먹어봤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배우 이용주는 어떤 학생이었나?
ㄴ 다니엘 : 학생이었을 때 용주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잘 말하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보통 상대방과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면서 듣는데, 용주와 대화할 때는 온전히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용주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듣고, 들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졸업했을 때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ㄴ 이용주 : 처음 미국으로 갈 때, 문법과 단어 책만 들고 갔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 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눈빛만 봤다. 듣지 못하니까. 이게 오히려 좋게 작용해서, 선생님의 눈빛만으로도 뭘 말하려는지를 다른 친구들보다 많이 알 수 있었다.

현재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이용주 배우와 같은 느낌을 받는지.
ㄴ 다니엘 : 가르침은 비를 내리는 것과 같다. 학생들은 가르침이라는 비구름 아래 있다. 그 비를 맞는 것은, 학생들이 가르침을 받는 것과 같다. 내가 용주를 가르치고, 용주가 이 학생들을 가르쳤으니, 내 아이들과 다름없다. 물론 아직 용주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발전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타고난 재능보다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능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노력엔 한계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 학생들이 좋다.

한국 학생들에게 영어로 가르치고 있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ㄴ 오정민 : 학생 중에서 외국에 살다 왔거나, 동시통역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 도움을 받는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수업이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수업에서 특별한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는데, 그 이유는.
ㄴ 다니엘 : 기교를 배우면 학생들은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집에서 연습할 때 기교를 부릴 것이다. 기교를 가르치는 것은 돈을 훔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떻게 기교를 만들어내는지를 가르친다면, 남은 시간 동안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오래된 속담 중에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방법을 알려줘라'라는 말이 있다. 참된 교육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자신이 배웠던 특별한 가르침이 있다면.
ㄴ 다니엘 : 내 스승이었던 다니엘 드크루는 진정한 예술가였다. 그는 원칙을 알려줄 뿐, 가르치지 않았다.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공부할 당시, 수업 도중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이 2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관련된 일을 하면서 가르침을 이해하게 됐다. 2년 동안의 기간은 고뇌와 좌절의 시간이었지만, 깨달음을 얻고 나니 너무도 놀라웠다. 다만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나에게 중요한 또 다른 가르침은,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가르침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나쁜 선생님이라면 나쁜 것들만 가르칠 것이고,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좋은 것들을 가르칠 수 있다. 배움에서도 똑같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내가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면 그것이 굉장히 학생들에게 어려울 것이라는 걸 알지만, 아무 조언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신이 스스로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2주간의 프로그램은 너무 짧지 않나.
ㄴ 다니엘 : 현재 교수로 있는 브라운 대학에선 1년이라는 시간이 있어 그에 맞는 계획을 설정한다. 이번 한국에서의 프로그램은 처음에 2주만 하기로 했기 때문에, 2주에 맞는 계획이 있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어렵지 않다. 물론 2주간의 교육으로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만, 내가 기본을 잡아주면 나머지는 용주가 나를 대신해 가르칠 것이다.

같이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은 학생이 있나?
ㄴ 다니엘 : (용주를 가리키며) 물론이다. 그와 더 오래 일하고 싶다. (웃음) (이유는?) 용주가 나를 빛나게 하고, 내가 용주를 빛나게 한다. 예전 광대수업에선, 파트너쉽을 기르기 위해 서로의 파트너를 좋게 보이도록 만드는 연습을 했다. 파트너가 빛나면 자신도 함께 빛나는 것을 수업을 통해 알게 되더라. 그런데 요즘은 나를 빛내는데 전력을 다하고, 파트너를 깎아내리면서까지 자신이 빛나 보이도록 만든다. 이 부분은 단순히 수업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분야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연극인들은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용주에 관한 것도, 나에 관한 것도 아닌 연극에 관한 얘기다. 연극 무대는 이것을 할 수 있는 좋은 장소다.

   
 

프랑스에서 20년을 지냈다.
ㄴ 다니엘 : 스승인 에티엔 드크루 밑에서 3년 동안 공부했다. 졸업 후에 미국으로 돌아갈지 프랑스에 남을지 선택해야 했다. 고민하던 도중에 지인의 소개로 일하게 됐다. 그 일을 시작으로 계속 다른 일들이 들어오더라. 결국, 프랑스에서 지내게 됐지만, 나만의 일을 하고 싶었다. 한번은 댄스 스튜디오에서 마루 닦는 일을 했다. 오전 6시에 출근해 걸레질해야 했는데, 경비원들에게 열쇠를 받아 새벽 2시에 스튜디오에 나가 4시간 동안 온전히 나만의 연습시간을 즐겼다. 2년 동안의 노력 끝에, 24살에 나의 첫 번째 작품을 완성했다. 관객들에게 선보인 한 번의 공연으로 나는 6개월간의 공연 계약서를 받았다. 그 이후로, 계속 일이 늘어나 유럽순회공연도 펼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게 됐다.

첫 작품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ㄴ 다니엘 : 내가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법을 알려줬을 뿐, 나만의 공연을 만드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혼자서 2년 동안 완성한 것이 바로 'TIMEPIECE'다. 25년간 공연한 이 공연으로 집 2채를 샀다. 사람들이 왜 그것만 하냐는 질문에 'Inclined to Agree', 'Windowspeak' 등의 작품도 했지만, Timepiece가 좋아서 지속해서 공연했다. (지금도 공연을 하는가?)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서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교육에 집중하고 있나.
ㄴ 다니엘 : 그렇다. 그러나 나의 교육방법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연기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중요한 일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연극이 그것을 돕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연기를 가르치고 있지만,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도 집중한다. 주변의 많은 문제에 자극을 받는다. 한가지 예로, 이번 수업에서 한 젊은 여학생이 두 동작을 연달아 했던 적이 있다. 나는 동작을 분리하기 위해 멈추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알아들었는데도 멈춰야 하는 부분에서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행동에서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는데, 바로 그녀가 우리의 시간을 자신 때문에 낭비하고 있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뺏지 않으려고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을 알고, 나는 그녀의 행동을 수차례 반복하게 해 나의 말을 듣도록 했다. 그녀는 그녀가 필요한 행동만큼 넉넉한 시간을 받았기 때문에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다. 이 상황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수업에 참여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래서 나는 이런 것들에 초점을 맞추어 수업을 진행한다.

ㄴ 오정민 : 나도 수업에서 그 친구를 지켜봤는데, 그 친구가 힘들어했다. 우리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못 알아들어서 계속시킨 줄 알았는데, 교수님께서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선생님은 충분히 시간을 주셨는데, 그 친구는 스스로 알아서 빨리 행동하더라. 선생님은 그걸 고치고 싶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ㄴ 이용주 :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눈물이 났다. 그 상황에서 그 친구가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계속 고개를 끄덕였었다. 나는 교수님이 그 행동에 대해서 하지 말라고 했던 것으로 이해했었는데, 그 너머에 그녀가 자신을 한정 짓는 배경을 보신 것 같다.

첫 수업을 봤다. 그때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을 했는데, 무슨 뜻인가.
ㄴ 다니엘 : 나는 가르칠 수 없지만, 학생들은 배울 수 있다. 나에게 있어 가르침은, 물리적으로 머리를 열어 내가 아는 것을 집어넣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의 모습을 보고 학생들은 생각하고, 따라 하며, 연습한다.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나와 나눴던 모든 생각이 학생들의 머릿속에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란다. 만약 학생들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본다면, 나는 답할 것이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학생들이 제 생각을 이야기하면, 나는 '그래, 좋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라는 것이고, 배우는 것이다. 나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마치 식물에 물과 자양분을 줘 영양 상태를 좋게 만들어 주는 것처럼, 우리의 대화를 통해 학생들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조언을 듣고 싶다.
ㄴ 다니엘 : 조언이 하나의 기교가 될 것 같아서 말을 꺼내기 어렵지만, 내 제자들과 얘기했던 얘기를 소개하고 싶다. 진실(Truth)과 진짜(Authenticity)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진실에 더 관심을 둔다고 생각한다. 많은 선생이 '그건 진실이 아니야. 다시, 진실하게 보여라'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연극이라는 것은 진실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진실을 보고 싶다면, 패스트푸드점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된다. 그런데 그것은 나쁜 연극이다. 좋은 연극은 진실이 아니다. 연극적인 것을 담아 진실처럼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진짜다.

'관객들이 진실을 원하지 않으면, 무엇을 원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관객들은, 그들이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감동하기를 원한다. 전달하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말로 이해시키는 것과 표정, 혹은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예를 들어 배우가 슬픈 이야기를 들려줄 때, 관객들은 그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을 표정이나 행동으로 보여주면, 관객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마음속의 무언가가 변화를 일으킨다. 물론, 이것은 진실과는 다르다. 진실에 대해 고민하지 말고, 이해시키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이해하는 것은 중심이 나에게 있다. 내가 무엇을 설명하는지가 중요할 뿐, 관객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중요하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라!'라고 외치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그것은 시간 낭비다. 표정을 짓고 행동하는 것은 상대방에 관한 이야기다. 가장 나쁜 연기는,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배우다. 또한, '사람들이 이렇게 봐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며 하는 행동도 그렇다.

한국에 또 방문하고 싶은가.
ㄴ 다니엘 : 교수로서 학생들이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처음 여러 한국 학생들을 가르쳐봤는데, 미국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배우려고 한다. 매년 오고 싶다.

ㄴ 오정민 : 이번 프로그램 이후에 교수님을 모시는 건 우리들의 숙제다. 앞으로 어떻게 노력할지 고민된다. (웃음)

문화뉴스 김관수 기자 gs@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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