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공연 시작 전까진 여러 걱정을 하다가도 막상 시작되면 다 잊고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되는 것 같아요"

팔방미인. 연극과 뮤지컬 장르를 가르지 않고 쉼 없이 다양한 작품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 김재범을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다. 치명적인 의문의 남자 로이부터 영악한 작가 지망생 클리포드까지 그가 표현하고 있는 캐릭터는 그야말로 다채롭다. 그 때문에 당연히 부담감이 있지만,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쏟기 위해 무대 밖에서는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는 그의 말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그 내면의 진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는 9월 음악극 '올드위키드송'으로 또 한 번 새로운 캐릭터로 관객들을 찾아올 배우 김재범을 만났다. 미국 극작가 존 마란스의 작품인 '올드위키드송'은 특히 2인극의 특성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우의 연기력이 가장 극대화된다는 2인극, 그것도 초연인 작품에 대해 그는 의외로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지보다 자신이 '무엇을' 보일지에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연습이 한창인 요즘, 자신이 맡은 '스티븐'의 상황과 감정에 많은 공감을 하고, 스티븐이 그러하듯 '마슈칸'에게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음악극 '올드위키드송'에 대해 설명해달라.
ㄴ 스승과 제자, 인간과 인간 간의 소통 주제로 한 연극이다. 마슈칸과 스티븐은 음악을 통해 소통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도, 받기도 하면서 변화해간다. 두 인물 모두 자기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인물들이었지만 서로를 통해서 마음을 열어간다. 음악을 통해 피아니스트로서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마음을 열어가는 작품이다. 관객과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음악이 정말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작품만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ㄴ 스티븐도 마슈칸에게 도움을 주지만 정작 큰 위로를 받고 변하는 건 본인이기 때문에 작품에서 더 중요한 인물은 마슈칸인 것 같다. 마슈칸이 괴짜고 생각 없이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상상할 수 없는 큰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이, 그런 사람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것이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커다란 사건 때문에 오는 감동보다도 잔잔한 감동이 있는 것 같다. 피아노, 노래 레슨으로 시작해서 좀 더 강한 소통을 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또, 두 인물이 고집을 꺾지 않으려고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코믹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스티븐' 캐릭터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ㄴ 스티븐은 영재란 소리를 듣고 천재로 자라왔는데 실은 자신이 유명한 거장의 연주를 따라 할 뿐이었다는 걸 깨닫고 음악에 흥미를 잃는다. 뭔가 느낄 수 있지 않겠냔 생각으로 여러 선생님을 찾아다니다가 마슈칸을 만나게 된다. 피아니스트로서 교수를 찾은 건데 마슈칸은 가수들의 마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며 노래를 배우라고 한다. 스티븐은 마슈칸의 뜻을 이해할 수 없어 둘 사이의 갈등이 시작된다.

 
음악이 극을 관통하는 소재다. 누군가에겐 전부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싫증 난 것이 음악인데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ㄴ 음악은 밥과 술과 잠자리를 주는 감사한 장르다. (웃음) '스티븐'과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어렸을 때는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최신 가요를 듣고 하면서 즐거웠다. 지금은 마냥 행복하고 즐길 수 있는 건 아니게 돼서 가슴이 좀 아프다. 작품을 하면서 내가 소화해야 할 노래를 관객들에게 전달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부담되기도 한다. 음악이라는 게 듣기 좋고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특히 목 상태가 안 좋을 때면 더더욱.

음악이 점점 스트레스가 된다는 점에서 스티븐과 비슷했다. 그러면서 스티븐이 마슈칸에게 테크닉이 전부가 아니라며 힐링을 받는데, 덩달아 나도 힐링 받는 느낌이 든다. 마슈칸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혼자 글로 읽었을 때는 이해 안 갔던 부분이 위로가 돼서 마음을 열게 되는 것 같다.

또, 스티븐이 남들과 소통을 잘 하지 않은 캐릭터다. 대화도 별로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도 비슷하다. 내 인간관계는 굉장히 얕다. (웃음)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단지 다른 점은 스티븐은 피아노 천재고 난 아니라는 거다.

제작발표회에서 같이 스티븐 역할을 받은 박정복 배우가 직접 피아노를 쳤다. 극 중 실제로 피아노 연주를 하는지.
ㄴ 직접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연습하고 있다. 극 중 피아노 천재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화려한 연주들이 많이 나오는데 어떻게 표현할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독일 가곡도 부른다.
ㄴ 어렵다. (웃음) 독일어로 대화하는 장면도 있는데 다행히 스티븐이 독일어를 잘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어설퍼도 그나마 용서가 돼서 정말 다행이다. 부담 없이 하려고 하고 있다.

상대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떤지.
ㄴ 송영창, 김세동 선생님이 열려있으신 분들이라 편하게 연습하고 있다. 뭘 하든 다 받아주셔서 감사하다. 스티븐 역의 다른 배우들과도 함께 공부하며 캐릭터 구축을 해가고 있는데, 혼자보다 훨씬 낫다. (웃음) 물어볼 수도 있는 부분도 있고, 제가 생각한 스티븐을 표현하기 위해 열심히 만들어가고 있다.

'올드위키드송' 이번 공연이 국내 초연이다.
ㄴ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오히려 부담감은 없다. 재연인 공연은 초연 때 했던 누구를 떠올리게 된다. 초연 때의 배우, 캐릭터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가 참 힘들다. 하지만 초연은 처음이니까 어떻게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그래서 네 명의 스티븐이 모두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관객분들이 서로 다른 스티븐을 보는 재미가 있으실 거다.

▲ (왼쪽부터) '올드위키드송' 김지호 연출, 서은지 음악감독
연극 '데스트랩', 뮤지컬' 아가사'에 이어 김지호 연출과의 세 번째 작품이다.
ㄴ (김)지호가 자꾸 나를 욕심 내서 큰일이다. (웃음) 아무래도 여러 작품을 함께하다 보니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뭘 원하는구나를 아는 것 같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아직도 티격태격한다. 서로 좋은 점들을 합쳐서 혼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작품이 나오도록 계속 노력하고 있다.

쉬지 않고 연달아 작품을 하고 있는데, 체력적으로나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 힘들진 않은지.
ㄴ 부담감은 약간 있다. 특히 이번에는 본의 아니게 작품 활동이 겹치게 돼서 체력적인 부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보양식도 먹으면서 누워만 있고 앉아만 있다. (웃음) 운동은 꾸준히 해야 기본 체력이 느는데 지금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다. 가볍게 걷기 운동 정도 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아끼지 않고 쏟을 수 있도록 무대 밖에서는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스트레스 풀기가 마땅치 않을 것 같은데.
ㄴ 집에서 만화책 보며 쉬기도 하고, 휴식하면 스트레스가 풀렸는데 그런 시간이 조금 모자라니까 공연으로 풀려고 하고 있다. 연습 때는 체력적으로 힘들고 창작의 고통도 있기 마련이라 스트레스가 심하다. 하지만 공연 같은 경우 최대한 감정 소모를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지금 하는 '데스트랩'에서 욕도 하고 소리도 지르는데, 그럴 때마다 뻥 뚫리는 기분이다. 공연하기 전엔 잘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걱정을 하다가 막상 공연이 시작되면 다 잊고 열중하게 된다.

소극장 공연은 관객들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ㄴ 대극장 같은 경우 관객이 저 멀리 있는 느낌이지만, 소극장은 관객들이 쳐다보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관객들의 반응도 바로바로 느껴지는데, 그게 소극장만의 큰 매력인 것 같다.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놔버리면 다 들켜버릴 것 같아 더 긴장하게 되고 즐기게 되고. 틀렸을 때도 바로 들켜버리니까 훨씬 창피하다.

그래서 무대에서는 관객들을 잘 안 보려고 한다. 가끔 주무시거나 휴대전화를 보는 분들이 계신 데, 그런 분들을 보면 맥이 탁 풀려버린다. 그러면 연기에도 영향이 있고 공연을 좋게 보고 계신 분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잘 안 보려고 한다.

'올드위키드송'을 기다리는 관객에게 한 마디.
ㄴ 꼭 보러 오셔야 한다. (웃음) 보러 오셔야 매력을 느끼실 수 있을 거다. 보시기 전엔 아무리 얘기해봤자 설명이 안 된다. 특히 살면서 과연 이게 맞는 일인가, 잘 살아왔나 회의감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위로받고 가실 수 있는 작품이다. 꼭 직접 오셔서 마슈칸에게 위로받으면서 동시에 마슈칸을 위로해 준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으시길 바란다.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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