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댄스의 역사 ① - 이집트

   
▲ 에임하이에서는 벨리댄스를 배틀로 즐길 수 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벨리댄스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 어느 나라의 어느 춤인지 정확히 구별해 내어 논하는 것은 어려우나 벨리댄스란 통상 이집트, 터키 등에서 종교적으로 행해지던 춤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벨리댄스는 모성애와 생명의 수정, 분만의 고통과 새 생명이 세상에 나올때의 행복을 표현하는 춤이며, 특히 여자의 몸을 위해 디자인 된 댄스로서 복부근육과 힙, 가슴 움직임이 포인트인 근육댄스다.

벨리댄스는 국가마다 다양하고 그 명칭도 다르다. 락 샤르키(Raqs Sharq), 락 발라디(Raqs Baladi), 오리엔탈 댄스(Oryantal dans)와 같은 다양한 명칭 속에서 미국과 유럽에서 사용하던 벨리댄스(Belly Dance)라는 용어가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8년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도입한 안유진에 의해서 자연히 벨리댄스라는 미국식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춤에 기원에는 다양한 이론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이집트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이론이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 제 18왕조의 무덤 속에서 벨리댄스와 똑같은 형태로 춤을 추는 무용수가 그려져있다. 이슬람제국이 번영을 누리던 9~10세기 경에는 정부의 보호를 받을 정도였다.

이집트의 벨리 댄스는 오스만터키 시대가 되면서 터키 문화의 영향을 받아 에로틱한 분위기를 띠기 시작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벨리댄스의 형태는 이때 굳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제국주의 시대에 벨리댄스가 미국과 프랑스 등 서구 국가에 알려지게 되고 서양의 벨리댄스 스타일이 생기면서 벨리댄스는 전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18세기 이집트 왕조시대의 무하마드 알리는 카이로 시내의 공공 장소에서 벨리댄스를 금지하여 일시적으로 쇠퇴하게 된다. 1952년 이집트 혁명으로 나세르 대통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상체를 가리고 춤을 추어야한다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벨리댄스가 다시 부활했고 남자들도 벨리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이집트 스타일의 벨리댄스는 락 샤르키(Raqs sharqi)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통적 벨리댄스와 서구적 벨리댄스를 기본 바탕에 두고 발전했다. 그리고 이 스타일은 가장 클래식한 벨리댄스로 알려져 있다. 

   
▲ 이집트의 전설적 벨리댄서, 사미아 가말(Samia Gamal)

이집트 스타일의 댄서는 댄스를 통해서 감정을 투영 할 수 있어야 한다. 음악이 관중에서 가져오는 리듬과 감정을 시각적인 레벨로 전하는 것이 이집트 댄서의 목적이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집트 스타일은 관능적이며 성숙한 여성을 표현한다. 

이집트 스타일의 밸리춤은, 사미아 가말(Samia Gamal), 타히야 카리오카(Tahiya Karioka), 나이마 아케프(Naima Akef)란 이집트 영화산업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벨리댄서들이 만들어낸 기초에 근거한다. 그녀들이 만들어낸 기초를 부분적으로 계승한 후발의 댄서로서는 소하르 자키(Sohair Zaki), 피피 압두 (Fifi Abdou),나그아 파드(Nagwa Fouad)를 들 수 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활약한 그녀들은 현재도 높은 인기를 자랑해, 그 분야의 선배들과 거의 다르지 않는 명성과 영향력을 얻고 있다.

문화뉴스 조현제 기자 jhj@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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