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누구에게나 말하는 대로 될 것 같은 시절이 있다. 남들이 뭐라 하건 내가 원하는 것을 결국 이루어낼 것이란 확신이 있었던, 누군가는 '청춘'이라 부르는 시절 말이다.


그 시절은 참 신기하게도 아주 작은 용기만 있으면 못할 게 없었다. 지금은 철없는 짓이었다며 웃어넘기는 일들마저 그때는 내 인생을 쥐고 흔든다고 느껴질 만큼 대단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여태껏 지나온 길들이 옳은 것이었는지, 혹시 잘못된 길을 선택한 건 아닐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잠 못 드는 밤도 많았을 것이다. 고작 한 발자국 내딛는 게 지구를 들어 올리는 일보다 더 힘겨워하던 날들. 그렇기에 더 용기를 냈고 직접 부딪혀봤는지도 모르겠다.

"이땐 모두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 흥분하지 않곤 지낼 수 없는 계절이었다.
그래 모두 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바다는 3%의 소금물 덕분에 썩지 않는다고 한다. 누군가에겐 고작 3%일지 모르겠지만, 그 '고작'이 넓고 넓은 바다를 만든다. 바다가 계속 흘러가게끔 하는 소금물처럼 우리 인생에 있어 청춘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겨우 그런 기억들이, 고작 그런 용기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원동력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삶의 3%에 불과할지 모르는 청춘 덕분에 여전히 꿈을 꾸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극 '뜨거운 여름'은 우리가 잠시 잊고 지냈던 이 3%를 떠올려보는 좋은 시간이 될 듯하다. '뜨거운 여름'은 공연을 앞두고 첫사랑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재희'가 학창시절부터 꿈을 꾸게 해 준 첫사랑의 흔적과 열정의 고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연극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무용, 노래, 춤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의 드라마로 녹아들어 극단 간다 특유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장면이 여럿 있지만, 관객에게 가장 뜨겁게 느껴졌을 두 장면을 꼽아봤다.

▶ 채경이를 그리워하는 재희의 마음이 표현된 춤
재희에게서 3%의 용기를 얻고 꿈을 이루기 위해 유학을 결심한 채경. 처음엔 서로 꿈을 이룬 후에 다시 만나자고 웃으며 헤어졌지만 사귀는 것도, 사귀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한 사이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은 괴롭기만 하다. 박정현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채경이 생각에 힘들어하던 재희는 비 오는 어느 날,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또 이 노래를 듣고 만다. 재희의 슬픔, 그리움, 원망 등은 진안의 춤으로 새롭게 표현된다.

몸은 달려가지만 마음은 머물러있는 것 같다던 진안의 말은 보는 이들의 가슴도 먹먹하게 만든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을 때 더 아름답다지만 그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기억을 가진 관객이라면 재희의 모습에 더없이 공감하며 같이 아파할 듯하다. 무대 한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떨어지는 빗방울과 우산을 이용한 배우들의 춤은 좁지 않은 무대를 꽉 채운다.
 

   
 

▶ 자신의 열정과 함께 춤추는 재희
유명하진 않지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무명 배우' 재희는 결혼이란 현실 앞에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된다. 아니, 모른 척하던 현실을 그제야 마주하게 된다. 낙산에서 서울까지 그 긴 거리를 6년 동안 오가며 사랑이와 소중한 감정을 키워왔지만, 사랑이 부모님과 그 주변인들이 보기에 재희는 염치없는 놈일 뿐이다. 꿈을 좇는 자신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만 비치는 현실에 재희는 좌절한다.

그런 재희 앞에 친구 대훈이 나타난다. 둘은 자신이 가장 뜨거웠던 시절, 주변에서 뭐라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가 함께 춤춘다. 무아지경으로 춤추던 재희 앞엔 어느새 진안 대신 자신이 가장 뜨거웠던, 열정적이었던 어릴 적 자신이 서 있다. 그들은 마주 보며 웃고, 과거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춤춘다.

작품은 재희가 많은 제약에도 꿈을 계속 좇는지, 아니면 현실과 타협해 사람들이 말하는 '어른'이 됐는지 단정 짓지 않는다. 결말의 해석은 온전히 관객에게 달린 셈이다. 각박한 현대 사회를 생각하면 재희도 결국엔 꿈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상상이 가장 먼저 들지만, 그렇다 해도 이 장면을 통해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열정과 한몸이 된 듯 땀을 뚝뚝 흘리며 춤추는 재희의 모습에서 관객들 또한 최대한 뜨겁게 살려고 노력했을 그 시절을 떠올릴 테니까. 그리고 그것이 비록 현실 때문에 뒤로 조금 밀려있어도 언제나 용기를 불어넣어 줄 3%라는 것을 알기에.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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