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김가현 cherishkkh@mhns.co.kr 아나운서부터 PD까지, 방송을 사랑하는 김가현입니다. 콘텐츠를 통한 당신과의 만남이 소중한 인연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콘텐츠를 만듭니다

[문화뉴스 아띠에터 김가현] 좋은 음악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나에게 있어 좋은 음악은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음악이다. 그런 의미에서 넉살의 음악은 참 좋다.

2017년, 수많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과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들의 노래가 주를 이루는 K-pop부터 발라드, R&B, 재즈, 힙합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대중들에게 친숙해지면서 대중음악의 전성기를 넘어 범람기라고 일컬어도 무방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노래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온 탓일까.

음악의 홍수 속 플레이 버튼을 눌러야 할 손가락은 갈피를 잃고, 길에서 들려오는 차트 100의 노래들이 내게 소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 내게 래퍼 넉살의 랩은 세상의 소리에 지친 내 귀를 정화시켜주기 시작했다.

으레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하고 싶어 하거나 있지도 않은 것을 꾸며내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할 장치를 마련해 놓는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미디어와 SNS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러한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특히 어느 순간부터 돈과 명예, 인기가 자리를 채우는 랩가사가 늘어나며 일반 대중들에게 힙합은 '과시' 혹은 '허세'라는 편견이 생겼는데, 넉살은 가사에 돈, 명예, 인기 대신 한 사람의 가치관과 삶을 담담히 풀어내며 힙합도 시와 철학이 될 수 있고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넉살의 앨범 '작은 것들의 신'의 수록곡들을 보면 작은 것들, 즉 소시민들을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가령 '너도 이 다리를 건너 일하러 가? 우린 참 비슷하네 담에 공연 보러 와 내가 숨 쉬는 일터로 잠시 쉬러 와 넌 그럴 자격 있어'라며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밥값'과, '내 미래를 왜 네가 정해 내 시간은 날 차분히 기다려 줬어/ 시간은 각자의 것 행복으로 가는 길도 가지각색인 것'이라며 세상이 정해놓은 시계에 조급해하는 청춘이라면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Make it slow', 화류계에서 일한다는 소문이 도는 어릴 적 친구에게 별일 아니라고, 아무 걱정 말라고 모두 기다린다고 말해주는 'HOOD' 등에서 그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의 위로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흔한 감성팔이나 '넌 꼭 잘 돼야 해'와 같은 무조건적인 긍정과 같은 응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그저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곤 잘하라는 말 대신 열심히 하라고 밥값 하라고 한다. 

쓰라린 친구는 충분히 쓰라리게 놔둔다. 멋지고 대단한 사람 대신,작은 배역의 주연을 조명한다. 그래서 그의 위로가 더욱 특별하다. 잘하지 않아도, 큰 사람이 되지 않아도 '나'라는 사람 자체로 인정받는듯한 기분이 들게 해주기 때문이다.

▲ 쇼미더머니6 1차에서 부른 '팔지않아'의 가사 일부분.

또한 그는 동시에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진짜'를 외친다. 우린 우리 자신일 때 더욱 빛난다고, 진짜 너라면 화라도 좋다고. 이 외에도 Q와 눈먼 자들의 도시와 같은 곡을 들어보면 '진짜'에 대한 그의 깊이 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자연히 듣는 이에게도 전달돼 '진짜 나'에 대한 성찰을 하게끔 해준다.

그의 따뜻한 시선과 보여지는 것들보다 중요한 그의 신념은 '필라멘트'와 '막이 내려도'를 통해 쇼미더머니6에서 또한 한 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나아왔다. 3년 전 공개했던 'RHYD YO'의 벌스는 막이 내려도에서 다소 달라진 모습으로 재탄생했는데, '그 XX들을 용서할 수 없으니까 날 용서하소서'라던 가사가 '그 녀석들을 이제 용서할 테니까 날 용서하소서'로 바뀐 것을 보고는 꽤나 뭉클하기도 했고 앞으로 넉살이라는 래퍼가 어떤 음악을 보여줄지 새로운 기대감도 생겼다.

다들 서로 내가 잘났다고 과시하는 사람들 속, 넉살은 싸구려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싸구려로 내 영혼은 절대 팔지 않는다거나, 쌈마이 기질과 싸구려 웃음, 내 싸구려 인생 이야기 등, 여기에서 그의 짙은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다. 싸구려 인생 이야기라고 말하기에 오히려 절대 싸구려가 아닌, 그래서 너무 소중한 한 사람의 이야기.

▲ 쇼미더머니6 세미파이널 '필라멘트' 무대의 한 장면

한 고시생 친구는 넉살의 'Organ'을 들으며 지친 고시생활을 이겨낸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삶이 각박해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밥값'을 들으며 위로받는다고 한다. 넉살의 가사는 따뜻하게, 때로는 일침으로 따끔하게 하나하나 마음에 와 자리 잡는다. 좋은 음악이란 이런 것 같다. 들었을 때 단순히 허공에 날아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 한 편에 묵직하게 다가와 남는 것. 그리고 그게 아주 작은 변화라도 누군가에게 유의미한 무언가가 되는 것.

예전 가수 故 신해철 씨가 돌아가셨을 때, 한 작가가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너의 꿈을 비웃는 사람은 애써 상대하지 말라고 해주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게 정말 힘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그 문장을 읽고 '아, 내게도 저렇게 평생에 남는 가사가 있었으면 좋겠다'하고 마냥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내게 넉살은 그런 사람으로 기억될 것 같다. 작은 배역들이 주연으로 살아가는 이곳에서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하면 된다고, 어떤 위치에 있든 최선을 다하면 의의가 있다고 말해준 사람. 이 가사 덕분에 나는 어디에 있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살면서 마음에 남는 노래가사, 한 문장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난 천상꾼, 래퍼 넉살에게 정말 고맙고 그가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 쇼미더머니6 파이널무대 '막이 내려도'

쇼미더머니는 끝났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28살의 제이지, 비비안웨스트우드 서른의 하루키 그리고 서른 한 살의 넉살. 그들이 들려온다 이번에는 꽤 멀지만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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