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영화인' 대백과사전…설경구

▲ ⓒ 쇼박스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는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된다"고 말해 나이 50에 접어들면 우리는 흔히 '지천명'이라 부른다. 즉, 쉰 살이 되면 주관적인 뜻을 넘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경지에 들어선다는 의미다.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주연을 맡은 설경구 또한 올해로 딱 만으로 50, 지천명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2017년 기준으로 그의 연기경력이 25주년을 맞이했다. 1993년 연극 '심바새매'로 처음 연기자의 길로 접어든 이후, 지금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달려왔다. 그래서 이번 편은 설경구의 연기인생 25년 역사를 되돌아보려고 한다.

설경구 '비긴즈' : '박하사탕'부터 '오아시스'까지

 

설경구의 첫 영화작품은 1996년 '꽃잎'이었고 조연으로 출발했다. 이후, '송어'에서 주연을 맡으며 좋은 연기력을 선보이긴 했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배우였다. 이랬던 그가, 단번에 모든 이들의 시야에 들어왔던 일이 있었으니 현재까지 자신이 은사라고 꼽는 이창동 감독과 함께 했던 '박하사탕'이었다.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타락하게 된 남자 '영호'와 "나 돌아갈래!"라고 남긴 그의 한마디는 설경구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결정타가 되었다. 그 후 2002년에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은 설경구에게 '강철중'이라는 인생캐릭터를 선사함과 동시에 '설경구는 강한 역할만 맡는다'는 공식이 처음 생겼다. 그리고 '공공의 적'을 통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공공의 적'이 그에게 청룡영화상을 안겨다 주었다면, 같은 해에 극장에 걸렸던 '오아시스'는 설경구를 세계 3대 영화제에 발자국을 남길 기회를 선사했다. 비록 상은 자신의 파트너인 문소리에게 돌아가긴 했지만, 쉽지 않은 배역을 현실성 있게 연기해 극찬을 받았다. 이 덕에 설경구는 단 몇 년 사이에 '연기 잘하고 흥행성이 보증된 대표 남배우'가 되었다. 이렇게 '설경구 비긴즈'가 시작되었다. 

설경구 '라이징' : '광복절 특사'·'실미도'부터 '해운대'까지

 

'오아시스'가 개봉한 지 몇 달 후, '광복절 특사'를 통해 설경구는 그동안 강한 이미지를 탈피해 "설경구도 웃길 줄 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또한, 개봉 시기도 적절해서 흥행까지 성공했다. 이를 발판으로 이듬해 한국현대사 중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인 '실미도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실미도'가 첫 천만 영화로 등극하는 데 크나큰 일조를 했다. 동시에 충무로 역사상 처음으로 '천만 배우'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역도산'과 '공공의 적 2', '사랑을 놓치다'를 거쳐 1991년 이형호 유괴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그놈 목소리'에서도 설경구는 빛났다. 극 중 뉴스앵커이자 아들을 둔 아버지 '한경배'를 연기하면서 유괴로 인해 고통받는 부모의 모습을 열연하여 관객들이 범인을 향해 분노하게끔 했다.

 

그리고 설경구는 2009년에 개봉한 국내재난영화 '해운대'를 통해 개인 통산 두 번째 천만 배우로 올라섰다. '해운대'라는 영화가 흥행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져 전문가들과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꽤나 갈렸고, 일부 주연 배우들의 발연기 논란, 그리고 배급사 측의 상영관 몰아주기 의혹이 시달렸지만, 설경구 한 명만큼은 흠 잡힐 데가 없었다. 심지어 그 누구보다 '부산아재'처럼 연기해서 유일한 칭찬 거리였을 정도.

설경구 '딜레마' : '해결사'부터 '루시드 드림'까지

 

2010년대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설경구를 향한 대중의 평가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송강호, 최민식과 함께 200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장본인이자, 그의 연기력이 훌륭하다는 건 반론의 여지가 없었지만, 문제는 설경구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고착화 되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해결사'부터 '타워', '감시자들', '스파이'까지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하거나 손익분기점을 돌파해 흥행 면에서는 건재했지만, 하나같이 '설경구는 계속 강한 연기만 고집하는 것 같다', '이미지 변화가 없다'는 등의 비판도 뒤따라왔다. 이 때문에 뜻하지 않게 자신의 연기 인생에 딜레마가 찾아와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준익 감독의 '소원'을 기점으로 뭔가 변화를 주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나의 독재자'에서 설경구는 하나부터 열까지 김일성을 따라하며 연기를 했다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김성근' 역을 연기해 딜레마를 해소하는가 싶지만, 이번에는 흥행이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 이후 개봉했던 '서부전선'과 '루시드 드림'은 보기 좋게 망해버리면서 설경구도 흥행력을 잃어버린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설경구 '리바이벌' : '불한당', 그리고 '살인자의 기억법'

 

흥행성은 예전같지 않다고 하나, '나의 독재자'를 전환점 삼았던 설경구가 2017년에 단 두 편의 영화를 통해 부활을 선언했다. 더 이상 예전의 설경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7년 5월에 임시완과 함께 출연한 느와르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설경구의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예전과 달리 힘을 빼면서 동시에 정면이 아닌 옆면을 많이 비춤으로서 은은하게 퍼지는 듯한 연기로 관객을 끌어들였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이 영화 덕분에 설경구에 빠져든 팬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영하 작가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도 설경구는 가장 돋보이는 존재였다. 전작에서는 얼굴의 옆면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얼굴의 세부 근육들을 이용하는 등의 묘사를 잘 살리면서 전문가들과 관객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다. 현재 각종 영화제 후보에 올려야한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 ⓒ 쇼박스

연기생활 25년을 채웠음에도 설경구의 갈망은 끝이 없다. 지난 8월 말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나이를 충분히 먹었음에도 계속 새로운 걸 찾게 된다. 예전에는 배역을 정할 때 단순하게 결정했다면, 이제는 내가 끊임없이 한 것에 비해 안 나올 수도 있는 배역에 계속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한 바 있다. 이어 "새로운 것을 계속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2018년 상반기에는 오달수, 천우희와 함께 출연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가 개봉준비를 하고 있고, 이번 추석 연휴 이후 이수진 감독과 새 작품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도 설경구의 새로운 연기를 보고 싶어 벌써부터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syrano@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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