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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프리다 칼로를 만났다. 그녀는 붉은 뺨에, 야무진 잎술, 빛나는 눈동자를 가졌지만, 마음은 허하고 외롭고 게다가 몸도 성치 않은 가여운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장애가 그녀를 붙잡아 놓치 않았다. 아니, 더 날개를 달아주었다. 발이 필요치 않도록.

예술의 길은 무엇일까? 예술이라는 통로에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신경증일 수도 있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일 수도 있고, 쾌락일 수도 있고, 하늘을 접하는 영감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가장 유용하게 예술에 접근하는 방법은 '괴로움'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요소이다. 프리다 칼로는 이 접근법에 가장 최적화된 예술가적 인물이지 않을까 싶다.

   
 

프리다 칼로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 이는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자신있게 구현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자화상을 보면 시시때때로 변하는 감정과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그녀의 인생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어떨 때는 사랑에 빠진 소녀였다가, 또 아픔을 딛고 일어선 강한 자부심의 전사로, 모든 것에 초탈한 신적 존재로 그림 속에 피와 심장을 가진 생명체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마치 내가 이런 사람이었고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지구상에 끊임없이 지시하는 종탑 위의 시계 같았다. 이게 그녀가 가진 흡입력이자 화가로서의 능력이지 않을까. 단순히 디에고 리베라라는 바람둥이 남편에 가려지기엔 너무 빛나는 예술가다.

   
 

그녀가 진정한 예술가라는 면모는, 그녀가 예술적으로 영향을 준 파급효과를 보아도 알 수 있다. 패션, 사진, 퍼포먼스 등 '프리다'라는 이름은 마치 유명한 메이커처럼 지금까지도 많은 예술과 사회 저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정체성과 영감을 줄 수 있는 끼가 없다면, 이렇게 재생산하는 힘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 예술이란 오묘한 신비의 깊은 우물과도 같아서, 접하면 접할수록 깊은 청정의 맛이 어우러지기 마련이다. 최근 소비되고 휘발되는 대중적 대상의 상업 장사와 다른 점이다. 그 정도가 고흐나 다빈치에 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예술가라고 불릴 수 있는 면모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사실 예술적 능력이 충분한 선택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를 헤쳐나가야 한다. 가난, 장애, 능력을 표현하기 위한 기술의 습득과 시간비용을 극복해야만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할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최종적으로 예술가는 자신을 또렷이 보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프리다 칼로는 많은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했지만, 특별하다. 그녀는 예술 세계에서 타고난 것에 끝나지 않고 이를 현실에서 내보일 수 있는 용기를 붓을 사용해 그림으로 펼쳐냈다. 피카소가 프리다의 자화상을 보고 "우리는 결코 그녀처럼 그릴 수 없다"고 단언한 것처럼, 그녀의 눈동자 하나 진실 아닌 것이 서린 것이 없다. 또렷하게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증명하고 있다. 종이에 그녀는 자신을 완벽히 이해해 줄 친구를 만나 외로움을 달랬을지도.

   
 

이번 겔만 컬렉션을 통해 전시에 온 100여 점 중 프리다의 그림 작품은 23점, 그리고 주요 대표작들을 만나는 데에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사를 한 번 둘러보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나의 평생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한계를 딛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거침없이 도전하는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마지막 일기장에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이라고 써놓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던 것처럼, 아쉬움 없이 온 정렬을 삶에 쏟은 용감한 사람이었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아빈(婀贇) kim.abin.beautiful@mhns.co.kr 시인 겸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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