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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똑같이 시작하네. 달빛 아래 새로울 것 없네."

뮤지컬은 아름다운 별빛과 함께 가슴을 울리는 노래로 시작된다. 모든 이야기는 똑같이 시작한다는 그들의 노래.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여서 그럴까. 뮤지컬의 도입은 전혀 생뚱맞다거나 억지로 새로움을 부여하려고 하는 것 없이, 담백하게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있었다.

 

   
 


붉은 캐플렛 가(家)와 푸른 몬테큐 가. 극명한 색조 대비처럼 그들의 갈등과 대립은 굉장했다.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지만 뮤지컬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디테일한 묘사들을 놓치지 않고 풀어내는 것이 관객들에게는 진부함보다는 감격을 안겨다주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티볼트와 머큐쇼, 줄리엣의 유모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더욱 그랬다. 관객들 머릿속에는 이 이야기가 단순하게도 로미오와 줄리엣, 이 둘에게만 집중하던 식의 서사 구조로 각인되어 있었을 테다. 그러나 그들을 둘러싼 가문과 가문 간의 극렬한 대립, 그 가문들에 속한 주변 인물들의 심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뮤지컬을 통해 '로미오와 줄리엣'은 되살아났다.

 

   
 


연극과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되살아났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번에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통해 되살아났다. 이 위대한 이야기가 뮤지컬로 다시 생명력을 갖게 되면서, 몇 가지 기존의 텍스트와는 다른 점을 묘사하게 됐다. 그것은 바로 로미오를 계속 따라다니는 '죽음'이라는 존재다. 하얀 천을 흩날리며 다니는 여자 무용수는 로미오를 끈질기게 좇아다니며 로미오 스스로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진지한 고찰을 돌아볼 기회를 던져준다.

 

   
 


'죽음'이라는 존재는 로미오의 죽음을 암시하기 위한 매력적인 장치가 될 수 있지만, 이것은 관객들을 위한, 관객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죽음. 그들의 죽음은 관객들에게 있어 필연적인 것이었고, 그들의 죽음이 서사의 고조이자, 상징적 부분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왜곡시키게 되면 이 서사의 정통성이 훼손되고 만다. 하지만 필연적이고 상징적인 부분이라 해서 관객들이 지루함이나 진부함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원작자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의 원작자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은 이 진부하지만 상징적인 부분을 아주 영리하게 풀어낸 것이다. 관객들은 로미오를 따라 다니는 죽음의 여신으로부터 계속 불안과 비극의 순간을 경험했고, 그 죽음이 실현되는 순간, 이미 익숙한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감정은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수많은 로맨스들, 다양하고 이색적인 이야기가 판치는 시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서사는 이미 지루해질 대로 지루하게 여겨져 왔다. 그러나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은 우리에게 단순화, 상징화가 이루어져 이미 죽어버렸던 이야기를 되살려냈다. 감히 말하지만, 그 감격은 마치 셰익스피어 시대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처음 접한 독자들만큼의 감격이 아니었을까.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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