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황홀한 음악이 끝나자 폭죽이 터져 나왔다. 자연스럽게 돗자리 위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 청중들도 기립 박수를 쳤다. 이 정도면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꿈 같은 밤이었다. 지난 7일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이하 '슬라슬라 2017')이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영화 음악의 레전드'인 한스 짐머와 영화 '위플래쉬'와 '라라랜드'를 통해 떠오르는 음악감독인 저스틴 허위츠가 직접 내한했다.
이전에도 한스 짐머의 OST나 '라라랜드'의 OST가 국내 공연된 바 있으나, 모두 다른 이들이 연주하거나 지휘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긴 바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동시에 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드림 캐스팅'이었다. 여기에 편안하게 돗자리를 깐 후, 눕거나 앉으며, 맥주를 마시고 도시락을 먹으면서 듣는 음악은 황홀 그 자체였다. 이번 공연에서 인상 깊었던 포인트를 4가지를 통해 살펴본다.
1. 영화 OST 녹음 현장을 방문한 것처럼?
영화 OST의 녹음은 보통 촬영된 영상 위에 연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슬라슬라 2017'도 역시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다. 무대 위와 좌우 큰 화면을 통해서 영화 '라라랜드'가 상영됐고, 영화의 주요 장면 속에 나오는 음악을 재즈밴드가 라이브로 연주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일종의 '목소리 더빙'과 같은 방법인데, 꽤 참신했다. 싱크로율을 맞추기 위해 특수 메트로놈이 연주자 옆에 모니터 설치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좀 더 영화를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었고, OST 녹음 현장을 견학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배우들의 대사로 묻힌 음악을 좀 더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라라랜드' 콘서트는 1막, 인터미션, 2막으로 구성됐다. 영화에서는 그리피스 천문대 위에 '미아'(엠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키스를 하는 장면까지가 1막인데, 이렇게 나누고 보니 정확히 뮤지컬의 1막과 2막의 위용을 갖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저스틴 허위츠 음악감독은 공연 전에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영화 '위플래쉬'가 미국에서는 인디영화인데,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데이미언 셔젤 감독과 함께 한국에 방문하고 싶었다"라고 밝혔고, 공연이 끝난 후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라는 말을 남기며 무대를 떠났다.
2. 영화 음악은 어떻게 무대 음악이 됐나?
이날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콘서트를 앞두고 '영화와 음악의 짜릿한 만남'이라는 주제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시네마 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마을 광장에 스크린으로 영화를 틀어주는 장면에서, 스피커를 통해 소리를 전달해주자 사람들이 환호했다"라면서 사운드가 영화 속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설명했다.
영화 음악은 영화 속에서 '공기'가 된다. 영화를 이끌어주는 중심축 중 하나가 음악이지만, 무대로 옮겨지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영화의 상황을 인지하고 음악을 듣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그저 흘러가는 'BGM'이 되고 만다. 그래서 한스 짐머는 영화 음악을 그저 연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편곡을 통해 영화 음악을 무대화했다. 전자 첼리스트인 티나 구오의 선율 아래에 등장하는 '원더 우먼'과 '캐리비안의 해적' 테마, 빨간 선으로만 화면을 채운 '씬 레드 라인'의 OST 편곡 등이 그러했다.
3. '한스 짐머'로 본 리더의 품격
한스 짐머는 리더의 품격을 보여줬다. 한스 짐머는 어떤 연주가 끝날 때마다 자신과 함께 한 밴드 멤버를 소개해주며, 청중의 박수를 유도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맞는 OST를 '세트 리스트'에 포함시키며 '멋짐'을 뽐낼 시간을 마련했다. 리더십은 이런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온 킹'에서 'Circle of Life'를 불렀던 레보 엠이 자신의 딸과 함께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추억에 빠진 팬들에게 눈시울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한스 짐머 역시 박수로 화답했다. 국내 합창단에게도 '크림슨 타이드'와 '천사와 악마' 파트를 전달하며, 그들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멋졌던 장면은 미국 트럼프 정부를 디스(?)하는 장면이었다. 한스 짐머는 2막이 시작되기 전, 자신의 멕시코 열성 팬을 무대에 불렀다. 미국 투어 당시 비자 발급이 되지 않아 방문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한국은 충분히 환영해줄 것이라 믿었다"라면서 한스 짐머는 멕시코 팬을 초대하게 됐다. 여기에 그 팬은 현장에서 여자친구에게 프러퍼즈를 날렸다. 박수와 함성 끝에 여자친구는 결혼을 승낙했다. 당시 나온 OST는 영화 '트루 로맨스'의 'You're So Cool'이었다.
4. 이병헌의 깜짝 출연, 이유는?
한스 짐머가 "이제부터 슈퍼 히어로 음악을 들려줄 차례"라고 하면서, '맨 오브 스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다크 나이트'의 OST를 연이어 소개한 후였다. 갑자기 영화 '남한산성' 무대 인사를 마치고 나온 배우 이병헌이 무대 위로 깜짝 등장하며 한스 짐머가 쓴 글을 낭독했다. 내용은 2008년 세상을 떠난 '다크 나이트' 속 '조커' 히스 레저와 2012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 상영 중 미국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희생자를 위로한다는 것이었고, 배경음으론 한스 짐머가 추모곡으로 작곡한 음악이 들려왔다. 한스 짐머는 낭독을 마친 후 "내 친구(My Friend)"라며 이병헌을 칭했고, 박수를 청했다.
바쁜 홍보 일정 속에서 이병헌이 콘서트장을 방문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한스 짐머 음악감독이 직접 이병헌을 따뜻하게 반겨주고 초대한 것도 의미심장했다. 한편, 한스 짐머는 이렇게 게스트를 부르거나, 통역사를 부르거나, 아니면 전문 용어 없이 쉬운 영어를 구사하며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했다. 한스 짐머의 한국 첫 방문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은 관객을 위해 앙코르 공연으로 '인셉션'의 유명한 OST인 'Time'을 피아노 연주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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