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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중학교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3년이나 걸렸어. 그리고 2층까지 내려오는 데는 1년."

스스로를 '청소년극'이라 칭하는 연극이 있다. 청소년들이 만드는 연극도 아니고, 관객들 대부분이 청소년일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확실히 청소년극이다.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 묻겠냐마는, 단언컨대 나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 말하겠다.

 

   
 


우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흔한 개구리들이기도 하지만, 더욱이 청소년 시절의 고민들은 뭐가 그리 아프고 힘들고 고단했는지 더욱이 기억을 쏟아내려 해도 좀처럼 잘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인 서경이가 '복도에서' 하는 말들을 보면서 떠올렸다. 그 시절의 고민들과 알 수 없는 서러움으로 복받치는 감정들을 말이다. '저' 중학교와 '이' 고등학교 사이가 얼마나 된다고, 나는 3년씩이나 걸려서 도착하게 됐고, 더구나 3층과 2층의 사이는 또 뭐라고, 우리는 그 층수 간의 미묘한 경계선들을 절감해야만 했을까.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2층인지 1층인지, 그것은 누가 정한 사실일까에 대한 의심과 울화. 평생 절친할 수 있는 사이라며 확언했던 친구가 한순간 멀어지고, 그 친구가 정말 이 학교를 떠나게 된 이유조차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예감할 수 있게 되는, 그 아련하지만 나를 콕콕 찌르는 느낌들. 청소년 시절의 느낌과 감정들은 너무나 자그마하고 섬세한 것들이어서 뭉툭해지고 무뎌진 지금의 내가 감히 기억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연극은 자연스러웠다. 2학년 서경이의 이야기가 1학년 시은이의 이야기로 옮겨가면서, 모든 배우들이 마치 스태프인 양 복도를 철거하고 시은이의 어질러진 방을 꾸며간다. 그리고 그 무대의 중심에서 시은이는 객석이 아닌 무대를 바라보며, 헤드폰을 끼고 우리 '오빠'들의 노래를 듣고 있다. 두 개의 작품이 하나의 시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서경이가 복도에서 상담을 기다리는 동안, 귀엽게 지나가던 시은이. 시은이는 그렇게 서경이와 한 시공간을 공유하는 인물이었다. 이 자연스러운 시점의 '넘김'은 개개의 인생들이 모여 한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현실적이고도 사실적인 시공성을, 아주 세련되고 멋지게 표현해내는 이 극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차라리 나를 잃어버리지. 내가 고아였으면 좋겠다."

시은이는 '패드립(패륜 애드리브)'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나는 그 '아무렇지 않음'에 놀라고, 그 아무렇지 않음이 당연했던 내 사춘기 시절이 떠올라 더 당황스럽다. 말을 순화하지 못하던 그 시절, 나의 격렬했던 어휘들을 뒤돌아보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시은이는 그런 우리들의 청소년 시절 모습과 다르지 않다.

 

   
 


시은이는 잃어버린 오빠의 소식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부모님 모습이 지겨운 아이다. 오빠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키워진 시은이는 혼자 마음을 닫고 틱 장애를 앓는다. 그리고 팬픽이라는 가상현실 속에서 아이돌을 응원하고 사랑하며, 승옥이라는 메신저 친구와만 관계를 이뤄간다. 그러나 곧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잃어버린 오빠 시훈을 찾게 된다. 아직도 이것이 시은이의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급작스럽고 과감하게 상황이 급변한다.

오빠라는 존재는 시은에게 실존하지 않았었지만, 늘 그 의미만으로도 버거운 존재였다. 그런 오빠가 나타나자, 시은이는 당연히 오빠 때문에 겪었던 불행을 떠올리며 불행의 원인을 제공했던 존재에게 노골적인 증오심을 드러낼 수밖에. 부모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외면 받던 시은이는 가상세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당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틱 장애'를 앓음에도 당당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오빠 시훈의 모습을 보며 시은이는 점차 가상세계를 빠져나와 현실세계로 발을 내딛고자 한다.

 

   
 


시은이를 떠올리며 '부족'하다는 것에 대해 끔찍하리만큼 싫어했던 지난날의 고단함이 떠올랐다. 완벽함과 완전함에 대한 추구가 당연했고, 지금 나의 미완(未完)적인 모습들은 훗날의 완벽함을 위한 과도기일 뿐이라고 단정 지었던 지난날들. 시은이가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가상세계로 도망친 이유는, 완전하지 못한 내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현실의 압박 속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서경이와 시은이는 곧 내 과거의 표상(表象)이었다. 그리고 그 과거의 표상은, 현재 청소년들의 표징(表徵)이기도 하다. 연극은 그런 표상들을 실제적이고도 유쾌하게, 그러나 가슴 저릿하게 목격하게 했다. 흥미롭고 재밌게 관람했지만, 관람하고 난 이후부터는, 행복하지 못했던 내 과거에게 미안해졌고, 행복하지 못하는 현재의 청소년들에게 미안해졌다. 삼포세대에게 미안하다고 외치는 기성세대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미안함은 청년들에게만 외칠 구호가 아니었다. 으레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청소년들의 불행한 시절에게도 향해야 할 메시지였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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