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dong Kim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테너 박지민이 '클래식 제너레이션'으로 한국 관객을 만나는 소감을 전했다.

세종문화회관(사장 이승엽)이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과 함께 연중 시리즈로 선보이는 '클래식 제너레이션(Classic Generation)'의 3번째 무대를 오는 13일에 펼친다.

베이시스트 '성민제',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에 이은 3번째 주인공은 런던, 이탈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에서 모든 테너들이 꿈꾸는 배역 '라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사랑의 묘약'의 '네모리네', '라보엠'의 '로돌포' 등을 꿰차며 사랑받아온 오페라 가수 테너 박지민이다.

테너 박지민은 뮤지컬 '헤드윅'과 '스프링 어웨이크닝' 등을 연출한 김민정과 함께 오페라 아리아부터 슈트라우스 가곡, 한국 가곡의 아름다움을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총 5개의 장면으로 나눠 2017년의 가을부터 2018년 가을까지의 다섯 계절을 노래한다. 테너 박지민의 오페라 가수다운 면모를 자랑할 수 있는 무대로 매력있는 미성과 희극적인 연기력 모두를 기대해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피아니스트로 주목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재원과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이 가세해 더욱 멋진 무대를 선보인다.

다음은 서면을 통해 이뤄진 일문일답이다.

한국의 관객들에게 자신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ㄴ 한국에서 소리를 배우고, 비엔나에서 음악을 배우고, 런던에서 가수가 되는 법을 수련한지 10여년이 지난 요즘에야 겸손하게 내 소리를 내고, 연기를 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노래쟁이입니다. 무대를 사랑하고 무대에서 부르는 모든 노래를 사랑하고 그런 저를 사랑해주시는 관객에게 항상 보답하고 싶은 테너 박지민입니다.

유수의 해외 콩쿠르에서 수상도 많이 하셨지만, 높은 경쟁률을 뚫고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의 제트 파커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하셨고 ROH와 전속 계약을 통해 활동하셨다는 이력이 제일 눈에 띄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ㄴ 제트 파커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계획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프로그램으로 성악가가 갖춰야할 모든 요소들을 최고치로 끌어올려주는 교육입니다. 언어, 발성, 음악코치, 자세, 체력, 마인드컨트롤, 무대경험, 클래식 비즈니스 분야에서 최고의 코치진으로 구성해 2년 동안 교육시켜주지요. 당시 약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되었는데 매년 경쟁률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기회의 시간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성악가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대신 결과 대해서는 매우 혹독하고 냉정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을 2년 거치면 마지막 해에 극장 내 각 부서장들이 모여 "이 가수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에 대해 논의하는데 감사하게도 저는 수석연주자로 1년 더 극장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때 '라보엠', '쟌니스키키'에서 주역을 맡게 되었는데 영아티스트 프로그램 후 주역으로 무대를 서는 전례에 없었기에 당시 큰 이슈가 되었지요.

런던에서 오페라 주역으로 발탁되셨을 때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ㄴ 2009/10 시즌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라보엠' 주역이 갑작스레 '펑크'가 난거에요. 급히 주역을 정해야했고, 제가 좋아하는 오페라이긴 했지만 당시 주역으로 무대에 선 경험이 없는 저를 캐스팅하자니 극장 측에서는 고민스러웠나봅니다. 그래서 5번의 랜덤 오디션을 치르게 되었죠. 사전에 아무런 공지 없이 다양한 시간 때에 무작위로 저를 불러서 지휘자, 극장 관계자 등 앞에서 '로돌포' 아리아를 부르게 했습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 사이에 말이죠.
하루는 극장에 출근했더니 바로 지휘자 방으로 호출하더군요. 그 날이 5번째 오디션이였어요. 갑자기 아침 9시에 지휘자 앞에서 노래를 하라니. 목도 안 푼 상태였지만 지휘자 반주에 맞추어 아리아를 불렀어요. 꼭 조수미 선생님이 카라얀 앞에서 '밤의 여왕의 아리아'을 불렀던 그 상황처럼 말이죠. 그때 노래를 듣고 지휘자가 "ok" 하시더니 바로 매니저와 통화 후 계약하게 되었죠. 언제나 프로로서 완벽히 노래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된 자세로 있었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훌륭하게 활동하고 계시지만 학창시절에는 낮은 실기 점수를 받은 적 있고 SM연습생으로 지낸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악에 집중하기 까지 방황했던 이야기들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ㄴ 평범한 걸 싫어하는 성악과 학생이었습니다. 남들이 다 한다고 나도 따라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의심과 거부감이 가득했던 대학 시절이였죠. 제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도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선에서는 다 하고 싶다는 의욕과 호기심이 넘쳤고, 마치 인생에서 또 한 번의 사춘기를 겪는 것 같았던 때였습니다.
당연히 실기점수는 바닥이었고, 학교 보단 다른 세상에 더 관심이 많았죠. 당시 음반 레코딩, SM 연습생, 방송, 라디오, 텔레비전 CF 음악 녹음처럼 여러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비로소 나를 찾아가는 연습을 한 것 같아요. 비록 지금도 찾아가고는 있지만 내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가, 내 소리에 귀 기울여보고, 진심을 다해 두드려 보던 학창 시절이었습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끼신 중요한 기회가 있다면?

ㄴ 제 인생에 강병운 선생님이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성악가로 사느냐, 서울대 성악과 졸업한 그냥 한남자로 사느냐. 두 가지 길에서 성악가로 살 수 있게 기회를 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아껴주신 스승님이세요. 물론 선생님께서 받아주셨기에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으니 기회를 주신거지요. 하지만 그 후에 모든 제 성공은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 대가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좌절감을 느끼실 때, 용기가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ㄴ 제 인생에 실패란 단어는 없습니다. 실패가 뭔지 몰라요. 아니, 모른 척 합니다. 매 순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과정에 100% 충실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죠. 살아있기에 숨 쉬고 아프기에 치료하고 그리고 이내 또 달리죠. 어떤 일이든 결과에 먹잇감이 되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잘 안될 땐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살펴보고 물 한잔에 버들 잎 띄워 후후 불어가는 마음으로 차도 한 모금하고 또 어떨 때는 뜨거운 순간에 온 몸을 다 내던지고는 끝난 후엔 시원한 콜라 한잔 하는 거죠.

무대에 오를 때 다짐하는 마음이 있다면?

ㄴ 무대에 서 있을 때, 공연을 준비할 때,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게 아니라 관객을 먼저 생각합니다. 관객으로 온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버리는 작업을 먼저 하는 거죠. 서로가 공감하는 우리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지요.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는 마음은 소통에서 나오고 그런 아름다운 과정에서 또 다른 사랑이 싹튼다고 생각해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돌고 도는 거죠.
이번 공연도 저를 위한 공연이 아니라 철저하게 관객을 위한 공연이 되어 소통하는 아름다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함께 근사한 사랑의 뫼비우스띠에 올라타길 바라는 맘입니다.

박지민씨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영화로 만들게 된다면 인생의 가장 큰 위기는 어떤 순간이었고 가장 큰 대립관계(긴장감을 고조시키는)에 있는 인물은 누구로 묘사할 수 있을까요? 또 영화의 주제가로 사용할 만한 음악이 있다면 어떤 곡입니까?

ㄴ 무수히 많은 갈등의 순간들이 있어요. 지휘자, 디렉터, 스테이지 매니저 등 음악을 만들어가면서 부딪히는 갈등들, 또는 부모님,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내 길을 걷는 이기적인 마음에 생기는 이해충돌.
그중에 가장 힘든 순간은 내 자신과 싸울 때 인 것 같아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지만 그렇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거나 스스로 합리화할 때 힘들거든요.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을 보며 또 하루를 견디고 싸우고 살아갔어야했던 그때. 그 경쟁시대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나를 회상하노라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이 '박지민'이라는 영화의 주제음악으로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동안 맡았던 오페라 배역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배역이 있나요? 그 인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ㄴ 오페라 '라보엠'에 나오는 남자주인공 '로돌포(Rodolfo)'는 제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과 같은 역이고, 또 지금 저를 성악가로써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들어준 오페라에요. 지금도 몇 백번 불러본 오페라지만 매번 할 때 마다 떨리고 또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유럽의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동양인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은 없었나요?

ㄴ 요즘은 사실 많이 못 느낍니다. 지금까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캐스팅이 안 되거나, 아니면 동양인이기에 공연에 불이익을 주는 경우는 겪은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준비되어 있지 않고, 스스로가 부족하기에 가수로써 받는 질책들을 이겨냈을 뿐이지요.
그렇지만 유학시절 기차 안에서 그 나라 학생이 제게 동양인이랑 같은 곳에 있기 싫다며 제게 침을 뱉거나, 손가락질을 받은 적은 있어요. 그땐 서럽고 힘들었지만 벌써 오래전 일입니다.

박지민씨와 같이 최고의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음악 전공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요.

ㄴ 매 번 만나는 친구들에게 조언하는 말이지만 저는 "기다려라"고 충고합니다. 공부하고 연습하고 준비하면서 진득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힘들게 쌓이는 탑이 조급한 맘에 금방 허물어 질 수 있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행복해하거나 조급해하지 말고 내 악기에 더 귀 기울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조언에 감사할 줄 아는 성악가가 되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 ⓒSangwook Lee

한국엔 박지민씨와 같이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많이 있어요. 주요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등의 주목할 만한 성적으로 그들에게 큰 관심을 갖게 된 관객들도 많아지고 있고요. '대한민국은 지금 클래식 제너레이션이'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ㄴ '대한민국은 지금 클래식 제너레이션' 이라는 이번 공연의 기획 배경에 저도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 대표 아티스트들이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저도 그들과 함께 하고 있음에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물론 콩쿨 입상이 시작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 콩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그 수많은 콩쿨과 경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연주하는 연주가는 참 드물지요. 콩쿨이 등용문은 될 수 있지만 영원하진 않다는 거에요. 콩쿨로 인한 관심과 사랑 중요하지만, 그들을 지원하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시대로 가고 있지 않나 합니다.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지금, 바로 관심과 지속적인 사랑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번에 클래식 제너레이션에서 뮤지컬 연출가와 협업하게 되었습니다. 박지민씨 스스로 어떤 부분이 제일 기대되시나요? 또한 관객 분들은 이 공연에서 무엇을 기대하면 좋을까요?

ㄴ 연출가님과 작년 겨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사랑의 묘약'이라는 오페라를 함께 했었어요. 무엇보다도 가수성향에 맞는 유연한 무대연출, 뻔하지 않는 스토리 전개, 관객에게 무리한 이해를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폭 넒은 시야, 이런 것들로 이미 정평이 나있는 분이시죠.
이번 공연에서 가장 기대되는 건 기존의 일반 리사이틀과 다른 스토리 구성이에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시간 공연에서 모두 여행할 수 있는 타임머신을 타게 되 실 겁니다.

예전 인터뷰를 보니, 2009년 당시에는 10년 만 더 노래한 뒤에 노래를 관두고, 자선단체를 설립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꿈이 아직도 유효한지, 현재 박지민씨의 꿈과 계획이 궁금합니다.

ㄴ 백건우 선생님의 의연한 행보에 많은걸 깨닫고 스스로 반성하게 된 일이 있었어요. 세월호 사건 이후 여러 의미 있는 곳에서 이런 대가가 아무 대가 없이 아픔을 달래주는 명연주를 하는 모습에 저의 10년만 노래한 뒤 남을 위해 살겠다는 생각이 너무 비현실적인 말처럼 느껴졌어요. 중요한 건 10년 뒤냐 20년 뒤냐가 아닌데 왜 꼭 그런 룰을 정했을까 하는 생각에 더 부끄러웠어요. 물론 제가 그렸던 미래의 그림은 앞으로 꼭 펼쳐나가겠지만 그 그림이 조금 더 구체화된 사건이었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그게 지금 이 순간이여도, 또 다가올 미래여도 남을 위해 살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써주세요.

ㄴ 처음으로 '박지민'이라는 이름을 걸고 내놓은 공연입니다. 노래를 처음 시작했을 땐 혼자였지만 지금은 그 노래를 들어주기 위해 시간내주시고 찾아와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노래 끝날 때까지 기분 좋은 미소 머금고 가시도록 할게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지요. 깊어가는 가을날 제 노래에 스쳐 잊지 못할 기억과 인연이 되길 고대합니다.

한편, '클래식 제너레이션' 테너 박지민 편은 13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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