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부부 황혜민(39)과 엄재용(38)이 오는 11월 고별무대로 '오네긴'을 공연한 뒤 은퇴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완전한 은퇴는 아니다. 황혜민은 무용수로서 은퇴를 선언했지만, 엄재용은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로서 은퇴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12일 오전 정동에서 열린 두 사람의 은퇴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니버설발레단(단장 문훈숙, 예술감독 유병헌) 측에 의하면 발레계의 스타부부 황혜민-엄재용의 고별무대는 11월 24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오네긴'이라고 밝혔다. 드라마 발레의 거장 존 크랑코(John Cranko, 1927-1973)의 안무적 천재성이 돋보이는 '오네긴'은 두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황혜민-엄재용 커플은 대한민국 발레계의 간판스타다. 2000년 입단한 엄재용과 2002년 입단한 황혜민은 주역 파트너로서 멋진 호흡을 자랑했다. 학창시절 첫 사랑에서 프로 무대에서 재회한 이들은 동료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부부로 이어지며 2012년 8월 '한국 최초의 현역 수석무용수 부부'가 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처음 호흡을 맞춘 작품은 프랑스 파리 상젤리제 극장에서 열린 '2002 파리 21세기 에뚜왈 갈라' 프로그램이었다. 전막 공연은 2004년 인도 왕궁을 배경으로 무희 니키아와 전사 솔로르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다룬 '라 바야데르'였다. 이후 두 사람은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잠자는 숲속의 미녀', '지젤', '호두까기인형', '로미오와 줄리엣', '심청' 등 발레단이 보유한 모든 레퍼토리에서 주역 파트너로 활약했다.

더불어 '우크라이나 월드 발레스타 갈라(2005)', '타이페이 인터내셔널 발레스타 갈라(2012)', '루돌프 누레예프 발레 페스티벌(2013)' 등 세계의 수많은 갈라 페스티벌에 초청받기도 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전막 공연은 910여 회가 넘고 국내외 갈라 공연을 포함하면 1천 회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열린 기자회견은 두 사람의 공연 하이라이트를 담은 영상 감상으로 시작했다. 영상 감상 후 모습을 드러낸 문훈숙 단장과 황혜민-엄재용 부부는 간단한 포토타임 후 짤막한 인사를 남겼다.

▲ 좌측부터 문훈숙 단장, 황혜민, 엄재용 무용수.

황혜민 무용수는 "사실 무용수가 40대 전후로 은퇴하는 편이다. (제)나이도 그 정도 됐고 이 자리에 있을 때 아래 있는 후배들을 위해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관객들이 보기에 '저 사람 그만둬야 하지 않나' 싶을 때 내려온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고 은퇴 심경을 밝혔다.

엄재용 무용수는 "저는 약간 다르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발레단 활동만 그만두는 거다. 그러나 혜민 씨 말씀대로 혜민 씨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발레단 활동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직 소규모 공연 등은 활동할 계획이다."라며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전했다.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은 "발레는 성인이 돼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6, 7살부터 시작하는 춤이다. 그래서 단순히 직업이라기보다 삶 그 자체고 자신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무용수들이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언젠가 다가오는 것이 은퇴다. 은퇴는 삶 전체가 바뀌는 힘든 시기지만,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도 하다. 무용수의 삶은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삶이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고 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두 번 죽는다'고 표현하기보다 '두 번 산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번 '오네긴' 공연을 통해서 오랜 세월 한결같은 사랑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을 지켜준 두 예술가가 마지막 인사를 한다. 제가 은퇴했을 때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저뿐만 아니라 단원들, 직원들, 팬들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두 예술가의 열정과 삶을 빛내주고 싶다."며 두 사람의 은퇴를 진심으로 축복했다.

다음은 세 사람의 일문일답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세 작품이 있다면?

ㄴ 황혜민: 저희 둘만 공연을 1천 회 정도 같이 한 것 같다. 많은 공연이 생각나는데 앞서 언급된 파리 공연이 많이 생각난다. 사실 그동안 잊고 있다가 최근 많은 질문을 받아 생각이 났다. 저는 입단 초기라 너무 서투르게 춤을 췄는데 운 좋게 엄재용 씨와 함께하게 됐다. 저는 실수도 많았던 것 같고 세계적인 거장들과 한 무대에 섰던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던 공연이다.
다음은 '지젤'이다. 단장님과 한 달 정도 리허설을 같이 했는데 연습기간이 더 기억이 남는다. 단장님이 1막의 드라마를 일일이 가르쳐주셨고 남자랑 눈 마주치는 방법도 알려주셨다(웃음). 파트너를 남자로 보지말고 그 사람의 눈동자 색깔을 보라고 하셨다. 외국인들은 눈동자 색이 다 다르다고 하셔서 눈이 마주치면 그 색깔을 확인하게 됐던 기억이 난다. '지젤'을 할 때마다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이야기라 평생 기억날 것 같다.
마지막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인 '오네긴'을 처음 올렸을 때다. 5주 정도 세팅을 하는 과정이 너무 행복했다. 이런 음악, 이런 드라마가 어떻게 있을까 했다. 마지막에 오열하며 끝나는 부분에 제가 소름 돋으며 공연 했던 기억이 난다.

ㄴ 엄재용: 모든 무용수가 데뷔 무대를 손에 꼽을 거다. 처음 전막을 한 게 '백조의 호수'였다. 지방 공연을 갔는데 리허설을 하다 다른 분이 부상을 당해서 이틀 모두 제가 하게 됐다. 또 그날이 제 생일이어서 데뷔가 생일 선물이 된 것 같아서 기억에 남는다.
같은 해 미국에서 '심청'을 하면서 문 단장님의 마지막 심청과 함께 '심청' 데뷔를 하게 됐다. 정말 하늘같은 선배와 함께한 셈인데 무척 편하게 해주셨다. 아쉬운 건 '심청'은 막마다 주연이 달라서 같이 전막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단장님과 '백조의 호수'든 '지젤'이든 전막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마지막 기억에 남는 건 '지젤'이다. 늘 인터뷰마다 말했는데 저는 중2 때 우연히 '지젤'을 접하며 발레를 시작하게 됐다. 발레를 시작하게 한 작품의 주역으로 공연한다는 게 정말 남달랐던 것 같다.

문훈숙 단장이 보는 두 사람이 어울리는 작품은?

ㄴ 문훈숙 단장: 황혜민은 굉장히 서정적인 무용수로 관객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울리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춤추는 무용수인 것 같다. '심청', '춘향' 같은 우리 창작 작품도 있고 몇 년 전에 '오네긴'을 봤을 때도 혜민 씨에게 '너의 시그니쳐 발레가 아닐까' 했다. 혜민 씨를 위해서 만든 작품이 아니지만, 혜민 씨를 위한 작품처럼 '오네긴'에서의 연기가 무척 어울렸다. 그녀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엄재용 씨는 무대에 서면 존재감이 있다. 어떤 역할을 해도 존재감이 있고 또 영원한 왕자가 아닌가 싶다(웃음). 귀티가 물씬 풍겨나온다. 무용수는 나이가 주는 관록, 무대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채워지는 힘이 있는데 재용 씨는 그게 어릴 때부터 있었다. 제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하나 꼽는다면 엄재용씨가 말한 '지젤'에서도 2막. 발레리나 들에게는 '흑조'나 '돈키호테'의 32바퀴 회전이 어렵기로 유명한 장면인데 '지젤' 2막에서는 32번 점프가 있다. 대부분은 스무번이 넘어가면 힘든 티가 나는데 2014년 '지젤' 공연 때도 나이가 있는데도 동료 무용수나 제가 감탄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ㄴ 황혜민: 제가 2010년쯤 엄재용 씨가 무릎 수술해서 '콘스탄틴'이란 무용수와 연습을 하는데 서로 좀 미숙했다. '돈키호테가' 주로 남자가 뒤에서 받쳐주고 여자가 도는 동작이 많은데 제 팔꿈치로 그의 코를 떄린 적이 있다. 정말 코뼈가 부러져서 1주일 정도 연습을 못했다. 제가 늘 팔꿈치를 많이 쓰는 편인데 제 잘못이었던 것 같다. 이후로도 저와 춤을 출 때 거리를 좀 두고 추더라.

ㄴ 엄재용: 저는 다른 캐스트 부상으로 생긴 에피소드가 많은 것 같다. 2004, 5년 쯤 주역 무용수들이 해외진출을 많이 할 때였는데 공연 전날 리허설 때 다른 한 분이 부상을 당하셔서 3주 동안 주말 공연이 있었는데 제가 세 명의 파트너와 혼자서 공연 소화를 하게 됐다. 첫 번째 투어를 정신없이 한 뒤 출근하며 게시판을 봤는데 혜민-재용, 민정-재용, 예나-재용 이렇게 써있어서 게시판 앞에선 눈을 감고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웃음).

(*편집자 주: 파트너가 여럿인 게 무슨 문제인가 싶지만, 실제로는 발레에서 파트너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파트너가 여럿일 경우 각 무용수마다 춤이 다른 면이 있어서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엄재용에겐 발레 생활 내내 고비가 있었는데.

ㄴ 엄재용: 역시 부상이다. 저는 발목 수술 한 번 무릎 수술 두 번을 했다. 20대 초반, 중반, 30대 중반. 20대 초중반 때는 나이가 어리니까 회복 속도도 빨라서 금방 돌아왔는데 30대 접어들며 부상을 당하니까 재활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그만둘 때가 됐나. 더하고 싶은데. 여러 생각과 마음 고생이 많았다. 그런 고비에서 돌아올 수 있던 건 관객 덕분이다. 관객들이 좋은 무대를 보고 보내는 박수와 환호성으로 얻는 희열 때문에 돌아올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무용수 만큼 자기 통제를 해야하는 직업도 없다.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은 게 있다면?

ㄴ 황혜민: 저는 몇 달 전부터 계획했다. 30년 동안 지금 머리 길이를 유지했다. 26일 공연 끝나자마자 머리 짧게 자르고 탈색하고 싶다(웃음). 또 친구들은 다 아이가 있고 가정이 있는 친구가 많은데 유치원 보내고 점심 약속하자고 한다. 월요일 정도밖에 점심 약속을 못 가져서 이젠 한가롭게 브런치 약속을 잡고 싶다.

ㄴ 엄재용: 요즘 '먹방'이 대세다. 저는 맛집을 좋아해서 혼자 배낭여행도 다니고 싶은데 제주도부터 쭉 올라오며 여러 고장의 맛집을 혼자서 탐방하고 싶다.

ㄴ 문훈숙 단장: 저도 머리가 소품이라 은퇴하자마자 머리를 잘랐다. 무용수들에겐 머리 자르는 일이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다. 전 가장 먼저한 건 머리를 자르고 함께 발수술을 했다. 발수술 하고 깁스하고 콩쿨 심사위원을 갔던 기억이 난다(웃음). 또 평일 낮에 집에 있을 때 너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발레란?

ㄴ 황혜민: 인생이다.

ㄴ 엄재용: 숨이다.

엄재용이란?

ㄴ 황혜민: 온니원(Only One).

황혜민이란?

ㄴ 엄재용: 파트너.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덧붙이겠다. 제겐 파트너란 말이 무척 중요하다. 발레할 때도 중요하다. 파트너쉽에서 필요한 게 존중, 배려, 신뢰다. 사람 관계도 부부 관계도 파트너 관계도 이 세 가지가 중요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파트너란 단어를 썼다.

유니버설발레단이란?

ㄴ 엄재용: 집이다.

문훈숙 단장이란?

ㄴ 황혜민: 스승. 선배. 동료. 부모님.

어머니란?

ㄴ 황혜민: 어머니를 계속 한 단어로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표현이 안 된다. 저를 있게 해주신 분. 얼굴을 보지 않아도 마음이 편하고 늘 곁에 계신 분이다.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ㄴ 엄재용: 저도 이게 단어가 떠오르지 않더라. 선생님 같은, 어머니 같은. 저희 어머니도 발레를 하셨는데 제게 많은 질문을 주신다. 어머니께 전혀 따로 배우지 않았고 제가 선생님들께 배운 걸 스스로 해내시길 바라셨다. 가끔 한마디 하시는 정도였다. 든든한 지원자였다.

가장 기억이 남는 팬이 있다면?

ㄴ 황혜민: 대전에 사는 어머님이 한 분 계신다. 늘 공연 와주시고 매번 SNS에 댓글 달아주시는 분이다. 매번 제 공연에 시간 맞춰 대전에서 기차타고 올라오시는데 어느 날은 '심청 잘 봤다. 그런데 너무 차가 막혀서 1막을 못봤다.'는 이야기가 와서 다음 공연 때 초대해드렸던 분이 계신다. 얼마 전에도 대전 공연을 갔는데 유명한 튀김소보루를 발레단원 전체에게 선물 주시고, 뮤지컬 '팬텀' 대전 공연 때도 스태프들에게 간식을 보내주셨다.

ㄴ 엄재용: 한번은 퇴근하는 길인데 운전하며 라디오로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를 들었다. 한 어머니가 보내신 사연이 아들이 '호두까기인형'을 너무 좋아해서 조금씩 돈을 모아 표를 샀는데 15시 공연을 오후 5시 공연으로 착각해서 놓쳤다는 사연을 들었다. 바로 차를 세운 뒤 방송국에 전화해서 이분을 초대하고 싶다고 해서 모셨던 기억이 난다. 어린아이가 너무 좋아하면서 저희한테 호두과자와 색종이에 편지를 써준 기억이 난다.

어떤 무용수로 기억에 남고 싶은가.

ㄴ 황혜민: 저보다는 저희 커플이 공연마다 늘 감동을 줬던 무용수로 남고 싶다.

ㄴ 엄재용: 저는 저를 평생 기억해주는 걸 바라진 않는다. 그냥 어떤 작품을 보다가 황혜민-엄재용 커플이 참 이걸 잘했는데, 이건 엄재용이 했던 역인데. 이렇게 머리에 남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

단장에게 두 무용수는?

ㄴ 문훈숙 단장: 재용 씨는 제 마지막 '용왕'이었다. 파트너로서 같이 춤을 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는다. 첫 주역을 맡은 어린 무용수가 단장이자 선배와 춤춘다는 게 심적으로 부담되겠다고 생각됐다. 한국 남자의 특성상 상대와 눈을 마주치고 교감하는 게 남자들은 특히 어렵다. 그런데 재용씨는 마치 외국 무용수처럼 잘 하더라.
혜민씨는 제가 은퇴 후 들어온 무용수라서 가장 많이 지도한 무용수다. 이제는 발레단 외에 맡은 일이 많아 옛날처럼 연습실을 많이 못 들어가기에 혜민 씨는 제가 마지막으로 키운 무용수. 키우고 싶던 무용수다. 본인의 고집이 있는 무용수는 선생님 앞에선 끄덕하지만 다음날 변화가 없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에겐 뭔가 주고 싶은 마음이 점점 줄어드는데 혜민 씨는 모든 선생님들과 작업해도 단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무용수가 아닌가 싶다.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노력으로 한땀한땀 만들어낸 게 황혜민 씨인 것 같다. 또 긴 시간 동안 춤을 추며 부상이 없긴 쉽지 않은데 혜민 씨는 부상이 없다. 그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 주목할만한 일인 것 같다. 반면 재용씨는 유연하지 않은 몸을 노력으로 극복하며 해온 사람이다. 둘은 유니버설발레단의 정신, 혼을 가장 잘 보여준, 그 자체가 된 무용수다.

 

앞으로 살 제2의 인생을 계획한 게 있는지.

ㄴ 황혜민: 일단 저는 좀 쉬고 싶다. 2세 계획도 해야한다. 나중에는 아마 후배 양성을 하지 않을까 싶다.

ㄴ 엄재용: 저는 일본에서도 활동 중이라서 왔다 갔다 할 것 같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안무를 할 수도 있고, 단원을 트레이닝할 수도 있다. 현재로는 그렇다.

'오네긴'을 고별 무대로 삼고 있다. 국내 최초의 현역 수석무용수 부부. 고별 무대를 준비하는 소회가 있다면.

ㄴ 황혜민: 이게 점점 현실로 다가오니까 마음이 그렇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시원섭섭할 것 같긴 하다. 저는 매 공연마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고 선다. 매번 무대가 같을 순 없지만, 이번엔 정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으니 감동을 주기 위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연습 중이다.

ㄴ 엄재용: 저는 한 달 전부터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 발레단에서 한 생활, 작품이 기억나고 마지막 무대라는 조급함, 걱정이 많았다. 이번 주에 정식으로 오네긴 준비를 시작하게 됐는데 딱 시작하니까 마음이 담담하고 차분해졌다. 저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무의식적으로 벌써 공연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 같고 부상 조심하며 마지막까지 완벽한 무대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후배들 위해 오래 활동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나?

ㄴ 황혜민: 그런 생각도 했지만 여기까지 절 보고 온 친구들이 많을텐데 제가 놓지 않으면 자리를 넘겨줄 수 없기에 내려놓는다.

둘 모두 '오네긴'을 좋아하는 건 안다. 그래도 특별히 고려한 이유가?

ㄴ 엄재용: 일단 작품 제목이 남자인 몇 안되는 작품이다(웃음). '오네긴'이 참 좋은 게 보통 다른 좋은 작품이 많지만, 어떤 틀에 고정된 요소가 많다. 그러나 '오네긴'은 한 편의 영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주역의 연기력으로 끌고 간다. 중간 인사도 없고 커튼콜만 있다. 그런 작품이라서 제 모든 연기력, 경험, 감성, 관록을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서 부탁드렸다. 저희는 '오네긴'으로 은퇴하고 싶다고 미리 단장님께 부탁드렸다.

무용수가 아닌 여성의 삶을 선택했다.

ㄴ 황혜민: 사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마흔에는 그래도 아이를 가져야겠다 생각했다. 사실 10년 전이면 아이를 낳고 돌아왔을 거다. 그런데 이미 나이가 마흔이 됐다. 그런데 이전에 아이를 가지면 후회했을 것 같다. 아이 때문에 발레를 놔야 한다면 후회했을 것 같아서 최선을 다하고 딱 놔야겠다 싶은 게 결혼계획이었고 그게 지금인 것 같다.

비슷한 나이대인 김세연, 김주원 계속 활동을 이어간다. 여성 무용수로서의 마음을 나눈 게 있다면?

ㄴ 황: 사실 둘은 절 말렸다. 아직 20대처럼 춤추면서 왜 그러냐고 말렸는데 주원 언니랑 상담을 많이 했다. 세연 씨도 아직도 말도 안된다고 계속 하라고 하는 상황이었다. 저는 그냥 그만하겠다고 했는데 세연 씨는 자기도 은퇴하고 싶은 적이 있었는데 스페인에 있던 유명한 무용수 출신 단장님이 말하시길 '왜 지금 그만두냐. 자기가 은퇴할 시기는 자기가 알 거'라는 거다. 그 단장님은 자기가 공연하는 도중 문득 '내가 지금 여기서 이걸 왜 하고 있지?' 싶어서 그만두셨다고 한다. 그래서 세연 씨도 제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묻더라. 그래도 시기가 맞는 것 같아서 그만두겠다고 했고 둘도 말렸지만, 이제는 응원해주고 있다.

황혜민 무용수는 일문일답이 끝난 뒤 직접 써온 손편지를 꺼내 "유니버설발레단 황혜민이다. 15년 간의 발레 생활을 하면서 언젠가 다가올 무용수로서의 마지막 날을 여러번 상상했지만, 막상 그 날이 다가오니 오히려 담담해진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는 울먹이면서도 마지막까지 편지를 읽어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밝혔다.

문훈숙 단장은 마지막 인사로 "발레의 역사를 보시게 되면 전설적인 파트너쉽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부이자 무대 위에서 믿음, 존중, 배려의 파트너쉽으로 많은 이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준 게 두 사람의 파트너쉽이 아닐까. 발레에서 영원히 기억에 남을 커플이 아닌가 싶다"고 둘의 파트너쉽을 칭찬한 뒤 "둘이 낳은 2세가 얼마나 재능이 많을까. 잘 키워서 다시 저희 발레단으로 보내주시면 좋겠다"며 웃었다.

이어 "지금은 공식 은퇴하지만, 언젠가 아이를 낳은 뒤 풍부한 감수성과 함께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준 두 사람에게 명예와 감사를 드린다."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 수석무용수 황혜민이 보내는 편지 ⓒ유니버설발레단

some@mhnew.com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