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이젠 집을 비워 줄 때가 된 거야, 내주고 갈 때가 온 거지."

노부부 '장오'(신구)와 '이순'(손숙)은 손자를 위해 마지막 남은 재산인 한옥을 팔고 떠날 준비를 한다. 새로운 집 주인인 '용철'(김정호)는 집을 팔고 그 자리에 3층 건물을 올릴 계획이다. 그 와중에도 장오와 이순은 겨우내 색이 바랜 문창호지를 새로 바르며 일상을 지속한다. 기둥으로 다시 쓸 목재들을 떼어내고 뼈대만 남은 마루를 뒤로하고, 장오는 삼월의 눈 내리는 어느 날 집을 떠난다.

2011년 초연 당시 백성희와 故 장민호의 열연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3월의 눈'은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사랑을 받았다. 장오와 이순 역으로 박근형, 오영수, 변희봉, 박혜진 등 한국 연극계의 전설들이 연기를 펼쳤었다. 지난해를 제외하고 매해 3월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왔던 연극 '3월의 눈'.

인생의 마지막 자락에 있는 노부부, 그리고 헐리기 직전의 상황에 부닥친 한옥을 통해 죽음과 상실의 체험을 다룬 이 작품은 담담하게 그려진 수묵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집이 없어질 것을 아는 순간에도 평화롭게 문풍지를 교체하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여기에 한국, 중국, 일본 관광객들이 TV에나 본 화면 속의 한옥을 보기 위해 노부부의 집을 구경하는 순간에도 차분함을 잊지 않았다. 신문물인 셀카봉으로 셀카를 찍는 상황에서도 구시대를 살아온 장오는 부인의 물품만을 챙길 뿐 큰 저항 없이 이들의 움직임을 바라만 보기만 한다.

   
 

반짝반짝하는 조명도 없고, 뛰어다니는 배우도 없고, 시끌벅적한 음악도 없다. 정중동의 모습으로 연극은 80분간 진행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영화 '식스 센스' 만큼의 반전을 제시한다. 배삼식 작가는 최근 연극 '맨 프럼 어스'에서도 뛰어난 반전 속의 반전을 제시한 바 있다. '3월의 눈'의 반전을 접한 관객들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하지만 구구절절 신파로 흘러가는 흐름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무너져가는 두 존재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눈물일 것이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전쟁이 일어날 무렵 결혼을 한 노부부의 사연. 민주화 투쟁으로 인해 유일한 아들이 좌익으로 몰려 도망을 다니다 실종된 사연. 모든 국민이 월드컵에 열광하던 2002년, 전국적으로 대규모 구제역이 일어나 가축들을 모두 잃어 정신을 놓고 노숙자로 돌아다니는 '황씨'(이종무)까지 이 모든 이야기가 극 중 창호지를 붙이거나 '황씨'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소개된다.

극의 의미와 더불어 이 작품을 좀 더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명품 배우들의 연기다. 4번째 레퍼토리 공연에서 장오와 이순을 처음 맡게 된 신구와 손숙. 이들은 2010년 연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지난해 3월 이번 연극과 같은 장소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막이 오른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이미 합을 맞춘 바 있다. 그래서 처음 공개된 최종 프레스 리허설임에도 불구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볼 수 있었다. 마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환상적인 '캐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연극 정보
   - 제목 : 3월의 눈
   - 공연날짜 : 2015. 3. 13. ~ 2015. 3. 29.
   - 공연장소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 작 : 배삼식 / 연출 : 손진책
   - 출연 : 신구, 손숙, 박수영, 김정호, 김정은 등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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