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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노프는 현대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가 우리와 다른 것은 단 하나 살고 있는 시대다. <잉여인간 이바노프>의 주인공 이바노프는 두 여자의 사랑을 받으나 그 어떤 여자의 사랑도 수용하지 못하는 남자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현대 드라마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러나 극을 보는 내내 나는 이 작품은 애정과 관련한 갈등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내부적 갈등과 외부적 갈등을 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바노프는 시들어 있다. 중년의 남성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어려운 경제상황,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와 가족들. 그에게 늘 충만했던 열정과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열망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그의 영혼은 텅 비어있다. 사샤와 안나는 그런 그를 사랑한다. 자신에게 의지하고, 자신만을 바라보는 안나를 피하고자 하는 것은 보통의 중년 남자라면 흔한 일이다. 그러나 어리고 돈이 많은 사샤마저 거절하는 이바노프를 보면서 이바노프는 정말 열정과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이 텅 비는 순간 외부로부터 그 영혼을 채우고자 한다. 그래서 불륜이 발생하고,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바노프는 초지일관 두 여성 모두를 멀리하고자 한다. 본인에게 열정이 없음을 알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의 혼란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해결책이 본인에게서 시작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우울증을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바노프는 자신의 문제를 외부로 돌리고 외부 탓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바노프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영혼을 채울 수 있는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과 그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는 소통의 대상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바노프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온 마을 사람들이 이바노프를 찾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만 들었다. 안나도 사샤도, 울보프도, 보르낀도, 샤벨스끼백작도… 이바노프는 영혼을 채울 수가 없는 환경에서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런 이바노프를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이해하는 사람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다. 안나도 사샤도 그저 이바노프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한 것이다. 진심으로 이바노프를 사랑했다면, 이바노프를 기다렸을 것이고, 또 이바노프에게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결국,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이바노프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갔다. 특히 나의 시각에서 사샤의 고집은 결국 자신의 선택에 대한 집착처럼 보였고, 이러한 집착이 이바노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이바노프의 열정이 되살아난 지점이 죽음이라는 부분에서 격한 공감을 했다. 그리고 비록 그 선택이 죽음이지만 열정이 되살아났다는 것에서 박수를 보냈다. 어쨌거나 그 순간만큼은 이바노프의 영혼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영혼의 되살아 남에 박수를 보냈다.

극을 보는 동안 어쩌면 등장인물들은 이바노프의 외부 인물들이 아니라 이바노프의 내면 세계가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경제적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잔머리를 쓰는 보르낀, 아픈 아내를 돌보지 않는다며 자신을 괴롭히는 의사 울보프, 헌신적인 사랑을 주고 병약한 안나, 정열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사샤 등등. 이 모든 인물들이 결국에는 현실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이바노프 내면의 어떤 인격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결국 잉여인간 이바노프는 인간 내면의 갈등을 외부세계로 꺼내어 시각화시킨 후 인간 외부의 인물 간의 갈등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 안똔 체홉

안똔 체홉의 작품은 충격으로 뇌리에 잊히지 않는 장면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웃음을 부른다. 그러나 마음 한쪽이 은근하게 무겁다. 안톤 체홉의 극에는 러시아의 시대상이 잘 녹아나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풍자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인간 내적인 갈등과 인물 간에 벌어지는 외적인 갈등이 있다. 잉여인간 이바노프도 그러하다. 이바노프가 젊었을 때와 같은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다면 분명 이바노프는 스스로 영혼을 채우고 마을 전체를 치유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그가 안타까웠으나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주 아팠다.

이바노프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영혼이 비워진 그대, 혹시 그 영혼을 채우기 위해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을 것이고 괴로움도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서 당신에게 하는 말에 괴로워하고 있는가? 물리쳐라. 주변에 휘둘리면 이바노프처럼 괴로워진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지금 당장 자신에게 주어라. 내면에서 문제를 해결하라. 그렇다면 당신은 안나도, 사샤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신뢰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주변 모두를 치유할 수 있다. 주변의 강압에 못 이겨 권총을 들지 않기를… 이바노프와는 다르게 영혼을 가득 채워 스스로 치유하고 진정한 사랑을 얻어내기를…

이바노프와 똑 닮은 현대인들에게 바라본다.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해랑 rang@mhns.co.kr 대중문화칼럼 팀블로그 '제로'의 필자. 서울대에서 소비자정보유통을 연구하고 현재 '운종을 좋아하는 연기자 지망생의 여의도 입성기'를 새로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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