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2013년 공휴일로 부활한 10월 9일 한글날. 훈민정음이 반포된 날이다. 휴일을 만들어주신 세종대왕께 감사를 표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불과 몇 해 전, 정확히는 공휴일로 지정되기 전까지 한글날은 홀대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뿐이던가. 요즘 한글은 간판, 광고 등에서 외국어에 밀리기 일쑤인 데다 그 가치를 한국인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닌데'란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며칠 전 방송된 MBC '무한도전' 바보전쟁 편을 떠올려보자. 맞춤법 문제를 당신은 얼마나 맞췄는가. 익숙한 단어지만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이 꽤 많진 않았는지, 몰랐던 수도를 외우기 위해선 몇 번을 되뇌었으면서 맞춤법 문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여기진 않았는지 묻고 싶다.

이렇듯 거리감이 느껴지는 한글이지만, 동시에 이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몇 년 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혹자는 잊고 지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든 것도 한몫을 했다.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한글의 창제 과정이 이번엔 무대 위에 펼쳐진다. 드라마와 같은 이름으로, 작품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말이다.
 

   
 

서울예술단의 '뿌리 깊은 나무'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세종 시대, 훈민정음 반포 전 7일간 경복궁에서 벌어지는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사건. 연쇄살인의 이면에는 비밀을 지키려는 자와 드러내려는 자 간의 극렬한 대립이 존재한다. 소설의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뿌리 깊은 나무'는 관객들이 이야기의 큰 흐름과 함께 인물 각각의 사연에 집중하도록 극을 구성했다. 한글이 반포되기까지 인물들이 겪는 위기와 그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중심으로 다루며 자칫 중구난방으로 흩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원작에 없던 세종과 채윤의 과거 등이 이야기를 더욱 매끄럽게 해주며, 그 덕분에 무휼이란 매력적인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었다.

또, 서울예술단은 지극히 그들다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바로 군무와 영상이다. 서울예술단이 작품에 안무를 녹여내는 솜씨는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하다. 예술단의 독자성이라 할 수 있는 이 안무는 '뿌리 깊은 나무'에서도 역시나 큰 역할을 한다. 보통 공연에서 대사나 노래 없이 안무만으로 장면을 구성하면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예술단의 '칼군무'는 작품의 보는 맛을 더할 뿐 아니라 흡입력을 더해준다. 여기에 생동감을 더해주는 영상은 특별할 것 없는 무대에 고유의 색을 입힌다. 장소나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는 데 효율적인 영상은 특히 훈민정음 반포를 선언하는 순간 가장 빛이 난다. 그 위로 펼쳐지는 한글은 말 그대로 '아름답다'.
 

   
 

다만, 드라마에서의 '쫀쫀함'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극의 흐름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듯하다. 갈등이 고조되면서 위기감을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위기-해결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관객이 놀랄만한 반전이 마땅히 없다. (서울예술단의 '뿌리 깊은 나무'에선 가리온이 배신하지 않는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세종 편이니 안심하고 보도록 하자.) 이는 극의 중심인물인 '강채윤'과도 관련이 있는데, 강채윤의 분량은 다른 인물들에 비해 월등히 많다. 하지만 나오는 횟수가 잦을 뿐 관객들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한 방'이 부족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자연스레 극의 무게감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외국어의 중요성이 커진다 해도 한글은 우리 민족의 뿌리다. 백성을 위해 위로부터의 혁명을 주장하는 세종의 모습에 가슴 한편이 뭉클해진다면, 그동안 홀대했던 한글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여보자. 그 뿌리가 더욱더 깊게 박힐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한글의 우수성을 찬양하는 건 '국뽕'이 아니라 당연한 자부심이니까.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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