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 판결 환영' 기자회견 전경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예술이라는 핑계로, 현실의 범죄가 연기니까, 영화니까 라며 면죄부를 받아서는 안 된다."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빌딩 조영래홀에서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 판결 환영'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기자회견은 여성영화인모임, 장애여성공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125개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찍는페미, 평화의샘,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등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했다.

이날 기자회견엔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조인섭 변호사,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운영위원,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김미순 한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소장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먼저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의 경과보고가 진행됐다. '남배우A'로 알려진 조덕제 배우는 지난 2015년 4월 영화 촬영 중 '여배우B'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했다. 사전 합의 없이 B를 성폭행했으며, B는 전치 2주의 찰과상을 입었다고 주장, A를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신고한 바 있다. 이후 조덕제 배우는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지난 13일 열린 2심에선 원심을 깨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았다.

▲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조인섭 법무법인 신세계로 변호사는 "1심 판결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고, 설사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업무로 인한 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의하여 정당방위로 위법성이 없어진다"라면서, "1심 판결의 경우 감독의 지시가 있었던 것인 양 판단했다"라고 입을 열었다.

"2심 판결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으며, '피해자를 비롯한 증인의 진술이 대체로 일관되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경우 객관적으로 보아 도저히 신빙성이 없다고 볼 만한 별도의 신빙성 있는 자료가 없는 한 이를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라면서, "영화촬영장에서의 성추행에 대해 '감독의 일방적인 연기지시나 이에 따른 피고인의 연기내용에 관해 피해자와 사전에 공유하거나 피해자로부터 승낙을 받지 않은 이상, 그것을 단지 정당한 연기였다고만 볼 수 없다'라고 했다"라고 조인섭 변호사는 전했다.

이어 조 변호사는 "또한, 계획적, 의도적 행위가 아니었다거나 감독의 연기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해서 추행의 고의가 부정된다고 할 수 없다"라면서, "무고죄와 관련해서도 피고인이 피해자를 고소한 부분인 '강제추행사실이 없음에도 피해자가 피고인을 고소했다고 무고한 것'은 무고죄가 인정된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2심 판결의 경우 감독이 직접 피해자의 가슴을 만지고 피해자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으라는 것은 없다"라고 언급한 조 변호사는 "또한, 이 사건 장면의 촬영은 얼굴 위주라고 말하고 있어 피고인의 이와 같은 행위가 감독의 연기 지시에 충실히 따른 것이라거나 정당한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라 볼 수 없다. 1심 판결의 경우, 촬영 스태프들이 당시 상황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에 대한 녹취록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피고인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진술 내용으로 인정했으나, 2심 판결은 전체적인 내용을 반영해준다"라고 밝혔다.

▲ 조인섭 법무법인 신세계로 변호사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운영위원은 "나와 연대 단체의 영화인들은 (피해자가 연기한) 모 영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사건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해자 측에서 법원에 제출한 메이킹영상 모음과 실제 촬영 영상 등을 분석했다"라면서,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의 멜로·로맨스 영화다. 피해자가 맡은 역할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이다. 시나리오와 콘티, 그리고 실제로 개봉한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사건이 일어난 '13번 장면'에서 중요하게 표현되는 부분은 성적인 노출이 아니라,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는 인물의 모습"이라고 입을 열었다.

백 운영위원은 "이를 표현하기 위해 촬영 콘티에는 상반신, 인물의 얼굴 위주로 촬영하기로 되어 있었다"라면서, "촬영방식은 컷이 따로 나뉘지 않으며,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배우들의 움직임에 맞춰 찍는 핸드헬드 롱테이크다. 예정되어 있던 대로 연기를 하지 않는다면, NG가 날 가능성이 크다. 멍 분장 역시 어깨와 등 윗부분에만 했다. 여벌의 의상이 준비되어 있지도 않았다. 노출이나 접촉이 예정되어 있다면 필수적으로 하는 소위 말하는 '공사'도 하지 않았다. 촬영하는 도중에 의상이 찢어진다면, 그리고 NG가 난다면, 촬영을 진행하기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메이킹 영상 속에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상황이 담겨있다"라고 언급한 백 운영위원은 "메이킹 영상은 현장 전체가 아니라, 메이킹 기사가 선택해서 촬영한 것이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 감독과 스태프들이 메이킹 영상 밖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황보다는 현장 상황이 어땠는지 알기 위해 참고했다. 주목할 점은 13번 장면을 촬영할 때 메이킹 기사가 촬영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출이 예정되어 있을 때는 메이킹을 찍지 않는다. 하지만 13번 장면의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에도 메이킹 기사가 촬영감독 뒤에서 메이킹을 찍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운영위원

"메이킹과 촬영 영상에 따르면, 촬영 전 리허설을 제외하고, 총 세 번의 본 촬영이 있었다"라고 언급한 백 운영위원은 "두 번의 NG 후, 세 번째 촬영에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앞선 두 번의 촬영과 세 번째 촬영은 분명히 달랐다. 우리는 가해자가 제출한 영상들을 받아 분석하고, 재판부에 메이킹 영상과 실제 촬영 영상이 가해자의 무죄 근거로 쓰일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상반신, 얼굴 위주의 촬영이라 하반신이 직접 찍히지 않았지만, 피해자가 벽을 바라보고 서 있고 가해자가 등 뒤에 있는 상황에서 접촉이 없었다면 물리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피해자의 움직임과 노출의 위험을 무릅쓰고도 파를 내려 하반신을 방어하는 것을 보아, 아무런 접촉이 없었거나 어쩔 수 없이 스치기만 했다는 가해자 측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라면서, 백 운영위원은 "촬영 영상에 담겨 있는 합의되지 않은 가해자의 폭력이나 피해자의 상체를 노출 시킨 행위만으로도 범죄다. 상호 합의되지 않은 행위가 연기라는 명목의 업무상 행위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백 운영위원은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현실의 범죄가 연기니까, 영화니까 라며 면죄부를 받아서는 안 된다"라면서, "대책위에 참가하고, 피해자와 연대하고 있는 영화인들을 포함해 영화계 전체가 스스로 반성하고 자정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만 한다.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촬영 현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관객들이 안심하고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 사건과 이 사건의 판결은 그동안 가려져 있던 수많은 영화계 내 성폭력, 위계폭력들, 잘못된 관행들에 경종을 울렸다. 피해자가 어렵게 낸 용기와 노력이 선정적 가십으로 소모되지 않기를 바란다"라며 발표를 마쳤다.

[문화 生] '남배우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 "피해자 고통주는 보도, 그만둬라" ②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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