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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제목이자, 곧 팀명인 단어가 있다.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탈장소성을 의미하는 '다페르튜토(이탈리아어-어디로나 흐르는)와 장소의 특정성을 의미하는 '스튜디오'의 합성어이다. 그들은 연극의 내용과 형식을 고민하고 다양한 장르의 작가와 협업하여 '무용적 연극', '음악적 연극'이라는 대안을 모색해왔다고 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2014년의 다양한 장소적 작업들을 기반으로 탈장소성의 극장공연을 구현한다고 한다.

이 연극은 5개의 토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1.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2. 도시인들이 동물을 만나는 방법은 식탁 위 죽은 고기를 통해서다. 
3. 맥베스, 숲에서 길을 잃다. 
4. 하늘과 땅과 아프니까 사람이다 밝넝쿨춤. 
5. 앵콜공연 야생염소.

연극의 연출을 맡은 적극은 프로그램 페이퍼에 이런 말을 써 놓았다. "완결된 꿈이더라도 사람마다 해몽이 우리 삶에 더욱 본질적인 것처럼 이번 작업을 읽어내는 관객들의 해석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시간으로 연결되길 바란다"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문구를 보고 참 위안을 얻었다. 자신만의 해석을 존중해주는, 아니, 존중을 넘어 그래야 하는 당위성을 심어주는 것 같은 그들의 연극성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품에서 나만의 어떤 해석을 얻을 수 있을까 기대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해석의 자율성에 따른 책임감과도 같은 고민도 해야만 했다.

   
 

어두운 극장 안, 컴퓨터 메모장이 스크린에 비춰진다. 그리고 여기에 쓰이는 글자들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공연 전 안내 멘트, 공연 시작 알림, 각각 소제목 명시, 연극의 진행을 돕는 여러 문구 등등, 메모장에 타자되는 글자들은 본 극의 '짜임'을 담당한다. 그리고 첫 번째 토막이 시작된다.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양들로 꾸며진 배우들이 아주 자그마한 화단을 넘어다니며 "Bon voyage!”라고 인사한다. 일곱 번째 양은 아주 새빨간 양이 등장하고, 이후 하얀 앙들이 나타나더니, 열네 번째부터는 또 요상한 양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실제 개를 양으로 꾸미기도 하고, 풍선과 대걸레, 박스 등등의 질료들을 이용하여 '양'으로 가장하기도 한다.

모직을 너무 많이 만지고 생각하는 디자이너라 그럴까. 그의 꿈에는 '양 같지도 않은 양'들이 다수 등장한다. 코올리지는, "나무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 나무를 무대 위에 직접 제시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나무로 관객들이 믿도록 만들어내는 예술이 연극”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과연 그랬다. 연극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는 실제 '나무'를 무대에 올리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낯설게' 느껴졌다.

두 번째 토막, 세 번째 토막, 네 번째 토막까지…이들은 줄곧 이런 식이다. 박스와 깡통, 조명기구 등 왠지 재활용의 냄새가 폴폴 나는 재료들을 오브제로 사용하고, 행동에는 인과적 요소를 배제한다. 우리는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연극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그저 '보는' 것일 뿐이다. 행동의 나열들이, 토막의 나열들이 어떤 기준에서, 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냥 배우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 웃고, 우리를 놀라게 하면 실제로 놀라면 그만이다.

   
 

드라마를 '포기'한 이 연극에서 단 한 토막 서사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 서사 또한 우리의 전통적인 서사와는 매우 달리 환상적이다. 야생염소와 사냥꾼이 되고 싶던 소년의 이야기. 요즘 들어 현실은 참 현실적이지 못 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비상식이 난무하고, 비논리가 통용되며, 모순으로 가득한 이 세계, 그게 바로 '현실'이다. 그 속에서 왜곡된 사실과 사장(死藏)되어버린 진실들……. 그러나 여기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는 그런 곡해된 현실들을 재현하고자 굳이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꿈'같은 그들만의 세계를 무대에서 고스란히 펼치고자 할 뿐이다. 그들의 극에는 서사 대신 행동과 질료들만이 존재하고 있으며, 서사가 있더라도 논리와 인과가 없다. 사람마다 이 꿈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나에게 이 꿈같은 연극은 내 꿈보다도 훨씬 더 꿈같았다.

현실에 물들어진 까닭일까, 언제부턴가 나의 꿈은 환상성이 결핍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만이 꿈으로 펼쳐지고 있었고, 실제로 비현실적인 현실들을 살아내면서 이제는 사실과 환상의 구분마저 모호해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꿈보다도 더 꿈같은' 연극이지만, 어쩌면 가장 '사실적인' 연극이 아닐까 한다.

   
 

배우 강한결은 "무대 울렁증이 있다"면서 자신이 공연 도중 내뱉었던 말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performing은 매우 자유로웠고, 그 속에서 무대 울렁증이라는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는 전통적으로 무대가 가지고 있는 주목성, 재현성, 객석과의 경계성을 배제한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는 '대사'를 말한 것이 아니라, 순간의 '소리'들을 내뱉었다. 말의 의미를 배제하고 그저 '소리'로 만들어버리는 이들의 연극은 가장 현대적인 속성에서의 연극을 표현하고 있다.

이들의 연극은 기계적이지도, 인위적이거나 작위적이지도, 반복적이지도 않다. 이들의 연극은 '관람'의 차원이 아니라, '경험'의 차원으로 설명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acting이 아닌 performing을 행위를 하는 그들의 연극성은, 인간 개개의 감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나'라는 본질에 대한 탐구를 보편적 차원이 아닌, 개별적 차원으로 이행하는 것을 돕는다.

  * 연극 정보
   - 제목 :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 공연날짜 : 2015. 1. 22 ~ 24.
   - 공연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 연출 : 적극
   - 출연배우 : 김정화, 박한결, 박형범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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