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티스트에디터 박정기(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pjg5134@mhns.co.kr

▶공연메모
육군본부와 한국연극협회의 한윤섭 작 정대경 작사 작곡 연출의 뮤지컬 <신흥무관>
- 공연명 신흥무관
- 공연단체 육군본부, 한국연극협회
- 작가 한윤섭
- 작사 작곡 연출 정대경
- 공연기간 2017년 10월 26일~27일
- 공연장소 금천구청 금나래아트홀
- 관람일시 10월 27일 오후 2시

[문화뉴스 아띠에터 박정기] 금천구청 금나래아트홀에서 육군본부와 한국연극협회 공동제작, 한윤섭 작, 이영일 안무감독, 김기형 음향 음악감독, 정대경 작사 작곡 연출의 뮤지컬 <신흥무관>을 관람했다.

한윤섭은 서울예술대학에서 극작을, 프랑스 헨느대학교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극작가와 연극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9년 전국창작희곡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 <열린문>이라는 이름으로 극단을 창단한 후 2015년 극단 이름을 에이치프로젝트로 바꿨다 극단 대표인 한윤섭은 최근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극작가 겸 연출가로 발표한 희곡 작품으로

<굿모닝 파파>, <만적의 난>, <아! 바그다드>, <엄마! 지구랑 놀아요>, <후궁 박빈>, '<조용한 식탁> <오거리 사진관> 등이 있다. 제11회 문학 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봉주르, 뚜>는 그의 첫 장편동화다.

2017년 대한민국 연극제 본선에 이례적으로 <성호가든>, <오거리 사진관>, <굿모닝 씨어터>가 올렸으며 극단 파도소리의 한윤섭 작 강기호 연출의 <굿모닝 씨어터>로 희곡상과 대상을 수상하였다. 2013년 연극<하이옌>으로 거창 국제연극제 대상,

2015년에도 거창국제연극제에서 <오거리 사진관>으로 희곡상과 금상을 수상했다. 2015년 고마나루 전국향토연극제에서 금상 <수상한 궁녀> 수상, 2016년에는 극단‘아시랑’과 합동 공연하여 고마나루 연극제에서 대상 <절세가인 효녀 노아> 수상했다.

정대경은 서울예술대학,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공연예술협동과정을 이수한 작곡가 겸 연출가다. <불 좀 꺼주세요> <피고지고 피고지고> <콘트라베이스>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외 연극음악 120여 편을 작곡하고,

뮤지컬고 악극 <산 너머 고개 넘어> <황금신화2002> <퓨전 춘향전> <어린이난타> <캣츠> <넌센스> <코러스라인> <굳세어라 금순아> <빈대떡 신사>외 다수의 공연음악 편곡 및 음악감독과 무용음악, 방송음악을 작곡하고, <결혼> <비밀을 말해줄까> <아름다운 거리>를 연출했다 삼일로창고극장 대표를 역임했고, 서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현재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이다.

뮤지컬 <신흥무관>을 신흥무관학교의 설립과 해체가 내용이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는 1911년 서간도(길림성 류하현)에서 개교한 독립군 양성 기관으로 현 경희대학교(慶熙大學校)의 전신이다.

신흥무관학교의 졸업생들은 서로군정서 의용대, 조선혁명군, 대한독립군,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등에 참여해 무장 독립운동의 한 축을 차지하며 민족 해방에 크게 기여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이상룡을 주축으로 윤기섭, 이시영, 이회영 형제와 김형선, 이장녕, 이장직, 이동녕 등 군인 출신이 중심이 되어 신흥강습소란 이름으로 설립하였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의 눈을 피하고 중국 당국의 양해를 얻기 위해 신흥강습소란 이름을 내걸었으나 초기부터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군사학교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신흥이란 이름은 신민회의 신자와, 부흥을 의미하는 흥자를 합쳐 만든 것이다.

합니하에서는 중학교 과정과 군사과를 두어 군인을 양성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합니하 학교를 ‘신흥 중학교’ 또는 ‘신흥 무관 학교’로 부르거나 인식하기도 했다. 공식 명칭은 어디까지나 ‘신흥 강습소’였다.

신흥강습소는 1919년 삼일운동이후 신흥무관학교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신흥무관학교는 유하에서 동쪽으로 40 km 정도 떨어진 대두자(大肚子)에 위치해 있다. 학교터는 현재 마을 뒷산의 밭으로 변해 있다.

1911년 4월(음력)에 유하현 추가가 대고산에서 노천대회를 열어 경학사를 결성하였고, 한 달 후, 대고산 아래, 토착민들의 옥수수 창고를 빌려 신흥강습소를 세웠다.

이후 1912년 통화현 합니하로 학교를 옮겼다. 1919년 3.1운동 이후 조선의 젊은이들이 몰려와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자 다시 유하현 대두자로 학교를 옮겼다. 그래서 대두자가 본교, 기존의 합니하는 분교의 형태를 띄게 되었다. 대두자 학교터에서는 2~3,000여명(추산)의 학생이 교육을 받았다.

광복 후에는 1947년 서울 종로에 신흥무관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 신흥전문학원(新興專門學院)이 설립되었고, 1949년 신흥초급대학(新興初級大學)으로 인가 받았다. 이후 1952년에 4년제인 신흥대학(新興大學)으로 전환되었고, 1955년에는 종합대학인 신흥대학교(新興大學校)로 승격이 되며 교사를 서울 회기동(현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으로 이전한 후,

1960년대에 '신흥대학교'였던 교명을 현재의 경희대학교로 바꾸었다. 경희대학교는 무관학교의 전통을 계승해 국내에서 최초로 체육대학을 만들었으며, 정통 민족대학으로서 민족의학인 한의학과 민족무예인 태권도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육성시키며 신흥무관학교의 명맥과 전통을 잇고 있다.

뮤지컬 <신흥무관>에서는 대한제국의 계몽운동가·언론인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가 이동녕(李東寧, 1869~1940)과 대지주였던 이회영(1867~1932)을 비롯한 그의 형제들은 나라가 망하자 1910년 12월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노비를 해방시킨 후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이역 땅에서 펼친 우당 일가의 치열한 독립운동 뒤엔 아나키스트 적 삶을 살았으면서도 지도층으로서의 명예와 책무를 위해 재산은 물론 형제들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내놓았던 처절한 가족사가 펼쳐진다.

역사상 전례가 드문 우당 일가의 숭고한 독립투쟁은 지배층이 그에 걸맞은 사회적·도덕적 책무를 외면하는 이 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귀감으로 전개된다.

신흥무관학교의 결성이 극중 소개가 되고, 무관들의 군사교육과 훈련과정도 소개가 된다. 중국의 실세였던 원세계의 동정, 그리고 이국땅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온 청춘남녀의 이야기도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마적 떼와의 대결, 일본군과의 대결이 관객을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대단원에서 신흥무관학교를 해체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건 등이 아름답고 웅장한 음악과 함께 감동적으로 연출된다. 영상투사로 역사적 연관인물이 소개되고, 눈보라 등의 영상으로 극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김춘기, 김선동, 최승일, 현순철, 장재윤, 서재필, 황성현, 전승현, 노 현, 서명헌, 조호균, 조윤주, 박진우, 배소망, 신연미, 이지은, 최두나, 곽수아, 김재욱, 이소현, 박선영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설정에서부터 호연과 열연 그리고 열창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고 대단원에서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드라마터그 성준현, 무대 소품 민병구, 조명감독 정일만, 영상감독 황정남, 의상디자인 박소영, 무대감독 송훈상, 편곡 XKA 이종한, 분장디자인 배윤정, 조연출 김혜정, 조안무 허지은, 음악조감독 김은주 이은진, 기획 이성진 최주희, 박서은 권현선, 사진 이도희, 인쇄디자인 현, 자문 방학진, 국방부 군악대대 오기석 장창욱 권찬양 송권웅, 박재성, 이준우, 앙상블 박상준, 전문균, 이윤수, 서재협, 강왕식 등의 열정과 기량이 하나가 되어, 육군본부와 한국연극협회 공동제작, 한윤섭 작, 이영일 안무감독, 김기형 음향 음악감독, 정대경 작사 작곡 연출의 뮤지컬 <신흥무관>을 남녀노소 누구나 보아도 좋을 걸작 음악극적 서사극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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