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평범한 사람 속에 서있으면 어쩐지 툭 튀어나와 보이는 그의 매력은 하얀 피부만큼이나 감춰지지 않았다.

지난 10월 27일 오후 충무아트센터에서 연극 '도둑맞은 책'의 이형훈 배우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12월 3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되는 연극 '도둑맞은 책'은 영화 시나리오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천만 영화 시나리오 작가 서동윤이 자신의 옛 보조작가 조영락에게 납치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밀도 있는 2인극이다. 서동윤 역에 이현철과 이갑선, 조영락 역에 이형훈, 이충주, 이우종이 출연한다.

이형훈은 '팬텀싱어2' 결승에 '에델 라인클랑' 팀원으로 진출한 이충주와 함께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조영락을 만들며 관객에게 다가서고 있다. 복수의 관계자들은 이번 연극 '도둑맞은 책'을 보며 두 배우 모두 너무 대단하다며 "두 사람의 연기력이 조금 더 주목받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특히 이형훈은 대학로에서 '숨겨진 보석'으로 꼽히는 배우다. '반신', '변신 이야기', '필로우맨', '레이디 맥베스', '세일즈맨의 죽음',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싸이레니아', '글로리아', '보도지침' 등 흔히 이야기하는 '예술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작품들에 연이어 출연했다.

그런 그는 놀랍게도 아동극 뮤지컬 '파라오는 살아있다'에서 '낙타' 역으로 데뷔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는 "심은하도 보러 온 뮤지컬"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루에 공연을 세 번씩 하는데 제가 댄스머신인 줄 알았지 뭐에요(웃음). 재밌는 경험이 됐죠."

오직 연극만을 걸어온 배우인줄 알았는데 의외의 데뷔였다. 조금 더 물어보니 영화 '검사외전'과 '순수의 시대'에도 나온 적이 있던 '영화배우'였다.

"연극만 해야겠다. 이런 건 아니에요. 매체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도 있죠. 몇 편 작은 역할을 맡기도 했고요. 다행히 좋은 분들과 작업하면서 이렇게 공신력을 쌓다보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그러더니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매체 연기', '과장된 무대 연기'의 경계선이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극장이 아닌 이상, 혹은 대극장에서도 대중이 생각하는 연극 연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죠"라며 '연기'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는 앞서 말한대로 '좋은 분'들과 작업하고 있다. '도둑맞은 책'을 함께하는 변정주 연출을 비롯해 한태숙, 고선웅, 오세혁 등 당대의 연출가들과 함께 작업하게 되는 비결을 묻자 "이렇게 말하면 좀 그럴 수도 있지만, 정말 운인 것 같아요. 저보다 잘하는 분들도 많고 좋은 기회들도 많은데 정말 감사한 일이죠. 제가 그만큼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운이 제일 큰 것 같아요."라며 겸손한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꼭 그런 유명한 작품이 아니어도 어떤 작품이든 그런 것 같아요. '옥상 위 카우보이 & 해맞이'라는 3일짜리 공연을 했었어요. 관객들이 보러 오시기 좋거나 접근성 쉬운 작품이 아니었는데도 너무 재밌고 뿌듯하게 작업하니까 동료나 스태프들과 보람이 컸죠." 라는 대답을 듣고 나니 오히려 그와 함께하는 이유가 느껴졌다.

연극 '도둑맞은 책'의 원작은 영화 시나리오다. 이후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에 연극으로 만들어진 뒤, 이를 발판으로 웹툰, 소설로 뻗어나갔다. 그럼 지금 공연 중인 연극 '도둑맞은 책'에서 이형훈이 선보이는 연기는 어떤 연기일까.

그는 "'도둑맞은 책'은 플롯이 명확하고 영화로 나오면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걸 극으로 만들면서 여러 인물을 혼자 연기하게 되는데 무대의 현장성 안에서 연기를 바꾸는 과정, 거기에서 연극적인 무언가가 나오는 것 같아요. 특별히 연극을 위한 연기를 하는 게 아니죠. 그렇지만, 무대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단추 하나 풀고, 자켓 하나 걸치면 다른 인물이 되는데 영화에선 그렇게 할 수 없겠죠. 그저 그런 차이인 것 같아요."라고 정리했다. 이어 "연극 연기도, 매체 연기도 아닌 이형훈의 연기"라는 현답을 제시했다.

▲ 그는 장난을 좋아한다. 말끔한 외모에서 나오는 실없는 행동은 그의 매력 요소 중 하나다.
▲ 반면 어떠한 표정을 지어도 '사연'이 있어보이기도 한다.

이번 '도둑맞은 책'은 최초로 고정 페어가 아닌 크로스 페어로 진행된다. 조그만 어긋남으로도 호흡이 매번 달라질 수 있는 밀도 높은 작품에서 크로스 페어는 위험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애매한 적정선"이라는 말로 더블 캐스트와 트리플 캐스트가 만나는 크로스 페어를 정리했다.

"현철, 갑주 두 선배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상대방 때문에 내가 만들어놓은 조영락이 변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저 관객들이 저희를 그렇게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스파이더맨'도 원조가 있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있고 '스파이더맨:홈커밍'이 있잖아요. 분명 셋 다 같은 '스파이더맨'이지만, 다른 매력 주고 싶어요. 각 배우가 가진 디테일한 이야기가 있으니 그 차이를 느끼시면 좋겠어요."

그가 올해 들어 새롭게 출연한 '보도지침'의 김주혁을 비롯해 '글로리아'의 딘, '도둑맞은 책'의 조영락. 이 인물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키워드는 없을까. 세 명의 인물은 극 속에서 '자신의 평범함'을 지켜가며 살지만, 인생을 뒤흔든 큰 사건을 겪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그들은 커다란 사건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삶 속에 미친 영향과 싸우며 서서히 평범함에서 벗어난 인물이 된다.

"너무 극단적인 캐릭터가 아닌 현실에서 있을법한 사람인데 그 선택을 짚어가면서 조금씩 변하는 내면을 보여주는 역을 맡았던 것 같아요."

그가 말했다.

"그걸 통해서 저를 좀 돌아본 것 같고 그런 작품을, '사람 이야기'를 하는 데서 재미를 느껴요. '도둑맞은 책'에서 지향이 이야기할 땐 장례식장의 모습을 생각했어요. 사람이 슬픔이든 뭐든 간에 그게 커서 무너지는 장면이요. (변)정주 형 말마따나 도자기에 금이 가서 팍 깨지는 느낌을 생각했다. (이)갑선이 형은 '한'의 정서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인터뷰 시점에서 1주일 뒤(11월 3일)는 동료 이충주가 '팬텀싱어2' 결승 2차전을 치르는 날이다. 그에게 "몇 등 할 것 같냐"고 질문하자 고민하는 기색 없이 답변이 돌아온다.

"당연히 1위 해야죠.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요. '도둑맞은 책' 연습실에서 연습하다가 중간에 화장실 갈 때도 노래를 할 정도에요(웃음). 같이 연습하며 보니까 연습도 있고, 곡 선정 과정 때문에 며칠간 밤새 촬영을 하는데 다음날 연습실에 오면 제일 먼저 연습한 사람이에요. 런(*장면 별로 끊는 것이 아닌 공연 전체를 연습하는 것)도 우리중에 제일 먼저 돌았죠. 우승하면 선물은 '돕바'라고 했어요(웃음)." (*돕바는 일본어의 잔재다. 순화어는 '반코트', '토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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