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J엔터테인먼트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국내 남자배우 '연기 4대 천왕'이라는 타이틀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배우로는 '택시운전사'의 주역 송강호를 비롯해, 올해 '불한당'과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 설경구, 타고난 '연기천재' 이병헌, 그리고 "장르가 최민식"의 대명사 최민식이 포함되곤 한다. 실제로 오달수 주연의 영화 '대배우'에서 윤제문이 연기한 '설강식' 또한 최민식의 이름 한 자에서 따왔을 정도.

최근 최민식의 강렬하거나 잔인한 배역 때문에 일부는 그가 다소 대하기 어려운 인물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정말 배역 때문에 생긴 오해다. 신작 '침묵'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임태산' 또한 냉정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자신의 딸을 그 누구보다 아끼는 한 명의 아버지였듯, 지난 10월 27일 금요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던 최민식은 매우 유쾌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필자에게 엔도르핀을 전해주는 '밝음' 그 자체였다. 심지어 최민식은 사정없이 질문해달라고 요청을 했기에, 사정없이 한 번 질문해보았다.

※ 주의 : 해당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바랍니다.

18년 만에 정지우 감독과 만났는데,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던가?
└ '헤피 엔드' 이후 정 감독이 만든 작품의 만듦새를 보면 변한 게 없고 더 치열해진 것 같아 사람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했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똑같더라. 세월의 간극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마치 몇 달 전에 봤다가 다시 본 것 같은 친숙함이 느껴져서 신기했다. 그래서 제작보고회 당시 '집 나간 동생이 다시 돌아온 느낌'이라고 말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웃음)

또한, 짠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긴 세월 동안 영화라는 한 분야에서 각자 활동하면서 한 번 일하고 헤어졌다가 18년이 지나 다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니까 감사하게 느껴졌다. 좋은 동료다. 그렇게 해서 다시 머리를 맞대고 '침묵'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데 감사할 뿐이다.

▲ ⓒ CJ엔터테인먼트

'임태산'의 극 중 초·중반 모습이 '특별시민'의 '변종구'와 비슷한 면도 보였는데, 그와 차별점을 두려고 했는 게 있었는지?
└ 그런 건 특별히 없었다. '특별시민'의 변종구와 달리, '침묵'에선 임태산의 과거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는다. '유나'와의 로맨스, 그리고 유나와 '미라'의 어색한 첫 만남을 잠깐 보여주다가 사건이 발생하고 했다.

임태산 스스로 냉혹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사건을 정리하는 모습이 변종구의 모습과 비슷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죽고 그 사건에 중심에 딸이 있다는 충격을 가급적 감추려는 게 두 인물 사이의 교집합으로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점을 우려하진 않았다. 어차피 두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과 영화 자체가 색깔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관객을 속여야만 임무를 가지고 임했어야 했는데, 연기 방향을 어떻게 잡았는지?
└ '침묵' 같은 영화에선 아주 잘게 썰어서 연기에 임해야 한다. 전체 흐름은 이해하고 있어야 했지만, 자칫하면 관객들에게 들킬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짧은 단락, 대사, 문장을 나눠 어떤 뉘앙스로 말해야 하는 지 신경 써야 했다.

그리고 연출의 도움도 필요했다. 나는 연기를 하는 입장이고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시종일관 봐주는 사람이자 이야기의 전체 맥락 및 세부적인 연출은 감독이 하므로 그를 믿고 연기에 몰입했다.

▲ ⓒ CJ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 임태산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참 힘들었다가 후반부 돼서야 깨닫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게 느끼게끔 의도하고 연기한 것인가?
└ 의도한 거다. "임태산이 무엇을 생각하는 거지?", "어쩜 저럴 수 있을까?"고 유발하는 게 의도한 것이다. 비서인 '정승길'한테 시계 찾아오라고 한 것도 그렇다. 현장 CCTV가 이 극 전개에서 중요했기 때문이다. 미라를 구하려고 애쓰나보다 했다가 비서가 시계를 팔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승길이 범인인가 혹하는 것도 전부 다 임태산의 계산이었다.

사실 완성본에 빠진 증인도 많았다. 그 중 유나와의 동영상 주인공인 '스티브'도 등장했는데, 그 장면이 나왔다면 더 웃겼을 것이다. 어눌한 말로 임태산을 향해 욕하는 게 있는데, 너무나도 실감 나게 잘해 촬영현장을 뒤집어놓을 정도로 웃겼다.

영화 자체가 초중반, 그리고 후반이 확연하게 다르다. 하지만 임태산이라는 인물이 후반부로 가면서 좀 늘어지는 면도 느껴졌는데, 이는 변화된 면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는지?
└ 플래시백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 부분도 많이 잘라냈다. '동성식'한테 '동명'이 결정적인 제보가 있다고 전화했고 임태산이 동명이를 막고 했던 것도 쇼라는 게 후반부에 과정으로 나오지만, 최초 분량은 너무나 길어서 일정 부분으로 편집되었다.

태산과 유나, 그리고 미라가 만나는 한정식집 장면도, 유나와 미라와의 관계가 중요했다. 유나가 "언니라고 불러도 되지?" 하면서 미라의 손을 잡았다가 임태산이 들어오면서 손을 놨던 것도 처음에는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외 숨겨진 게 있었는데, 후에 감독판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걸 보여주면 3시간이 넘어갈 것이다. (웃음)

▲ 영화 '침묵' 스틸컷

이하늬와의 연기 호흡이 인상적이었다. 당신의 최근 작품만 봐왔던 관객들은 놀랄 수도 있을 것 같다.
└ 요즘 관객들에겐 생소할 것이다. 굳이 멜로라기보단, 오랜만에 인간 대 인간의 교감이나 감성을 표현해보려고 했다. '침묵'이라는 영화가 겉모습은 법정스릴러로 보이지만, 주된 메시지나 도드라지는 감성이 이 영화의 무기이자, 대중과의 소통에 있어 중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때문에 기획 단계부터 '침묵의 목격자'를 리메이크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작 영화를 돌려본 후, 각색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원작과 차별점을 두고자 인간성의 회복, 그리고 인간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과 교류를 드러내려고 했다. 예를 들면, 유나와의 관계도 그렇다. 늦은 나이에 임태산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느냐.

내가 봤을 때, 임태산이 처음 느끼는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대기업의 회장으로서 운영하는 동안 승부사 기질을 앞세우며 숱한 난관을 헤쳐왔다. 하지만 오랜만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여자가 죽는 고통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 중심에 임태산의 딸인 미라가 있다. 이 또한, 임태산이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다른 차원의 고통이었다. 이에 어떻게 표현할지, 완성본에서 보여준 방식으로 해결하겠다고 제작사인 임승용 대표, 연출하는 정지우 감독과 합의했다.

▲ ⓒ CJ엔터테인먼트

그리고 후반부에 거울 앞에 서 있던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때 임태산이 보여준 유나를 향한 사랑과 참회의 감정이 참 좋았다.
└ 임태산도 알고 보면 괜찮다. (웃음) 기업사냥꾼으로서 부와 명성, 권력을 얻으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 눈에서 피눈물 흘리게 했고, 피도 눈물도 없이 전진하면서 돌격해왔던 사람이 가정을 제대로 돌볼 리가 없다. 그래서 딸이 아빠를 현금인출기로 여겼을 것이고, 임태산은 전처와도 진짜 사랑했을 것이라 보진 않았다.

그런데, 유나가 "괜찮아" 하는 그 대사가 임태산이 듣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임태산이 자신의 무의식중에 유나에게 미안하다고 진심을 보여줬는데, 이는 자신으로 인해 빚어진 일들이라고 느꼈다.

그때 임태산이 처음으로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신이 정말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고 자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후반부에 유나가 배 타고 손 흔드는 장면이 좋았지 않은가. (웃음) 최초에는 그 장면이 없었는데, 정지우 감독이 추가했다. 잘 집어넣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두 사람이 연인관계로 등장하는 게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고 어색하게 느낀 이들도 있다. 알고 있는가? (웃음)
└ '침묵'을 안 봤다면, 왠지 임태산이 유나를 괜히 죽일 것 같지 않나. (웃음) 이제 그렇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웃음)

▲ 영화 '침묵' 스틸컷

그러고 보니 '특별시민'에 이어 2편 연속 이수경과 부녀관계로 출연했다. 이번 '침묵'에서 가장 눈에 띄었는데, 옆에서 보니까 어떤 배우였나?
└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적합한 배우다. 만약 이수경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뭔가 해낼 수 있는 능력을 오래 보여줄 것이다.

'특별시민' 때, '변종구'가 자신의 딸에게 죄를 덮어씌우자, 그의 아내가 "네가 인간이냐!"며 울기만 했던 장면이 있었다. 최초 설정은 엄마가 딸의 손목을 잡고 들어가는 것이었고 이수경은 대사가 없었다. 하지만 '변종구'의 집구석을 보여주려면 딸 또한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해 이수경에게 "너라면 아빠한테 뭐라고 이야기하겠냐?" 물어봤다. 그랬더니 "엄마 때렸어?"라며 즉석에서 말했고, 그런 반응을 보고 계속 그가 연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아주 훌륭했다. 수경이 같은 젊고 재능 있는 배우들이 기회를 가지고 다 보여줄 수 있게끔 만들어줘야 한다.

[문화 人] '침묵' 최민식 "박신혜·류준열·이하늬·이수경 만들어준 파도 탔을 뿐" ② 으로 이어집니다.

syrano@mhnew.com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