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아빈(婀贇) kim.abin.beautiful@mhns.co.kr 시인 겸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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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미술기자를 했었을 때, 처음 썼던 원고가 바로 아프리카 전통 미술 관련 전이었다. 강렬한 야생의 느낌을 한껏 받은 나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에너지에 새로운 자극과 세상을 일깨웠다. 땅속에서 잠자있던 그들은 오랜만에 세상에 나와 아직 살아있다고 세상에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옛적 피카소가 아프리카 미술을 만나고 정신적 충격으로 며칠 앓았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1년 뒤, 아프리카 현대 미술전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되고 설렜다. 그때의 에너지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변주를 만들어줄까? 아니면 아쉽겠지만 아예 다른 에너지를 만나게 될까. 

   
 
   
 

결과는 위 세 가지 질문에 다 "Yes"를 올리고 싶다. 그래도 공통점은 현대의 아프리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프리카에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애정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아프리카는 현재 전쟁의 상흔과 악습의 구속으로 고통받는 곳이 많다. 마분다는 조국 모잠비크의 16년간의 내전에 사용되었던 무기들을 활용해 아프리카의 전통 가면과 도구들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만들었다. 빨갛게 녹슨 무기들에서 전쟁의 아픔과 잔혹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멀리서 봤을 때 보이는 전통가면의 모습은, 여전히 살아있는 아프리카의 생명력과 소중한 문화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애잔하고 전쟁에 대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또한, 아프리카의 안타까운 현실을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벨레코는 자유분방한 패션을 한 아프리카 젊은이들을 사진에 담았는데, 그 에너지가 환상적이다. 형형색색의 옷과 어우러지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 함박미소는 아프리카의 어두운 면을 잊게 한다. 아프리카의 젊음은 여전히 살아있고, 그래서 우리는 희망찬 아프리카를 그릴 수 있다. 그리고 닉 케이브는 형형색색의 사운드수트로 가려진 복장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을 영상에 담았다. 화려한 색감의 사운드 수트 뭉텅이는 그 사람의 외적인 조건들을 덮어 버리고, 오직 열성적으로 무언가를 극복하려는 필사적인 몸짓의 '존재 그 자체'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생명력이 선명히 꿈틀대는 존엄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성의 상실을 반증한다.

   
 

안드리아노메아리소아는 아프리카의 정신을 주로 직물과 종이 작업으로 표현한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시간이라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하얗고 검은 직물로 표현된 세상은 직관적이고 영험하다. 검은 천 조각과 방사로 붙여진 균열한 방은 블랙홀을 연상시킨다. 시간을 집어먹은 다채로운 무한의 공간. 이 안에 우리를 가장 크게 조장하는 시간의 힘을 담으려 했을지 모른다. 시간은 무한대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특별한 순간은 있는 법. 그는 또 다른 작품에서 그러한 시간을 하얀 천 뭉텅이들의 연속적인 묶음으로 표현했다. 하얀 천이 고이 접어진 하얀 벽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시간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제우스의 신전에 온 착각이 든다. 큰 스케일로 아프리카의 정신을 담은 안드리아노메아리소아와는 달리, 스티븐 버크스는 아프리카의 공예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그의 의자에는 아프리카의 향기가 묻어나지만 현대적인 절제된 세련됨은 놓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내 집 거실에 놓아두어 그 공간만은 아프리카의 향취를 흠껏 느끼고 싶을 정도로 욕심이 나는 소품이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작가 잉카 쇼니바레의 <윌리 로먼-흥망성쇠>는 현대인들의 탐욕과 그로 인한 멸망을 암시한다. 자동차 사고로 목이 잘린 채로 걸려있는 '세일즈맨의 죽음'의 가엾은 주인공 윌리 로먼을 마주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착잡함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조각 파편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사진들의 탐욕덩어리들은 나체인 채로 무언가를 열성적으로 좇고 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모른 채.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들 중 4개를 표현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지금 현대 사회 그 자체를 표현한 것 같아서 섬뜩했다. 현대에서 추구하는 가치들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리고 이에 휩쓸려 자신을 잃은 현대인들의 모습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아프리카는 더 이상 미개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주체적이고, 대세라 여겨지는 서구의 문명을 보기 좋게 조롱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유산을 소중히 풍요하게 맺어가고 있다. 그 안에는 아프리카가 현재 겪고 있는 쟁점과 아픔이 고스란히 있지만, 이들도 이번 '아프리카 나우' 미술전에서 볼 수 있듯 그들만의 무궁한 생명력으로 슬기롭게 극복하리라 믿는다. 아프리카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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