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작품만의 색깔은 약하지만, 공연을 보고 나면 넘버를 흥얼거리게 되는 마성의 '로빈훗'

'로빈훗'은 본래 잉글랜드 민담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로, 60여 명의 호걸과 함께 불의한 권력에 맞서고 부자들을 약탈하여 가난한 이를 돕는 의적으로 그려진다.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 소재로 등장하면서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로빈훗의 이야기가 불의에 맞서 적통 왕위 계승자를 돕는 영웅담으로 다시 태어났다.

'로빈훗'은 십자군전쟁이 유럽 전역을 휩쓸던 12세기에서 시작된다. 영국의 '로빈 록슬리'은 연인 '마리안'에게 승전보를 가지고 돌아와 청혼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리처드왕'과 함께 전쟁터로 나선다. 하지만 친구이자 동료였던 '길버트'에게 배신당해 로빈은 왕을 살해한 반역 죄인의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삼엄한 감시 속에 영국으로 돌아온 로빈은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가족과 길버트의 아내가 되어버린 마리안을 보고 좌절한다.

   
▲ '로빈훗' 역의 엄기준 ⓒ 쇼홀릭

로빈이 왕실 근위대에서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는 과정은 상당히 급박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강약조절도 적절히 이루어져 관객들은 계속 몰아치는 이야기를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다. 빠른 장면 전환을 돕는 무대 활용도 인상적이다. 전쟁터와 영국 왕실 등을 오가며 끊임없이 전환되는 무대와 스크린은 정말 그 장소에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객석과 가까운 무대 앞쪽까지 폭넓게 오가는 배우들은 관객들의 현장감을 높인다.

존 왕자와 결탁하여 노팅엄 영주가 된 길버트의 계략으로 감옥에 갇힌 로빈은 우여곡절 끝에 셔우드 숲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그곳에서 리틀존 무리를 만나 '로빈훗'이라는 새로운 이름들 얻어 그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로빈 록슬리'가 '로빈훗'이 되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뻔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아쉽다. 세금을 내지 못해 숲으로 도망온 사람들을 향해 "계속 도적 해라. 난 왕실과 싸우겠다"는 로빈의 말은 우습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바로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도적에서 의적으로 변한다. 한정된 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겠지만, 장면의 중요도를 따졌을때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리처드왕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필립' 왕세자는 왕이 되기 싫다고 외치는 철부지 소년이다. 프랑스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다가 아버지, 리처드 왕이 죽자 왕위를 이어받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오는 와중에도 가기 싫다며 징징댄다. 그러던 중 삼촌인 존 왕자 세력의 음모로 위기에 처하게 되고, 위험을 피해 숨어든 셔우드 숲에서 로빈훗과 그 무리를 만나게 된다. 왕이 되긴 싫어도 왕자 대접은 받고 싶었던 소년, 필립은 존 왕자의 거짓된 권력과 폭정으로 궁지에 몰린 백성들의 실상에 눈뜨게 된다. 필립은 자칫 무겁게 흘러갈 수 있는 로빈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등장하여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1시간 남짓한 1막이 끝나고, 2막은 왕위를 둘러싸고 로빈훗과 필립이 존 왕자와 길버트에 맞서는 내용을 담고있다. 전개 속도가 빨랐던 1막과 달리 2막에서는 이야기 진행이 다소 더디다. 모든 영웅담이 그러하듯 위기를 맞지만 결국에는 승리하는 구조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1막의 속도를 경험한 관객에게 2막은 이야기가 늘어지는 느낌이다.

또 왕용범 연출의 이전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로빈훗'을 보는 내내 기시감을 느낄 것이다. '삼총사'와 '잭더리퍼'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을 비롯하여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안무를 추는 장면은 지금 보고 있는 작품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한다.

   
▲ '길버트' 역의 박진우ⓒ 쇼홀릭

2막에는 악연인 길버트의 비중이 두드러진다. 존 왕자와 결탁하여 그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리처드 왕을 죽였지만 존 왕자가 자신을 위협하자 그는 서슴없이 왕자에게 칼을 겨눈다. 왕실 대부분 병력이 길버트의 손아귀에 있음을 알고 존 왕자는 허수아비 신세가 된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 마치 자신이 왕인 것처럼 행동하는 길버트는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아내 마리안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길버트가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부르는 넘버 '내가 사는 방법'은 그림자 춤까지 더해져 굉장히 인상적이다.

결말은 모두가 상상할 수 있는 그것이다. 로빈훗은 악당인 길버트를 죽였고, 필립은 왕이 되어 많은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그런데 기대치 않았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왕이 된 필립과 사냥을 하다가 발을 다친 로빈훗이 주변의 수녀원에서 잠시 신세를 진다. 필립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로빈훗은 수녀가 건넨 물을 마시게 되고, 의미심장한 수녀의 말을 듣게 된다. "매일 신에게 빌었어요. 내 남편을 죽이고 모든 재산을 뺏어간 그 사람을 죽여달라고" 수녀의 복장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마리안이었고, 그녀가 건낸 것은 독이 든 잔이었다. 결국, 로빈훗은 사랑했던 여자 손에 죽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짜 끝은 따로 있었다. 죽어가던 로빈이 다시 일어나 필립과 처음 만나던 때를 회상한다.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이 장면은 왕이 되겠다며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는 필립에게 로빈이 주먹을 날렸던 셔우드 숲의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로빈은 외친다.

"나라를 만들어 좋은 왕이 되고 싶거든 정치를 잘하는 놈에게 정치를 맡기고, 세상 이치를 잘 아는 놈들에게 법을 만들게 하고, 정직한 놈들에게 권력을 줘. 우리는 나라를 흔들고 권력을 쥐고 싶은 게 아니야. 우리가 원하는 건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 그것뿐이야"

이 대사는 왕용범 연출의 말대로 의도치는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과 겹쳐지며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더구나 대극장의 묘미라 할 수 있는 앙상블의 '떼창'까지 더해져 그 감동은 배가 된다.

한편, 반역의 누명을 쓰고 셔우드 숲으로 들어가 의적의 우두머리가 된 '로빈훗' 역에는 유준상, 이건명, 엄기준이, 철부지 소년에서 세상을 바로잡는 왕이 되고자 하는 왕세자 '필립' 역에는 박성환, 규현, 양요섭이 맡았다. 이외에도 서지영, 김아선, 조순창, 박진우, 서영주 등이 캐스팅되어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 뮤지컬 정보
   - 제목 : 로빈훗
   - 공연날짜 : 2015. 1. 23. ~ 2015. 3. 29.
   - 공연장소 : 디큐브아트센터
   - 음악감독 : 이성준 / 연출 : 왕용범
   - 출연배우 : 유준상, 이건명, 엄기준, 박성환, 규현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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