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신자유주의놀이: 빈의자'에 참여한 이와삼 트랙 B 단원들 ⓒ 극단 이와삼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촘촘한 만듦새로 무대 안에 우리 사회를 담아왔던 극단 이와삼이 다소 색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이와삼은 지금까지 주로 극단 대표이자 극작가 겸 연출가인 장우재의 희곡을 무대화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극단 내 프로젝트 그룹 '트랙B'가 구성돼, 단원들이 공동창작으로 연극을 만들고 있다. 이와삼 트랙B의 첫 작품은 오는 18일부터 26일까지 선돌극장서 공연되는 '신자유주의놀이: 빈의자'다. 

장우재는 최근작 '옥상 밭 고추는 왜'의 대사를 인용해, 현재 우리 시대는 '큰 엄지손가락에 짓눌리고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들은 어째서 '신자유주의'를 폭압적인 엄지손가락으로 지목하게 됐을까? 크고 작은 우울증을 겪고 있는 우리 세대의 모습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까?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돼야 하고, 그것이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을 억압하는 일을 너무도 많이 본다'는 그들은 '최적화의 역설'이 우리 인생에 침잠해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스터디를 바탕으로,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신자유주의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다음은 위의 질문들에 실마리를 제공할 연극 '신자유주의놀이: 빈의자'의 장우재 연출가와 황설하 배우가 함께 한 일문일답이다.

 

극단 이와삼 대표 장우재

이번 신작에서는 '신자유주의'에 관련된 연극을 한다고 들었다. 이와삼이 생각하는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 장우재(이하 장) : 최근작 '옥상 밭 고추는 왜'의 '동교'는 이런 대사를 합니다. 

"광자 아줌마가 진딧물을 손으로 잡고 있는 거야. 매일 매일. 그 많은 걸. 오늘 잡아도 내일 또 생기는 걸. 농사 끝날 때까지 …(중략)… 한번 잡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그냥 인생 자체가 잡는 거다. 진딧물을. 매일 매일. 근데 그, 사람을 뭔가가 죽였어. 커다란 엄지손가락이. 꾹 눌러서. 진딧물처럼."

그 커다란 엄지손가락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거대한, 혹은 우리에게 너무 스며들어서 인지하기 힘든 '신자유주의'이지 않을까 떠올렸습니다. 신중하게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구체적인 사례를 캐보자는 생각으로, 우리 안에 스며들어 있는 신자유주의를 체크해보기 시작했어요. 

그 시도에서,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 자신도 역설적으로 그 안에 갇혀 있다는 상황을 발견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황설하 배우가 자세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황설하(이하 황) : 연극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이야기입니다. 뭔가를 시도하고 싶어도 시작 전부터 빚더미에 쌓여 있어요. 구조적인 이유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게 된다 하더라도 거기서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지경에 다다르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게 됩니다. 먹고 살기 위해 하고픈 일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를 알아도, 벗어날 수 없는 괴로움. 그런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어요.

└ 장 :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평범하게 보이는 '나'가 있어요. 그 사람은 실은 모험을 즐기며 노마드(Nomad)처럼 살고픈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 칩시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자신의 욕망을 보여주고자 오지체험을 계획해요. 오지를 가기 위해선 북유럽을 들러야 되죠. 그럼 이제 북유럽을 가기 위해 첫 플랜을 세워야 돼요. 그러고 나서 그가 당장 해야 하는 일은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입니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란 걸 보여주겠어' 하면서도 비행기 값을 모으기 위해 평범하게 살아야 하고, 혹여 그 비용을 다 모았다고 해도 그 즈음에 뭔 일이 터지곤 합니다. 그럼 '이번만 넘기고 다시 계획대로 살아야지' 하면서 다시 아르바이트를 찾습니다. 자유롭고 싶은 욕망이 현실에서는 아르바이트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사실로 귀결됩니다. 이런 역설적 사례들을 얘기하고 싶어요. 

한편, 배우들도 작업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작업하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어', '(연극을) 즐기고 싶어'라는 마음으로 바뀌어요. 그렇다면 그에게 '하고 싶다'란 무엇일까요? 오히려 어떤 이미지, 욕망의 결정체로서 그걸 하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닌가 합니다. 이런 모습들, 곧 인간의 욕망을 아주 교묘하게 동력으로 삼는 일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죠. '할 수 있어', '청춘은 그런 거야' '조금씩 가다보면 얻게 될 거야'라고 말이죠. 그러나 미안하지만 '얻게 되는' 사람은 아주 소수입니다. 나머지는 이 트레인의 동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옛날에는 바퀴 하나로도 잘 달렸다면, 이제는 4개의 바퀴가 모두 있어야 굴러간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을 연극으로 얘기하고 싶어요. 연극인들만의 힘듦을 얘기하지 않고, 다양한 분들을 취재원으로 삼아 사회 곳곳에 스며든 그런 요소를 체크해보며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굉장한 일 같은데, 첫 시도이다 보니 어설프고 삐걱거릴 거예요. 그렇더라도 이것은 '해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이 보기에 낯설고 어설프게 느껴지더라도 말이죠. 우리가 잘해왔던 것만 하는 것은 다시 안전한 상태로 돌아가 '그것이 다'인 것처럼 얘기하는 건데,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설프더라도 꺼내놓고 진화시키는 데 힘을 써야죠. 검증돼 안전한 것을 공고히 하는 것은 젊은 극단이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황설하 배우

제목이 '신자유주의놀이: 빈의자'다. '신자유주의'와 '놀이'는 어떻게 엮을 수 있나?

└ 장 : 말을 하기가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우선, 우리는 말이 앞서는 걸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연극 만들 때, 특히 이런 공동창작에서는 말이 너무 앞서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한 것보다 계획이나 디자인이 앞서는 게 굉장히 조심스럽기 때문이죠. '신자유주의'에 대해 남들에게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우리만의 정의, 혹은 리서치가 충분하지 않다 생각해요. 

이번 작업에서 한병철의 '심리정치'라는 책을 많이 참고했어요. 가장 크게 눈여겨 본 것은 '최적화의 역설'입니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오히려 더 자기 자신을 예속화시켜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 신자유주의의 특징이라는 것이죠. 이번 작업은 '최적화의 역설'을 중점적으로 다뤄볼 생각입니다. 

└ 황 : 그리고 이 내용을 '놀이'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 장 : '놀이'로 접근하는 이유는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연극은 놀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삶에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겠어' 보다 '유령 같고 잡을 수 없는 것 자체를 가지고 놀아보자'인 거죠. 다윗 같은 우리가, 골리앗 같은 신자유주의를 툭툭 건드리며 약 올리면서 놀아보자는 거죠. 아마 상대는 꿈쩍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는 놀면서 '내가 이긴 걸까?'하면서 해보겠다는 것이에요.

'빈 의자'는 어떻게 표현되나?

└ 장 : 거창한 것 아닙니다. 투명한 의자를 무대 위에 올려놓고, 배우가 나와서 자신의 에피소드를 얘기합니다. 그러다 배우에게 '탁-' 막히는 순간이 오는데, 그는 그때 그 의자를 떠납니다. 그럼 다음 사람이 또 앉고, 떠나죠.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계속 존재하는 건 빈 의자뿐이에요. 이게 신자유주의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표상이죠.

└ 황 : 사람만 계속 바뀌죠. 앉아 있는 이 의자는 내 의자 같지 않고요.

└ 장 : 앉아 있다가도, 누가 올 것 같으니까 비켜줘야 될 것 같고, 빈 의자를 보면 앉고 싶다는 생각보다 '저기에 누군가가 앉았다 사라졌겠지'라는 생각도 들고요.

 

 

공연 작업 이전부터 신자유주의에 대해 세미나를 해왔다고 들었다. 세미나는 어떻게 진행됐나? 어떤 텍스트들을 참고했나?

└ 황 : 극단 내부에서 언제부턴가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연극화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처음부터 신자유주의를 공부하기 위해 세미나를 시작한 건 아니고, 공부하다보니 '경제 체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 체제가 뭘까' 하다가 '신자유주의'를 공부하게 됐습니다. 

공부하다 보니, 손에 잡히진 않은데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 강력한 기제가 있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다 한병철 교수님의 '심리정치'를 만났고, 김성구 교수님의 '신자유주의와 공모자들'도 함께 봤어요. 

└ 장 : 이반 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도 함께 봤습니다. 책 보면서 들어오는 게 정말 많았습니다.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에 나오는 대사 "아저씨, 우리가 지금 먹을 게 없어서 죽나요? 근데 왜 애들은 왜 자꾸 옥상에서 뛰어내리죠?"처럼, 32층 빌딩에서 하루 종일 일하느라고 걷는 맛을 못 누리는 것도 '현대화된 가난'으로 봐야 해요. 요새는 '배운다'는 말 대신 '학위를 취득한다'고 표현한다고 하더라고요. '누구한테 배웠니?'가 아니라 '어디서 학위 취득했니?'라 물어요. 이게 '가난'이라는 겁니다. 

또 재밌는 얘기는,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알아야 하고, 참여해야 하고, 그 과정을 다 공유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다보니 사회 전체적으로 정치를 잘하기 위해 매뉴얼을 구성하는 데 거대한 돈이 들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끼리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러다 몸을 움직여 연극하는 사람보다 예술경영 인력이 더 많아질 수 있겠다'고 말이죠. 우리가 연극을 연습하는 시간보다 지원서 작성하는 시간이 더 많아요. 이게 현대화된 가난 아닐까요. 웃긴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물론 이번도 재단의 지원을 받았지만 이 친구(황설하 배우)도 'e나라도움' 때문에 연습을 못하고 있어요. 이게 '신자유주의의 역설'입니다. 이런 현상을 알자는 게 우리 연극이고요.

└ 황 : 어느 한 재단의 문제는 아니고요. 한 번은, e나라도움 시스템 이용을 위해 교육을 받는데 부조리함이 느껴지더라고요. 관계자 분한테 물었어요. '도대체 이걸 배우들한테 시키면, 배우들은 극단에서 어떻게 시간을 쓰라는 거냐', '왜 이런 것들을 만드느냐'고요. 그분은 '저희도 원치 않지만,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모든 인간을 똑같은 인간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장 : 특정 대상에게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의 일부는, '그대만의 책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서로 얘기하자는 것입니다. 

└ 황 : 그렇지 않으면 자꾸 자기 탓하게 돼요. 경쟁에서 실패하고, 학위 취득하지 못하면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내가 못나서',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 라고 생각하게 돼요. 그래도 요즘은 '헬조선' 얘기가 나오면서 '내 잘못은 아닌 것 같다', '내 노력 부족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인식까진 왔지만, 우리는 그 이후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하는 지점을 조명하고 싶어요.

[문화 人] 이와삼 트랙B 장우재-황설하, "어설프지만 해볼 거예요, 빠따 맞는 기분으로" ②로 이어집니다.

keyy@mhnew.com 사진ⓒ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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