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워킹 홀리데이'는 오는 2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서 공연된다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문화 人] 이경성 연출, "인식 고립된 우리 사회, 그 근원을 찾아가보면" ① 에서 이어집니다.

이번 작업 또한 공동창작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첫 공연을 보고나서는 배우들이 무대서 진짜 하고픈 말을 쏟아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몇몇 배우의 경우, 프로그램북에 쓴 말이 관객의 입장에서 더 진솔하게 다가왔다.

└ 프로그램북에 쓴 말들은 원래 극에 포함되는 대사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무대에서 발화해버리니까 줄기들이 각양각색으로 뻗어나가더라고요. 마침 어제 그 얘길 했습니다. '비포애프터'는 구체적 사건을 자신과 연결 지음으로써 발화 방식을 구축했는데, 이번에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는 거대하고도 붙잡히지 않는 현실입니다. 이것을 무대서 얘기하려다보니, 배우 개인의 발화까지 다양하게 진행되면 층위가 산만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걸으며 실제로 봤던 풍경이나 느낌 위주로 대사를 짜보게 됐습니다. 그러다가도 수정하면서 배우 개인의 발화를 더 추가하기도 했고요. 

배우들의 '걸음'을 어떻게 관객들에게 감각적으로 다가오게 할 수 있을까?

└ 연습실에서 무대로 넘어올 때, 예상했던 효과들이 어그러졌어요. 구조적 문제일까 고민했지만, 몇 가지 미세한 것들을 바꾸니 괜찮아졌습니다. 동선이나 대사도 그렇고. 배우의 미묘한 발화 태도에도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수정하고 나니 어제 공연에는 관객들이 (작품) 안으로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개막 이후 직접 관객을 만나고 나니까 찾게 된 부분도 있었어요. 사실 '비포애프터'도 프레스콜과 첫 공연 이후, 관객들에게 연극만이 줄 수 있는 감각적인 부분을 찾은 적 있어요. 그 작품도 몇 번 수정하고 개막 첫 주가 지난 후에야 좋은 반응들이 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번 작업도 그런 디테일을 찾으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키와 드라마터그 전강희 씨는 따로 생각할 수 없는 한 팀 같다. 공동창작 과정에서 '드라마터그'의 역할은 어떻게 구축되나?

└ 일반 작업에서는 텍스트가 작업 초반부터 있으니 드라마터그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해 극의 구조를 같이 해석합니다. 그러나 우리 작업의 초중반에는 '어떤 스터디와 워크숍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여기서 드라마터그는 관찰자로서 스터디와 워크숍에서 중요하게 찍힐 키워드들을 봐주죠. 그리고 작업 막판에서는 여느 드라마터그들보다 훨씬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게 됩니다. 구조가 나올 때마다 계속 봐주거든요. 1차 구조부터 20차까지. 이번 작업은 23차까지 갔네요. 전강희 씨는 다른 드라마터그들보다 연습실 오는 횟수가 더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루 지날 때마다 바뀌는 공연들을 매번 봐야 하니까요. 

 

이경성 연출가

올 여름은 변방연극제 예술감독으로 아주 바쁘게 지낸 걸로 알고 있다. 어땠나?

└ 첫해라 그런지 많이 고전했습니다. 축제를 처음 맡아봤는데, 원하는 축제를 상상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에는 괴리가 있더라고요. (축제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예술감독은 기획자 역할이 요구되는 자리니까요. 실전 노하우가 없는 상황 가운데, 현장에서 바로바로 부딪히면서 배워야 할 게 많았어요. 다행히 좋은 스태프들을 많이 만나서 무리 없이 마무리했는데, 축제 프로그래밍에 대해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프로그래밍을 잘하려면 평소에 발품 팔아서 좋은 작품을 많이 보러 다녀야겠더라고요. 

그러나 저도 평소에는 창작자로 살다보니 다른 작업을 많이 보지 못하는 게 현실이네요. 아쉬워서 다음 작업에서는 발품 팔아 새로운 작업자들을 직접 찾으려고 합니다. 규모를 줄여서라도 '변방연극제'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보고 싶습니다. 첫해는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다음에 하면 훨씬 더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연극제는 늘 예산 관련 문제가 있습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은 늘 하고 있습니다. 많이 갚아나가고 있긴 하지만 축제에 빚이 많이 생겼어요. 축제가 끝나면 빚이 고스란히 축제사무국으로 돌아옵니다. 굉장히 열심히 일했는데 빚만 남았을 때의 허탈함이 있습니다.

그래도 축제가 20년 됐기 때문에 적게나마 꾸준히 지지하는 관객들이 있어요. 문제는 그 저변을 확대하는 부분이죠. '변방연극제'라는 이름 때문에 더 어려워하는 관객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미지를 버려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의 축제 형식은 바뀌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처럼 하는 건 다소 소모적인 것 같습니다. 초청 팀에게도 많은 돈을 주지 못하면서 공연을 올려달라고 해야 되니까요. 차라리 2박 3일 캠핑처럼 하는 방식도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지금까지의 변방연극제에서 성장한 아티스트들은 정말 많습니다. 저뿐 아니라, 윤한솔, 김현탁 연출가 등을 변방연극제가 처음 발굴했죠. 그런 플랫폼으로서의 의미는 뚜렷이 있지만, 이제는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녹록하지 않은 자리였을 텐데, 왜 선뜻 예술감독을 맡겠다고 결정했나?

└ 임인자 감독님께서 계속 하시기에 여의치 않은 상황이어서 걱정스러웠습니다. 차기 예술감독을 맡으려는 사람이 뚜렷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기에, 제가 나서지 않으면 축제가 없어질 것 같더라고요. 저는 그 동안 두산아트센터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운 좋게 지원 받아온 아티스트였기 때문에,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기회를 줄 플랫폼을 만드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해왔어요.

 

 

앞으로의 작업들

└ '워킹홀리데이' 작업 통해 새로운 화두에 들어선 것이기 때문에, 이 화두를 하나의 시작점으로 잡고 같은 맥락으로 여러 작업들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망대에 갔을 때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게 개성공단이었습니다. 전망대에서 보면 정말 가까이에 있어요. 개성공단에 갈 수 있는 기차역에도 갔는데 현재는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개성공단이 활발히 운영됐을 때, 북한 여성과 남한 남성들 사이에서 로맨스가 꽤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차단되며 이들 또한 생이별을 해야 했을 테지요. 다음 작업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러브스토리를 다뤄보고자 한다. 아주 개인적이고 사적인 게 사랑 이야기지만, 뭔가에 대한 상징으로 얘기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남북한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개성공단이라는 장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 얘기 통해 그 장소를 조명하고 싶습니다.

5년 정도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해왔다. 이번 작업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산과 함께하는 마지막 공연이다. 

└ 한창 제 언어를 찾고 있을 때 이 프로그램 제안을 받았어요. 제 작업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많이 됐던 프로그램입니다. 제일 좋았던 것은 한 작품 제작하는 것에 치중하기보다 저의 작업 과정을 계속 팔로우 해줬던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공연할 때도 두산 식구들이 어김없이 찾아 와서 공연에 대해 피드백을 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 작업에서는 어떤 연장선상으로 다룰지 맥도 짚어주고 말이죠.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은 공연을 제작해주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일정 기간 같이 고민하고 얘기해주는 파트너 같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될 다른 아티스트들은, 어떤 것도 개의치 말고 하고픈 것들을 맘껏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만큼 좋은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 그러나 실패를 너무 크게 두려워 말고, 하고픈 걸 맘껏 펼쳤으면 좋겠네요. 

keyy@mhnew.com 사진ⓒ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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