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아띠에터 박정기] 국립박물관극장 용에서 ㈜ 도토리컴퍼니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이인수 번역, 박명신 윤색, 강민재 연출의 <리어왕>을 관람했다.

강민재는 영국왕립연극학교(RADA)에서 연출전공, Central School Speech and Drama-연기 지도 및 코치 석사, 킹스 칼리지 런던영국왕립연극학교(RADA)-텍스트 및 공연학 석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국민대, 극동대, 서경대, 성결대, 청강문화산업대에 출강하고 있다.

연출작으로는 <자전거> <모토타운> <호스피스> <우르따인> 그 외의 다수 작품이 있고, 2017년 밀양여름연극제 <한여름 밤의 꿈>에 오베론으로 출연했다.

번역을 한 이인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에 출강중이다. <자유종> <우물>을 발표공연하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 <리어왕> 을 번역하고, <필로우맨>을 번역 연출하고, <히스토리보이즈> 그 외의 다수 작품의 드라마트루기를 했다.

윤색을 한 박명신은 <갈매기 <원 파인 데이> <괴물> 그 외의 다수 작품에 출연한 배우이자 교수다.

<리어왕(king Lear>)에 나타난 가치관의 갈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1550년대에서 1600년대 초까지의 영국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1601년 에섹스(Essex)백작은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지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직 후계자를 두지 못한 상황에서 전통귀족과 신흥귀족 그리고 중산계급은 1610년대에 이르러 상호간의 대립을 드러냈다. 특히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Spanish Invincible Armada)를 격퇴하는데 중산계급의 주도적 역할과 세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의회에서의 중산계급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타협과 균형이 깨지게 되었고, 이는 엘리자베스 사후 제임스 I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더욱 심해졌다.

<리어왕>이 집필된 시기로 추정되는 1604-5년경은 이런 정치적 갈등이 가치관의 분열과 결부됨으로써 영국과 전 세계에 대 혼란이 닥쳐올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작품 속엔 정치적 질서체계는 물론 인간과 세계를 연관시켜주는 종교적, 철학적 혼란까지 나타나고 있다.

1막에서는 리어왕의 비극적 결함이 드러난다. 그것은 곧 그의 통찰력의 결핍, 고집과 노망, 규정해 놓은 질서의 파괴 행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첨을 거부하고 물질적인 이익을 위해 사랑을 거래하기를 거절한 코딜러어와 코딜리어를 변호하는 켄트를 리어왕이 추방하는 것은 그가 진실을 직시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고,

이 때문에 리어왕은 받아 마땅한 불행을 겪게 된다. 그가 왕국을 분할하고 왕권을 이양하는 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왕권을 방기하는 것이며,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의무를 저버리는 질서파괴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리어가 왕관을 벗는 순간 중세적 위계질서는 무너져버린다.

그가 왕관을 벗고도 왕으로서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중세적 위계질서의 체계가 갖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인정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그는 광인이 되어 누더기를 걸치고 폭풍우 속을 헤매고 난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코딜리어는 이 극에서 기존 질서체계를 지탱해주는 경직된 형식의 한계를 제일먼저 깨달은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진심을 경직된 형식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들의 말을 흉내 내지 않고, 리어왕의 요구에 '아무 말씀도 드릴 것이 없다'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없다'라는 대답은 리어왕을 정점으로 하는 질서체계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붕괴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극적으로 보면 그녀는 불란서 왕과 결혼하여 영국을 떠남으로써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고 혼돈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질서체계가 대두 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상적 관념으로 존재하게 된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양식이 내용과 형식의 조화라고 하는 이상을 지향하고 있다면, 리어왕의 세계에서의 합당한 인간관계는 거너릴과 리건으로 대변되는 형식과 코딜리어로 대변되는 내용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가능한 것이 된다.

코딜리어가 영국을 떠나게 된 후, 거너릴과 리건은 통치권을, 에드먼드는 상속권을 위해 기존의 가치와 규범과 인륜을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다.

작가는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을 에드거와 올버니를 통해 이루어 나간다. 에드거가 극한적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삶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해 나가는가 하면, 올버니는 그와 같은 인간관계를 근거로 하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올버니는 극의 전반에는 에드거처럼 소극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사회가 혼돈 속에 빠져들어도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4막 2장에서부터는 전혀 다른 인물로 나타난다. 그가 자신을 '공명정대하지 않는 경우에는 결코 용기를 발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듯 그는 혼돈 속에 방황하고 있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분명한 판단기준과 공평한 안목을 갖춘 인물로 바뀌어 에드거와 함께 혼란된 질서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단원에서 코딜리어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 리어가 코딜리어와 화해하지만, 이미 두 사람은 더 이상 생존하지 못하고 생을 마무리한다.

역사란 끊임없이 경직된 기존질서체계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인간의 고통과 회생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면 ,<리어왕>은 그런 역사적 전환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혼돈과 그것의 극복과정을 냉철하게 탐색하는 극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는 커다란 건물이 마주보는 형식으로 무대 좌우에 벽이 세워지고 정면과 좌우 벽면에 통로가 만들어져 있다. 상수 쪽에는 위층 쪽에 테라스 형태의 단과 통로가 나 있다. 중앙에는 검은 휘장이 드리워지고, 후반에 휘장이 열리면 경사진 통로가 나타나고 감옥의 입구로 설정되거나 광야에서 들어오는 길로 설정된다. 광대의 설정이 탁월해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남성들의 의상의 검은 색조와 고풍스런 디자인이 눈길을 끌고, 리어와 코딜리어의 백색의상과 대조를 이룬다. 잔잔하게 스며들 듯 깔리는 음악효과가 기억에 남는다.

연극은 원작대로 전개된다. 도입에 킹 리어와 거너릴, 리건, 코딜리아의 세 딸이 등장하고. 연로한 리어는 딸의 자신의 대한 효성 심에 따라 국토를 나누어주려 한다. 맡 딸과 둘째는 마음에도 없는 말로 환심을 사는 것을 보고 진실한 막내딸 코딜리아는 거짓 없이 평소에 아버지에게 대하던 태도로 응답함으로 해서 리어의 분노를 사게 되어 추방당한다.

막내를 변호하던 충신 켄트백작도 마찬가지로 추방된다. 국토는 첫째와 둘째 딸에게 모두 분배된다. 그런 후 리어는 호위 병사들을 대동하고 두 딸에게 교대로 다니며 머물기로 했으나, 딸들에게 냉대를 받게 되자 폭풍우가 몰아치는 광야에서 두 딸을 저주하며 광란한다.

글로스터 백작이 적자를 의심하고 서자를 신뢰해 결국 파멸의 길로 향하다가 맹인이 된 후에야 진실을 깨닫게 되는가 하면, 프랑스 왕비가 된 코딜리아는 부왕의 참상을 듣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가지만 리어와 함께 포로가 되고 죽게까지 된다.

리어는 딸의 주검을 보고 슬퍼하며 충신 켄트 백작이 지켜보는 가운데 절명한다. 두 딸은 불륜의 사랑으로 신세를 망치고, 글로스터의 서자도 결국 악행이 드러나 적자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대단원에서 거너릴의 남편인 앨버니 공작이 왕위에 오르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안석환과 손병호가 리어, 손경원이 글로스터, 오대석이 켄트, 김훈만과 차은우가 에드가, 안창현과 유인혁이 에드먼드, 강경헌이 큰딸 고너릴, 이태임과 이은주가 둘째딸 리건, 정혜지가 코딜리어, 김평조가 광대, 배준성이 앨버니, 문대남이 콘월 공작, 김 진이 오스왈드 그리고 박진수, 윤준호, 남궁준영, 유건기, 정봄찬, 이건희, 진성웅, 윤무열, 김태훈, 홍달표, 이마리, 맹지영, 정윤성, 신현린, 장원철, 한충의, 박승환, 김수로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나름대로의 성격설정은 물론 일사 분란한 행동통일 등은 관객의 환호와 갈채를 받는다.

 

총괄프로듀서 이종섭, 제작PD 김태이, 무대디자인 김만식, 조명디자인 나한수, 작곡 톰, 의상디자인 김상희, 소품디자인 임효지, 분장디자인 정서진, 무술감독 진영섭, 조연출 이지은, 컴퍼니매니저 김민지 한 솔, 음향디자인 이기준, 무대감독 양대훈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기량과 열정이 제대로 드러나, ㈜ 도토리컴퍼니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이인수 번역, 박명신 윤색, 강민재 연출의 <리어왕>을 연출력이 감지되는 고수준 고품격의 격상된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공연메모
주 도토리컴퍼니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이인수 번역 박명신 윤색 강민재 연출의 리어왕
- 공연명 리어왕
- 공연단체 ㈜ 도토리컴퍼니
-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 번역 이인수a
- 윤색 박명신
- 연출 강민재
- 공연기간 2017년 11월 5일~26일
- 공연장소 국립박물관극장 용
- 관람일시 11월 22일 오후 3시

[글] 아티스트에디터 박정기(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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