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수상작은…. 누가 이 XX한테 영주권을 줬어? '버드맨'!"

잠깐 귀를 의심했다. 작품상 발표를 알리는 순간에 시상자 숀 펜의 입에선 거친 욕이 나왔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의 주인공은 '버드맨'이었다.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서로 욕을 주고받는 절친인 사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농담이었다.

'버드맨'은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을 받으며 4관왕에 올라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승자가 됐다. 슈퍼히어로인 '버드맨'으로 할리우드 스타 대열에 올랐지만 잊힌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이 꿈과 명성을 되찾기 위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도전하게 된다는 내용은 아카데미 협회의 마음을 완벽하게 홀렸다. 과연 영화의 어떤 맛이 아카데미 협회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배트맨'은 잊어라" 마이클 키튼의 인생 전환점
마이클 키튼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는 단연,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이다.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새로운 배트맨이 등장하기 전까지 '배트맨'의 이미지는 마이클 키튼이 먼저였다. 그의 인생과 '버드맨'은 일맥상통한 부분이 크다. 마이클 키튼은 '배트맨' 이후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거쳤으나, 팬들에게 각인시켜줄 수 있는 한 방은 없었다. 그가 연기한 '버드맨' 속 '리건 톰슨'도 마찬가지다. 그는 1992년 찍은 '버드맨 3'을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버드맨'으로만 남겨진 채 잊힌 인물이다. 그가 등장한 마지막 배트맨 작품인 '배트맨 2' 역시 1992년 나온 작품이다.

   
 

그가 연극을 할 때도 사람들은 '버드맨'을 먼저 이야기하며, 그가 속옷 바람으로 시내를 걸어 다닐 때도 사람들은 "'버드맨'이다!"를 외치며 동영상을 찍는다. 그의 감칠맛 나는 연기는 자신의 인생을 끌어서 가져왔다. 비록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런던·시카고 등 유수 비평가 협회 남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만으로도 그의 연기 인생에서 최정점에 올랐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그가 보여주는 롱테이크 씬 연기는 관객들을 영화로 몰입해주게 한다.

"신의 카메라 무빙" 카메라 워킹과 드럼 연주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 감독은 2년 연속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을 받았다. 이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래비티'에서도 보여준 초반 우주 재난으로 이뤄지는 흥미로운 롱테이크 씬이 그대로 '버드맨'에서 이어졌다. 루베즈키 감독은 대본 15장 분량을 한 컷처럼 보이기 위해 모든 촬영 청사진을 만들었고, 카메라 리허설을 진행했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면서도 마치 연극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연극 무대의 뒷모습과 관객들이 입장하는 곳까지 모든 부분을 따라가는 장면들은 2D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입체감을 느끼게 했다.

재즈뮤지션 안토니오 산체스의 드럼 연주 역시 극의 몰입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위플래쉬'가 충격에 가까운 '드럼씬'을 선보였기 때문에 아카데미의 포커스가 그쪽으로 쏠린 감이 있지만, '리건 톰슨'이 극장을 걸어 다닐 때 나는 드럼 소리는 그의 신경적인 반응을 묘사하고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인트로 부분과 엔드 크레딧 초반에 배우와 감독, 스태프들의 이름을 재치있게 음악과 싱크로를 맞추는 장면은 영화의 본격적인 장면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이었다.

"이것이 문화적 말살이다" 현재의 영화·평론을 돌아보는 비판 능력
이 작품에선 슈퍼히어로물을 비판하는 장면들이 꽤 나온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 제레미 레너가 '어벤져스'에 출연하는 장면을 비꼬는 듯한 표현들이 등장한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슈퍼히어로물 인기에 편중됐다는 현재의 세태를 풍자했다. 심지어 '문화적 말살(Cultural Genocide)'이라는 대사도 나온다. 최근 마블과 DC 코믹스로 양분되는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할리우드를 주도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을 비꼬는 촌철살인 같은 멘트들도 영화 속에 등장한다. "사람들은 철학 가득한 작품보다 유혈이 낭자한 액션물을 더 좋아한다."

또한, 이 작품에선 기자들과 평론가를 비판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할리우드의 돈만 보는 속물들보다 브로드웨이의 연극 무대가 최고라고 자부하며 있어 보이는 척을 보이는 저널리스트. '리건 톰슨'이라는 배우 자체가 싫어서 아직 연극 자체를 본 적도 없으면서 선입견 때문에 연극에 대한 악평을 쓸 준비하는 평론가. 그리고 흔히 볼 수 있는 '충격'이라는 기사 제목을 써가면서 당장 조회 수를 올리고자 하는 타블로이드 기자들까지 이 작품에선 비판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모두까기 인형'처럼 현재의 모습을 비판하는 이 작품은 사이다를 마시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시원했다.

   
▲ '샘' 역의 엠마 스톤

"김치 냄새와 짱개" 인종차별은 어디에나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 국내 여론이 시끌시끌했다. 극 초반부에 '리건'의 딸인 '샘'(엠마 스톤)이 '리건'에게 줄 꽃을 사오라는 장면에서 "모두 엿 같은 김치 냄새가 난다"(It all smells like fxxxing kimchi)는 대사를 말한 것이다. 엔드 크레딧에 'Korean Grocer(한국인 그로셔)'라는 이름이 나오는 걸 보면 분명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발생한 대사였다. 하지만 이는 '샘'의 캐릭터 성격 자체가 말조심을 전혀 하지 못하고, 생각한 대로 툭툭 내뱉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우리 역시도 김치 냄새가 좋은 향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샘'의 캐릭터 성격상 그런 욕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 엠마 스톤은 '김치'의 발음을 정확히 구사한다. 여기에 두 배우가 '김치'를 아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 김치가 세계적인 K푸드로 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실제로 '샘'을 연기한 엠마 스톤은 불고기를 즐겨 먹는다고 말할 정도로 한식에 관심이 많다.

끝으로 우리는 은연중에 자신도 모르게 인종차별적인 비하 발언을 하고 있다. "점심으로 '짱개'를 시켜 먹자", 지나가는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에게 "깜둥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그걸 염두하면 이번 버드맨 '김치 냄새' 논란은 마무리될 것 같다. 영화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작품이 발언 하나로 국내에서 악평을 받는 것이 다소 아쉽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