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아띠에터 박으뜸나리 artietor@mhns.co.kr 서울대 디자인학부, 한예종 조형예술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 팟캐스트 '상수약국'에서 문화·예술의 다양한 해석 소화를 돕는 독한약 처방 전문 약사 '독사'다. 독서토론 '리딩홀'을 운영한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예술 분야에 발을 들여 놓기 전에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얼마나 재능이 있는가, 얼마나 하고 싶은가가 아닌, 과연 '돈을 벌지 않고도 괜찮은가?'다. 대부분이 질문에서 여부가 갈리게 된다.

대학 때 전공을 예술 분야로 선택하였더라도 서른 즈음에 부업을 시작하거나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예술계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현실적 빈곤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예술을 하면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고, 생존마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농담처럼 예술계에 종사하는 대부분이 '연봉 300만 원' 정도를 번다고 하는데 실제 궁핍한 현실 속에 사는 예술가들이 다수이고, 이들의 생존은 심각하게 위협받지만 어떠한 구조적 안정망도 없는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올해 빈곤층으로 인식하고 생활이 어려운 일부 예술가 생활비 100만 원 지원을 시작하였으나, 일각에서는 본인이 선택한 길이니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놀고먹으면서 돈을 지원받으려고 하나, '개나소나 예술하겠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예술에 대한 대중적 인식 부족과 예술이 우리 사회의 인식에 직업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함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예술가들이 가난한 이유를 네덜란드 경제학자이자 시각예술가인 한스 애빙은 "예술은 좋으니까 작가라면 무조건 헌신해야 한다는 예술 분야의 '에토스'가 머리에 너무 강하게 박혀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예술은 숭고한 분야이니 돈을 따지지 말고 헌신하도록 예술가 스스로뿐만 아니라 사회가 요구한다는 것이다.

   
▲ ⓒ 영화 '모딜리아니'

여기에는 치명적인 모순이 존재하는데, 첫째, 예술은 가치가 높은 것이기 때문에 예술가는 헌신해야 한다. 둘째, 어떤 예술은 가치가 높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팔려나간다. (대부분 생산자인 예술가와 상관없는 이들이 작품을 사고팔며 돈을 번다.) 즉 예술가의 예술 생산 현장에서는 헌신을 요구하고, 예술가의 손을 떠난 시장에서는 그 가치가 엄청나게 부풀려져 거래되는 모순적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적 가치에 대한 이중적 잣대는 예술가를 배고프게 하고, 예술의 가치를 투자상품으로 전락하게 하여 훼손하고, 더 나아가 예술의 원래 가치와 상관없는 자본 논리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술도 예술이기 이전에 '노동'이다. 예술적 가치이기 이전에 직업이며, 직업은 노동을 통해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하며, 예술 노동도 이 기본 범위에서 벗어나 소외돼서는 안 된다. 한스 애빙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들이 터무니없이 낮은 보수를 감내하면서 예술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사고방식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예술가들 스스로도 예술이 정당한 노동 행위임을 인지하고 스스로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착취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인식하고 더 늦기 전에 예술가 스스로와 예술계 전반의 의식변화,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행정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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