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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고선웅 연출과 국립극단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막을 내렸다. 연일 매진 세례와 함께 지난 19일에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돼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한편, 지난 13일날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재연을 올린 극단 해를보는마음(이후 극단 해보마)의 '조씨고아'가 여전히 공연되고 있다.

11월 한 달 동안 연극계는 '조씨고아'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 두 편의 연극은 기군상의 '조씨고아'라는 원작을 동일하게 두고 있다. 원작의 스토리는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연극은 텍스트(글)로만 이뤄진 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이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만의 연출력이 돋보이기 마련이다. 같은 원작을 두고 두 작품은 어떤 차이를 보였는지 비교해보자.

1. 노련 vs. 패기

   
극단해를보는마음의 '조씨고아' 공연사진 ⓒ 극단해를보는마음


캐스팅에서 두 작품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국립극단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장두이, 故임홍식, 이영석, 유순웅 등의 원로 배우들이 무대에 등장해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연기했다. 그러나 극단 해보마의 조씨고아는 혈기왕성하다. 노인인 공손저구와 조순 역에 젊은 배우 주창환과 황석용이 캐스팅됐다. 게다가 국립극단에서는 연로한 할아버지로 나왔던 황제 역할(이영석)이 극단 해보마의 작품에서는 어린 황제 역할(전창근)로 등장했다.

 

   
국립극단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사진 ⓒ 국립극단

작품 캐스팅 분위기와 맞물려 연출가들의 이력에도 눈길이 간다. 국립극단의 작품은 '올해의 연출가상'으로 선정된 고선웅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다. 고 연출이 이끄는 극공작소 마방진은 올해가 창단 10주년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제는 중견 연출가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연출가다. 반면, 극단 해보마를 이끄는 황준형 연출가는 올해부터 'AYAF(차세대예술가지원사업)'을 받고 있는 젊은 연출가다. 황 연출은 대학 시절 다양한 수상경력을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다. 전반적으로, 국립극단의 작품은 노련한 '조씨고아'를, 극단 해보마의 작품은 패기 넘치는 '조씨고아'를 선보이고 있었다.

2. 콘트라베이스 단 한 대 vs. 동서양 라이브 밴드

 

   
국립극단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사진 ⓒ 국립극단

더욱이 눈길이 가는 것은 연극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밴드의 구성이다. 국립극단의 작품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한 명을 무대 왼편에 배치했고, 극단 해보마는 신디와 북, 해금으로 구성된 라이브 밴드를 무대 뒤편에 배치했다. 음악을 중요시하는 뮤지컬과는 달리 연극에서는 라이브 연주로 배경음악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연극에서도 물론 라이브 연주를 구성하는 경우는 꽤나 있지만, 연극계 전반을 차지하는 공식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라이브 연주를 통해 고통스러웠던 복수의 세월과 복수심을 품은 인간의 고뇌를 더 애절하게 표현했다.

 

   
극단해를보는마음의 '조씨고아' 공연사진 ⓒ 극단해를보는마음

라이브 연주를 기획했다는 점에서는 두 연극이 공통점을 보이고 있지만, 악기의 구성과 배치는 매우 달랐다. 국립극단은 조씨 가문의 불행과 그 누구보다 험난한 세월을 견뎌냈던 정영, 그리고 장성한 조씨고아의 복수가 이뤄진 이후까지 비극과 희극을 오가는 인생사를 콘트라베이스 단 한 대의 선율만으로 표현한다. 낮은 음역을 대표하는 콘트라베이스의 선율은 고 연출 특유의 유쾌한 연출이 드러나는 부분에서도, 여전히 극 전반의 무게감을 잡고 있었다. 반면, 극단 해보마는 라이브 밴드가 신디, 북, 해금 등으로 이뤄져 있다. 동서양의 악기가 고루 섞여 있는 밴드는 웅장하거나 무거운 느낌의 배경음악 대신, 애절하고 가엾은 조씨고아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상황을 표현한다.

3. 복수 vs. 의리

 

   
극단해를보는마음의 '조씨고아' 공연사진 ⓒ 극단해를보는마음

같은 원작을 토대로 각색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두 연극은 다른 방점을 찍는다. 복수냐, 의리냐, 두 작품은 다른 결말을 통해 그 방점을 표현한다. 국립극단의 조씨고아는 복수를 감행한다. 20년 간 의부로 알고 지낸 도안고를 죽이기까지 그는 여러 번 의심을 하지만, 정영의 결연한 의지와 상세한 설명 덕분에 그는 복수를 감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극단 해보마의 조씨고아는 복수를 끝끝내 실행하지 못한다. 그는 의부 도안고와 검을 겨루며 싸우기까지 하지만, 결국 도안고를 찌르지 못하고, 도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여기서 고아는 "원한이 원한을 낳고, 죽음이 죽음을 낳습니다. 제가 진정 원수를 갚은 것입니까?"라 절규하며 복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국립극단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사진 ⓒ 국립극단

'조씨고아'라는 이야기는 결국 '복수'와 함께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인 '의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여기서 해보마의 연극은 복수를 실행하지 못하는 고아를 보여주며, 고아를 살리기 위해 희생됐던 인물들을 다시 비추며 '의리'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나 국립극단의 고아는 '복수'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서도 의리와 말의 중요성은 충분히 언급되지만, 결국 고아의 복수는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복수가 실현된 이후 인생 전반을 돌아보는 정영에 포커스를 맞춘다. "인생은 짧은 꿈"이라고 말하는 그는, 결국 대단하고도 보잘것없는 인생을 뒤돌아본다.

두 연극은 같은 원작을 가지고도 전혀 다른 연극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수많은 각색으로 꾸며진 고전들을 여전히 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의 원작을 가지고도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고전이 가지고 있는 힘이며, 같은 연극을 보더라도 매번 다른 감동을 만드는 연극의 힘일 것이다. 고아가 복수를 했든, 하지 않았든, 두 연극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생은 짧다"는 것 아닐까. 짧은 인생 동안 복수를 하든, 하지 않든 어떤 결말을 추구하느냐는 개개의 선택으로 남겨져야 할 몫이다. 다만, 인생을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하고 유익하게 꾸며갈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의 인생은 '짧기' 때문이다.

"금방이구나, 인생은. 부디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고 연출의 연극 마지막 대사처럼 모두 부디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바란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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