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조선왕실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임오화변'. '임오화변'은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조선왕조에서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비극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아버지 '영조',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 그리고 영조의 세손인 '이산(훗날 정조)'에 대한 이야기는 수많은 작품에 등장했다. 올해만 하더라도 최근 종영을 한 SBS 드라마 '비밀의 문'부터 올해 4월에 개봉한 영화 '역린' 등이 이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 보면 1988년 방영된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 편에서 최수종이 '사도세자'를, 최명길이 '혜경궁 홍씨'를 맡아 열연했다.

이처럼 수많은 작품의 단골 소재의 원천 중 하나인 '한중록'은 1795년인 정조 19년 '혜경궁 홍씨'가 지은 회고록이다. 자신의 출생부터, 유년 시절, 9살에 세자빈으로 간택된 사연부터 '사도세자'가 당한 참변의 진상 폭로 등이 기록됐다.

   
 

이러한 역사적 인물의 정계 야화이자 훌륭한 여류문학 작품이기도 한 '한중록'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대본으로 만든 연극이 '혜경궁 홍씨'다. '혜경궁'(김소희)의 회갑을 맞아 '정조'(이기돈)는 화성행궁에서 성대한 진찬례를 준비한다. 잔칫상에 오른 '혜경궁'은 자신의 옆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한편, '정조'는 그 진찬례를 빌어 '사도세자'(백석광/김하영)를 장조로, '혜경궁'을 헌경왕후로 추존하겠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홀연히 '사도세자'의 혼령이 나타나 비어있는 자리에 앉고, '혜경궁'은 그를 바라본다.

그날 밤, 진찬례를 마친 '혜경궁'이 침소로 들어간다. 어릴 때부터 가려움증을 달고 살아온 '혜경궁'은 상궁에게 등을 긁어달라 하지만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이때 '사도세자'가 나타나 그녀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며 장난을 친다. 그러다 '영조'(윤여성)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사도세자'는 놀라 자리를 피한다. '혜경궁'은 급히 다홍색 호롱박치마를 찾아 입는다. 이때부터 시점은 '혜경궁'이 입궁해 '영조'가 궁궐의 여자로 지켜야 할 책무를 알려주는 때로 돌아가게 된다.

   
 

'혜경궁 홍씨'는 지난해 한국연극평론가 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을 수상하는 등 평단의 찬사를 얻어낸 작품이다. 2013년 '혜경궁 홍씨'가 이윤택 연출의 극적 중심 위주의 진행이었다면, 지난해 레퍼토리 무대에선 '혜경궁'의 일생과 심리변화뿐 아니라 당시의 세 남자의 갈등에도 초점을 부여했다.

'영조', '사도세자', '정조'의 관계와 갈등에도 상당한 부분을 할애한 것이다. 물론 그 장면에는 '혜경궁'이 무대의 한 부분에 항상 포함돼있다. "작년에는 '혜경궁 홍씨'가 축구로 따지자면 원톱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했다면 이번에는 나머지 인물들에게 개성을 더 부여했기 때문에 이 세 남자의 대비를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이윤택 연출은 설명했다.

이 작품이 단순히 정치 싸움에 휘말리는 한 여자의 운명을 다룬 것이 아님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가족 간의 관계와 대인 관계 문제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인생과도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 작품은 회전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과거로의 회상이 진행되는 장면 등 여러 장면에서 회전 무대가 돌아간다. 때로는 배우들이 직접 그 회전을 시키면서 열연을 펼치기도 하고, 회전하는 사이에도 계속 무대의 바깥에선 연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치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간 '혜경궁'의 사연이 고스란히 무대에도 적용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혜경궁 홍씨' 역을 맡은 김소희의 열연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2013년 초연 당시에도 '혜경궁 홍씨'를 맡은 바 있기 때문에 올해도 복잡한 내면을 입체적으로 훌륭히 소화했다. 특히 어린 소녀부터 노년의 '혜경궁'까지 모든 나이의 연기를 소화해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제14회 김동훈 연극상' 수상자의 위엄을 충분히 보여주는 내공을 선보였다.

여기에 이순재(MBC 드라마 '이산') 등 훌륭한 배우들이 맡은 바 있는 '영조' 역엔 올해 '2인극 페스티벌' 공로상을 받은 연극계의 원로인 윤여성이 연기한다. 또한 '정조'의 외조부인 '홍봉한'엔 역시 연륜이 빛나는 정태화가 맡아 작품의 품격을 살렸다. 원로 배우들이 확실한 기틀을 잡아준 덕분에 이들과 같이 중심축을 잡아줘야 하는 젊은 배우들(이기돈의 '정조', 백석광/김하영의 '사도세자')이 활력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 연극 정보
   - 제목 : 혜경궁 홍씨
   - 공연날짜 : 2014. 12. 16. ~ 2014. 12. 28.
   - 공연장소 :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 작·연출 : 이윤택
   - 출연 : 윤여성, 김소희, 정태화, 박현숙, 황석정 등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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