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만 받던 신데렐라가 왕자님과 사랑에 빠졌을 때, 당신이 뭣도 모르는 어린이였음에도 설레지 않았는지. 어른이 돼서 다시 읽어보면 유치하다며 손사래 칠지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게 된다.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의 원작 격인 동화.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동화는 언제나 우리에게 설렘과 희망을 선사한다. 동화의 매력이 대체 무엇이길래 어른들을 언제나 '어른이'로 만드는 것일까?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란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외모만 잘난 사람에게 밀리는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하고, 동화 같은 사랑은커녕 단순한 연애조차 포기하게 하는 현실 속에서 동화세계는 그림의 떡 그 자체기 때문. 그런데 이들에게 "특별한 게 없어도 인생을 사랑하라"는 말을 건네는 남자가 있다. 상상의 나래에서 빠져나와 허무해 하는 사람들에게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는 이는 다름 아닌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의 듀티율이다.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 누군가에겐 꿈의 직장일 수도 있겠지만 듀티율에겐 지루한 일상일 뿐이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월급은 나온다는 다른 직원들 틈에서 나름대로 고군분투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특히 불이 모두 꺼진 사무실을 홀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끼는 쓸쓸함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게 주변에서 당장에라도 찾을 수 있는 '보통'의 남자였던 듀티율에게 어느 날 갑자기 벽을 뚫는 능력이 생긴다. 자신이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단 걸 알게 된 듀티율은 이를 계기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상사의 말에 아무 말도 못 하던 듀티율은 점차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닫혀있는 빵 가게에서 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평범하던 듀티율이 동화 속 왕자님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왕자님에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고난을 헤쳐 괴물에게서 공주님을 구해주는 것. 폭력적인 남편 때문에 거의 감금되다시피 한 이사벨이 바로 그 공주님이다. 이사벨이 사형당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구해준 듀티율에게 반하는 건 당연지사. 이제 듀티율은 특별한 능력과 사랑하는 공주님, 자신을 떠받드는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갖춘 '완벽남'이 됐다.

 
동화 불변의 법칙, 바로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벽을 뚫는 남자'는 보통의 동화와는 조금 다른 결말을 택했다. 사랑의 힘으로 듀티율의 능력이 치료된 것. 그런데 하필 듀티율이 벽을 지나는 순간 그 힘이 발휘돼 벽 안에 갇히게 된 것이다. 이제 막 이사벨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시점이라 당혹스럽기만 한 결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듀티율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우연히 얻게 된 능력으로 마을의 영웅이 되고 이사벨과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요즘 흔히 말하는 '금수저'와 다를 게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듀티율은 보며 관객들은 과연 감동을 하고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당황스럽긴 하지만 벽 속에 갇혔어도, 특별한 게 없어도 인생은 아름답다 외치는 쪽이 훨씬 설득력 있다.

난 그저 보통 남자 성실한 공무원
소박한 하루하루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
장미에 물을 주고 우표 수집을 하고
대단할 건 없다 해도 괜찮은 내 인생
아름다운 인생이여

다만,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알겠으나 '송스루'란 특성과 잘 결부시키지 못한 점은 아쉽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극을 이끌다 보면 필연적으로 이야기 흐름에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다. 대사나 애드립으로 그 구멍을 채울 수 없으니 오롯이 연출의 힘을 빌어야 하는데 이번 '벽을 뚫는 남자'에서는 그 힘이 다소 부족했다. 특히 듀티율이 소심남에서 마을의 영웅으로 변모하는 장면에서 심경의 변화가 관객에게 와 닿지 않아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었다. 이사벨과 사랑에 빠질 때도 마찬가지라 듀티율이 실은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이야기를 전달하는 힘에서 아쉬움이 느껴진 건 사실이다. 소심남 듀티율을 잘생기고 키도 큰 배우 유연석이 맡아 싱크로율이 떨어진다는 웃픈 점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벽을 뚫는 남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 느껴지기에 몇몇 아쉬운 점이 다소 상쇄된다. 위로가 필요하다면, 아니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듀티율을 만나러 몽마르뜨 언덕으로 가보자. 평범한 사람이라 행복한 점을 분명 발견할 수 있을 테니.

[글]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이우람 기자 pd@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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