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놀땅의 안톤 체홉 작 최진아 연출의 벚나무 동산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안톤 체홉(1860~1904)은 러시아작가다. 단편소설의 선구자요 대가인 체홉의 단편집 한 권은 삶의 양식이 되기에 충분하다. 작품의 소재도 러시아 농민들의 삶이나 공무원들의 고생부터 말 도둑, 심지어는 추리소설도 집필했다.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자 의대생이었던 체홉은 푼돈이라도 벌 목적으로 단편소설을 써서 출판사에 보낸 원고가 호평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가 된다. 엄청난 수의 단편 소설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1886년에는 무려 116편의 단편을 썼고 1887년엔 69편을 썼다. 체홉의 소설은 900여 작품에 이른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단어수로 원고료를 주었기 때문에,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그 외의 소설가들은 분량이 굉장히 길었는데, 체홉은 반대로 간결하면서도 흥미로운 글을 썼다.

체홉 소설보다는 극작가로서의 명성이 더 높다. 러시아 근대문학에서 체홉을 소설가보다는 극작가로 칭한다. 부인 또한 잘나가는 모스크바 예술극단의 여배우였다.

1904년 1월, 자신의 새 연극 <벚꽃 동산>이 초연될 때 그도 무대에 나와서 인사를 했는데 그의 창백하고 빈사의 백조 같은 모습에 관객들은 모두 "제발! 안톤 체홉을 병원으로 보내시오!" 라고 소리를 질렀고, 결국 체홉은 비틀거리다 쓰러진다. 곧 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고 시골에서의 요양생활을 하면서, 체홉은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여섯 달도 못 되어 1904년 7월 2일 밤에 갑자기 고열로 신음하며 "난 죽는다!"하고 소리친다. 의사가 달려와 진료를 한 후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 가는 길에 포도주를 주도록 하세요." 이 말에 아내는 울기 시작했고 결국 마지막으로 포도주를 입에 머금은 그는 미소를 지으며 유언을 남긴다. "오랜만에 마셔보는 포도주인걸...맛이 좋아..." 그리고는 눈을 감고 4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다. 안톤 체홉은 톨스토이가 무척 아끼던 후배였기에 그가 죽었을 때 몹시 슬퍼했다고 전한다.

<벚꽃동산>은 1960년대부터 국공립극단을 비롯해 각 극단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이다. 1967년 극단 광장의 이진순 연출의 <벚꽃 동산>은 명 연극으로 기억된다. 충무로 연극인회관에서 1980년대의 이원복 연출로 공연한 <벚나무 농장>도 기억에 남는다. 2010년 한·러 수교기념 연극 <벚꽃동산>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러시아 연출가 지차트콥스키의 연출로 공연했을 때, 기존공연을 답습하지 말고,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말은 마음에 와 닿는다. 2015년 4월 서울연극제 미래야 참가작 극단 마고의 박연주 연출 <벚꽃동산, 진실너머>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2015년 5월 극단 애플씨어터의 전훈 번역·연출의 <벚꽃동산>은 탁월한 공연으로 기억된다. 2015년 8월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 고려대학교 개교 110주년 기념공연으로 안톤 체홉 작, 양윤석 번역, 박춘근 윤색, 이 곤 연출의 <벚꽃동산>도 기억에 남는다.

영화로는 1999년 키프로스, 프랑스, 그리스의 합작영화로 미할리스 카코지아니스(Mihalis Kakogiannis)가 제작·감독하고, 샬롯 램플링 (Charlotte Rampling) 라녭스까야 역, 앨런 베이츠 (Alan Bates) 가예프 역, 카트린 카틀리지 (Katrin Cartlidge) 바랴 역, 오웬 틸 (Owen Teale) 로빠힌 역, 투스카 버겐 (Tushka Bergen) 아냐 역, 잰더 버클리 (Xander Berkeley) 에삐호도프 역, 그리고 제라드 버틀러 (Gerard Butler), 앤드류 하워드 (Andrew Howard), 멜라니 린스키 (Melanie Lynskey), 이안 맥니스 (Ian McNeice) 등이 출연한 <벚꽃동산>이 명화로 기억된다.

   
 

극단 놀땅의 무대는 배경에 커다란 화폭에 벚꽃이 만발한 그림 한 폭이 자리를 잡았다. 이 그림을 출연자들이 떼어서 객석 가까이, 또는 제 자리로 이동을 시키며, 극적 분위기에 맞춰 현수막처럼 흔들어댄다. 초등학생들의 작은 나무 걸상 한 개가 무대중앙에 비치되고, 긴 식탁이 중앙에 가로 놓인다. 무대장치를 책장처럼 제쳐 변화를 주고, 무대 하수 쪽에 정문이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고, 출연자들의 등퇴장 로가 된다. 백년이 되었다는 작은 장이 소개가 되고, 중간에 소형선박 형태의 조형물을 이동시켜 들여오기도 한다. 장면변화에 따라 장롱, 나무널판, 나무판자로 무대 전면을 가려 주택폐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주인공 여인의 백색의상이 관객의 눈길을 끌고, 주인공 오라비의 정장도 제격으로 느껴진다. 통기타, 꽃, 나뭇가지, 권총, 술잔이 담긴 쟁반에 이르기까지 소품 설정도 극과 어울린다.

연극은 도입에 로빠힌과 하녀 두나샤가 여지주 가족 몇몇이 집으로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드디어 백색의상차림으로 미모의 여지주와 회색정장차람의 훤칠한 오라비 그리고 어여쁘고 귀여운 막내둥이 딸이 등장해 5년 만에 벚꽃동산에 자리 잡은 집으로 돌아왔다며 행복해 한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학생 의자관련 이야기를 하며 그 의자에 앉기도 하며 즐거워하다가 주변 호수에 빠져 죽은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와락 눈물을 쏟기도 한다. 농노에서 자유의 몸이 된 이 집의 노복도 등장하고, 이웃에 거주하는 인물도 등장해 각각의 성격설정과 개성적 연기로 극을 이끌어 간다. 그 중에서 아버지 대까지 농노였으나, 농노해방으로 이제는 굴지의 기업가로 변신한 로빠힌이 여지주에게 8월에 경매에 붙여질 이 벚나무 동산을 다른 용도로 변용할 것을 건의하지만, 여주인공과 오라비의 귀에는 당나귀 귀에 코란 읽기나 마찬가지다. 가족들은 그저 별장이 경매로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모습들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장면이 바뀌면 집안 하인들의 대화로 극이 시작되는데, 각자의 성격이 하나하나 노출된다. 이어서 여지주의 깊은 사연들이 소개가 되고, 여지주는 큰딸 바랴가 로빠힌과 맺어지기를 바란다. 용돈마저 궁핍한 판에, 행인인지 시위대인지 확실하지 않은 일행에게 여지주가 마지막 남은 금화를 쥐어주자, 어머니의 행동에 큰딸 바랴는 버럭 화를 낸다. 그러는 중에도 막내둥이 아냐는 평생 대학생 행세를 하는 대머리 노총각에게 연정을 느끼고 다가간다. 그들이 등장할 때 함께 이동시켜 들어오는 소형선박 조형물은 관객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막내둥이와 평생 대학생 노총각은 서로 사랑하며 밝은 미래를 같이 꿈꾸는 모습에서 장면전환이 이루어진다.

다음 장면은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는 분위기 속에서 분주한 시작된다. 여지주의 오라비는 로빠힌과 함께 경매장으로 갔다는 설정이고, 여지주는 벚나무 동산이 경매로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초조하게 경매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상황에 여지주와 평생 대학생 간의 갈등도 노출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드디어 벚나무 동산이 경매로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러나 경매장으로 간 오라비와 로빠힌은 시각이 지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저녁 늦게 두 사람이 돌아온다. 오라비는 지쳤다며 침실로 들어가고, 로빠힌은 만취상태로 돌아와 자신이 벚나무 동산을 샀다며 경매에서 엄청난 가격으로 낙찰된 경위를 들려주고 기뻐하는 모습과 함께 퇴장한다. 여지주는 낙담과 함께 울음을 터뜨리고, 막내둥이가 다가와 엄마를 위로하고, 자신의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마무리가 된다.

대단원은 여지주의 가족들과 하인들이 모두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여지주와 오라비는 벚나무 동산을 바라보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마음은 가벼워진 듯 보이고, 파리로 되돌아가면 기쁜 일이 생길 거라며 서로를 다독인다. 여지주는 로빠힌과 큰딸 바랴가 맺어지기를 진정으로 바라지만, 두 사람은 상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자존심 때문인지 노출시키기를 마다하고 결국 맺어지지 못하는 결과를 보인다. 저택이 폐쇄가 되고 일행이 파리로 떠난 뒤, 노복이 허우적거리며 등장해 다들 떠난 빈집을 둘러보며 체념한 듯 그 자리에 쓰러져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장용철, 신덕호, 나종민, 이준명, 주혜원, 남수현, 김 정, 송치훈, 박윤서, 박인지, 유경훈 등 출연자들의 호연은 관객을 극적 분위기에 몰입시킴은 물론 서정적 감상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놀라운 기량을 발휘한다.

무대디자인 손호성, 조명디자인 김성구, 의상디자인 이 제, 움직임지도 권령은, 음악 지미세르, 분장 장경숙, 사진 김도웅, 기록촬영 송영범, 무대감독 김원익, 조연출 김종범, 그래픽디자인 가시, 기획 나희경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제대로 드러나, 극단 놀땅의 안톤 체홉 작, 최진아 연출의 <벚나무 동산>을 연출력이 감지되고 출연자의 기량이 발휘된 한편의 명작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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