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날 보러와요' 20주년 특별공연으로 데뷔 20주년 맞이하는 배우 이항나

   
 

[문화뉴스] "또래 여자 연기자들이 같은 말을 한다. '여성중심의 연극보다는 남성중심의 희곡이 많이 올라가고 있는데, 재밌는 역할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올해로 연기 20년 차를 맞이한, 배우 이항나가 힘을 주며 인터뷰 중에 이야기했다. 이항나는 2013년 개봉한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송강호) 변호사의 아내인 '수경' 역을 맡은 것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됐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난해 이항나는 연극, 드라마, 영화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맹활약을 펼쳤다.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선 배우 김혜자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고, '어셈블리'에선 '진상필'(정재영)에게 이혼 선언을 외치는 '김경아'를 맡았다. 여기에 '드라마 스페셜 - 붉은 달'에선 화완옹주의 어머니이자 정조의 할머니인 '선희궁'을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또한, '은교' 정지우 감독의 신작인 '4등'에선 아이의 꿈을 위해 매진하는 엄마 '정애'를 맡아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기도 했다.

그리고 연극 '나생문'에선 기존 순종적인 여성 캐릭터였던 '무사 부인'을 벗어나 상황에 따른 역할 연기를 펼쳤다. 또한, 2014년 SPAF(서울국제연극제)에서 유료 점유율 150%를 기록한 연극 '그녀의 방' 시리즈 시즌3 '노크하지 않는 집'을 직접 연출해, 지난해 12월에 세 번째 앙코르 공연을 마쳤다. 물론 경기대 연기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렇게 바쁜 배우 이항나가 원숭이띠의 해, 2016년의 첫 연극 무대로 '날 보러와요'에 출연한 것은 우연한 계기 때문이 아니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 후, 러시아 국립 셰프킨 연기대학 유학을 다녀온 이항나가 대학로 무대에서 처음 출연한 작품이 '날 보러와요'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실화를 소재로 한 연극 '날 보러와요'는 1996년 서울연극제 작품상, 신인연기상·인기상(류태호)을 수상하며 화제가 됐다. 또한, 김광림 작가는 백상예술대상 희곡상을 받기도 했다.

오는 22일부터 2월 2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날 보러와요'의 20주년 기념 공연이 열린다. 김광림 연출이 직접 작품을 맡은 가운데, 이번 공연은 초연 멤버 OB팀과 이후 공연에 출연한 멤버들로 이뤄진 YB팀으로 구성된다. 이항나 배우는 '박기자' 역으로 출연해 권해효, 김뢰하, 유연수, 류태호, 황석정, 공상아, 이대연, 차순배 배우가 있는 OB팀으로 참여한다. '날 보러와요' 준비가 한창인 국립극단에서 배우 이항나를 만나 '날 보러와요' 작품 이야기와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소감을 들어봤다. 먼저 독자들에게 전하는 새해 인사를 소개한다.
 

'날 보러와요' 20주년 특별공연과 동시에 연기 20년 차가 됐다.
ㄴ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싶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길었는데, 어떻게 보면 하루 같이 정말 빨랐다. 숨 가빴고,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다. 연기 20년 차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그런 걸 인식한 적은 없었다. 항상 새로운 작품이나 신나는 작업,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자기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며 여기까지 온 것 같다. 20년을 헤아리면서 살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짧은 시간이었다.

이번 작품의 출연 제의는 어떻게 들어왔나?
ㄴ 여기 출연하는 분들은 1996년에 초연 멤버에 가깝다. 그때, 서울연극제 작품상 등을 받으며 지방공연도 지금 팀들과 같이 다녔다. 물론 지금은 돌아가신 박광정 선생님, 김용만 선생님은 이번 공연에 출연하지는 못하신다. 두 분과 같이 초연 무대에 공연한 기억이 난다. 이번 20주년 무대에서 날 불러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왔다.

OB팀으로 공연하게 됐다. 다시 배우들을 만났을 때 느낌은?
ㄴ 연말 송년 모임 같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선배님들이 많이 달라졌고, 그때와 다르게 중년 연기자로 거듭나실 것 같아 설레었다. 그런데 예전과 똑같으셨다. 마치 2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것 같았다. 한 분 한 분 젊은 예전 모습 그대로 나오셔서 좋았다.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열정적으로 연습하셨다. 캐릭터도 여전하시고 해서 20년의 세월을 감지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맡은 배역이 '박 기자'였는데, '편집장'이 나왔느냐고 놀리신 적도 있다. (웃음) '다방 레지' 역할을 하는 친구가 하루는 나오지 않아서, 내가 했는데 '마담'이 왔느냐고 놀리기도 했다. (웃음)

1996년 당시 연극 연출은 했었지만, 연기 출연은 '날 보러와요'가 데뷔작이었던 만큼 떨렸을 것 같다.
ㄴ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로에서 데뷔를 안 하고, 러시아 유학을 다녀왔었다. 1996년은 그래서 대학로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라, 지금 생각하면 참 많이 어설펐던 것 같다. 참 몰랐던 것 같다. 선배님들이 그때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야단치는 이런 것도 없으셨고, 어설퍼도 '이제 막 열정을 가지고 나온 후배구나'라는 시선을 보내주셨다. 앞으로 대학로에서 좋은 활동을 하길 바라는 마음을 주셨다. 사기를 꺾지 않으려고 하셨다. 지금 돌아보면 볼수록 감사하다. 선배가 되고 나니 그땐 진짜 내가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배우 이항나가 인터뷰 후 연극 '날 보러와요' 연습을 하고 있다.

'박 기자' 배역은 어떻게 준비했나?
ㄴ 러시아에서 공부한 희곡들이 창작이 아니라 고전이나 러시아 희극이었다. 매번 백작 부인 같은 역할만 하다가 국내 창작 희곡에서 '박 기자'라는 역할을 하니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낯설었던 것 같다. 적응도 하려고 부단히 애도 많이 썼다. 아무리 러시아에서 연기 공부를 했다고 하지만, 한국의 연기 정서에 적응하는 과정이 조금 어려웠고, 그래서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날 보러와요'의 첫 배역이 부끄러웠다. 조금은 자랑스러운 작품이 아니었다. (웃음)

지금은 세월이 지났는데, 그때 기자의 이미지가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달랐다. 그때 여기자 하면, 남성들 사회에서 동등하게 살아남으려는 페미니즘적인 인물로 등장했다. 제일 중요한 게 억울한 여성들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려는 의지를 갖춘 인물로 목표를 가졌다. 그래서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고, 용기를 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박 기자'의 명대사와 그 이유는?

ㄴ 맨 마지막 대사다. "어디엔가 범인은 있어요. 분명히 그러니까 반드시 잡을 수 있어요." 지금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이 작품을 하면서 피해자들은 얼마나 억울하겠냐는 생각을 많이한다. 그땐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나이도 있고, 아이도 있으니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마음이 아주 아팠다. 범인도 아직 잡히지 않았으니, 남은 가족들이 얼마나 지옥 같은 삶을 살았겠는가?

'여기자' 역할로 데뷔했는데,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ㄴ 또래 여자 연기자들이 같은 말을 한다. "여성중심의 연극보다는 남성중심의 희곡이 많이 올라가고 있는데, 재밌는 역할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조폭 영화 같은 남성중심의 연기가 대세다. 여배우로 살면서 20대 때는 예쁜 주인공, 청순가련형 멜로드라마, 끌고 가는 주인공을 했지만, 나이가 든 이 시점에선 좀 더 인간의 이야기를 깊이 전달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기 어려웠다. 항상 기다리고, 소원하고 있다. 그래도 여성 연기자로 살면서 행복한 것이 많았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운 좋게 외모가 아름다워서라기보단, 심리가 살아있는 좋은 캐릭터들을 맡아서 개인적인 불만은 없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여성들의 심리나 삶이 전면에 나온 드라마가 많이 없다는 아쉬움은 있다.

   
▲ 이항나 배우가 직접 연출을 맡은 연극 '노크하지 않는 집'의 연습을 지켜보고 있다. ⓒ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그래서인지 직접 연극 작품 연출을 시도했다. 최근 '그녀의 방' 시리즈 시즌3인 '노크하지 않는 집' 3차 앙코르 공연을 마쳤다.
ㄴ '그녀의 방' 시리즈를 2006년에 시작했다. 시즌 1부터 3까지 내용이 다르다. 시즌1엔 나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뭔가 자신과 화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누구나 다 그렇다. 복잡한 사회에서 내동댕이쳐 있다 보니 자기와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끊임없이 자기와 적대적 사이로 살면서 고통받지 않았는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두 번째 시즌도 그런 맥락이었다. 세 번째 시즌은 조금 다른데, 88만 원 세대 젊은이들이 요즘 힘들다. 그 시대를 지나온 세대지만, 좌절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듣고, 나누고 싶었다. 내가 여자니까 대본을 쓸 때 남자 입장보다 여자 입장에서 쓰는 것이 수월했고, 정확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쓰게 됐다.

'노크하지 않는 집' 공연을 비롯해 이항나의 2015년을 정리한다면?

ㄴ 첫 번째는 '그녀의 방' 시리즈를 마감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해 동안 많은 사람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다. 기획서 두 장 들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 섭외도 했다. 영상, 음악, 무용 등이 살아 숨 쉬는 드라마 장르를 만들고 싶었다. 기획자, 무대 미술가, 음악, 안무 선생님 만나서 6개월 동안 공연을 한다는 보장 없이 회의를 거쳤다. 결국, 어렵게 지원받고, 제 돈도 투자해서 공연을 세 번 하게 됐다. 개인적으론 올해 끝나는데, 마음이 아팠다. 세트를 철거하는데 눈물이 날 정도였다. 애착이 있는 것과 이별을 했지만, 이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녀의 방' 이야기는 접어두고 새로운 화두를 꺼내야 할 것 같았다. '그녀의 방'에 계속 머무를 순 없을 것 같았다. 연출가로는 뮤지컬도 해보고, 연극도 간간이 했지만, 드라마 실험을 하면서 공연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 목표다. '그녀의 방'에서 했던 스태프들의 팀워크가 좋아서 다음 작품도 할 예정이다. 별로 알아주지 않고, 대중적이지도 않겠지만, 큰 영광이나 명예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창작작업이다. 지난해 '노크하지 않는 집'이 SPAF에서 큰 사랑을 받아서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다시 도약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낸 해가 2015년이었다.


▲ 연극 '노크하지 않는 집'의 연습 모습. ⓒ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두 번째로는 드라마를 제대로 하게 됐다. 1999년에 영화 '송어' 찍고 난 후 캐릭터가 강렬해서 그때 드라마에 출연을 했다. 하지만 적응을 하지 못했고,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김혜자 선생님의 젊은 시절을 캐스팅한다고 했다. 평소에 존경스러운 분이었고, 꼭 하고 싶어서 15년 만에 드라마를 하게 됐다. 옛날보다 달라 보이는 점도 있고, 좋은 연기자들도 많이 만났다. 이순재, 김혜자 선생님은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정재영 배우는 '어셈블리'에서, '드라마 스페셜 - 붉은 달'에서 김대명, 박소담 배우를 만났다.

드라마가 흥미로워졌다. 예전엔 내가 오해한 부분도 많았나 보다. 신인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연극은 베테랑 소리를 듣는 20년 차 배우인데, 드라마는 연극도 떨리지만, 더 떨렸다. 낯선데 신인으로 돌아가서 적응하려니 설렘도 있고, 떨림도 있어서 좌충우돌 적응을 하고 있다. 익숙한 연극 작업을 하다가 낯선 작업에 투입되어서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니 재밌었다.

끝으로 보통 교수로 있으면서 평소 엄하고 무서운 선생이었고, 연기 트레이닝을 하드하게 시키는 편이었다. 2015년엔 좀 더 다르게 무서운 선생님의 가면을 벗고,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선생이 되어 다른 캐릭터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예전의 엄한 선생으로 지옥 훈련을 시킬 때가 아니다. 내가 변화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세대에 맞춰서 좀 더 자유롭고, 따뜻한 교수법을 운용해봐야겠다 해서 처음엔 실험했다. 조금 더 적응해가고 새로운 패턴을 나가는데 힘들었다.

   
 

예를 들어, 강의도 내가 강의하는 연기학과 같은 경우는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 단순하게 강렬한 연기수업과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서로 마음을 열어야 가능하다. 새로운 교수법으로 가르치는데, 녹록지 못했다. 학교 강의를 하면서 숨이 많이 찼다. 예전엔 꽤 유명한 선생이었다. 무서우면서 잘 가르치는 선생이었는데, 자유로우면서 아이들을 포용하는 선생님으로 시대에 맞춰가는 교수법으로 바꿔서 하려니 쉽지 않았다. 올해 다른 곳에서 인터뷰할 때 이야기한 것 처럼, 한 학부형이 꽃다발을 주셨다. 그걸 받아본 게 처음이었다. 누구 어머니인지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 몰래 드리고 싶었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맞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지옥 훈련을 시키는 빨간 모자 조교에서 이제는 자유롭고 편안한 변신을 해보려고 한다.

이제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어떤 도전을 하고 싶은가?

ㄴ '날 보러와요'을 열심히 한 후, 이제부터 박차를 가해야 할 것 같다. tvN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가 있는데, 촬영도 곧 하게 될 것 같다. '그녀의 방' 후속이 제가 조금씩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제니'가 있다. 내년으로 미뤄질지 모르겠지만, 나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차근차근 회의를 통해 공연화되는 모습이 기대된다. 처음으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노트북으로 쓴 작품인데, 도전해볼까 한다.

끝으로 원작이 아닌 영화 '살인의 추억'만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ㄴ 영화의 언어와 무대의 언어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나에겐 다른 작품으로 느껴진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좋은 배우들이 잘 나와서 많이 즐기셨을 테고, 무대는 무대에서 오랜 기간 수련하신 테크닉, 어법이 완벽한 베테랑 배우들이 나온다. 영화에서 영화적 언어로 호흡을 맞춘 재미난 작품을 보셨다면, 무대에서 다른 작법으로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보면 좋을 것 같다. 흔히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연극은 배우 예술이라고 하는 데 동의한다. 배우의 생동감 있는 연기를 무대에서 더 많이 보실 수 있지 않을까?


▲ 연극 '날 보러와요'의 연습 모습.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